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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화급20

우문화급(宇文化及): 수양제(隋炀帝)를 죽인 인물의 일생 글: 사설신어(史说新语)​고대에 황권은 지고무상으로 황제는 천하의 최고통치자일뿐아니라, 사람들이 눈독을 들이는 무수한 특권을 누리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무수한 사람들은 황위를 차지하기를 꿈속에서까지 추구하고, 심지어 목숨을 댓가로 내놓기도 한다. 모든 왕조에서는 황위를 둘러싼 명쟁암투가 벌어지고, 형제간에 반목하고, 부자간이 원수로 되는 비극이 무수히 발생했다.​풍운이 일어나는 궁정에서, 이런 인물이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황제의 곁을 지켰고, 황제의 신뢰를 깊이 받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내심의 욕망은 계속 팽창했다. 그는 더 이상 단지 황제의 신하로 지내는데 만족하지 못했고, 더 많은 권력과 지위를 갖기를 갈망했다.​마침내, 어느 어두운 밤, 그는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계획을 실행한다. 그.. 2024. 5. 3.
양주(揚州) 수양제묘(隋煬帝墓) 글: 시정정(時婷婷) 2022년 5월 5일 양주(揚州, 양저우)시 문화재보호부서에 따르면, 수양제유지공원(隋煬帝遺址公園)을 10월에 대외공개하여, 400여건의 수양제와 관련된 문화재를 관광객들에게 관람하도록 제공할 것이라고 한다. 수양제는 최소 3번 이장되었는데, 지금 그 비밀이 풀리고 있다. 주나라때부터 시작하여, 한나라때, 수당송때, 명청때 3차례에 걸쳐 전성기를 맞이했던 강소성의 양주는 중국고대의 문화맥락이 농축되어 있다. 3000여년의 역사에서 양주는 정식으로 도성(都城)이 된 적은 엇지만, 수,당시기에는 중요한 도시로서 짙은 인상을 남겼다. 이 모든 것은 수양제 양광(楊廣)과 관련이 있다. 이 유명하지만 논쟁이 많은 제왕은 대운하를 만들었고, 과거제도를 시작한다. 그리고 호화사치와 음탕을 일삼고.. 2022. 5. 6.
시진핑이 목숨을 지키려면 반드시 4명을 거울로 삼아야 한다 글: 왕우군(王友群) 8월 17일, 중공중앙당교의 은퇴교수 '홍얼다이' 차이샤는 중공과 시진핑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당적을 박탈당하고, 양로대우를 취소당했다. 같은 날 차이샤는 미국의 소리와의 인터뷰에서 2019년부터, 전체 중공의 핵심업무는 4글자를 둘러싸고 진행되고 있다: '정치안전' 즉 '정권안전'이다. 까놓고 말해서 시진핑 개인권력의 안전이다. "그는 기실 불안감이 가장 강하다" 차이샤는 말한다 .시진핑은 반드시 물러나야 한다. 시진핑을 바꿔야만 당내의 현재 공포적인 고압상태를 해소시킬 수 있다. 중공이라는 껍질은 반드시 포기해야 한다. 차이샤는 중공체제내의 인물이다. 그녀의 외조부는 중공원로이고, 그녀의 모친, 외삼촌, 이모는 모두 중공군대의 관리이다. 그녀의 제자중에는 장관급(성장급) 고위관료가.. 2020. 8. 19.
수나라가 멸망한 후 수양제 딸들의 운명은...? 글: 김명지(金明枝) 수양제 양광(楊廣)은 딸을 몇이나 두었을까? 아무도 정확하게 말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초기에 양광이 형인 태자 양용(楊勇)과 후계타툼을 벌일 때, 첩을 두는 것을 지극히 혐오하는 모친 독고황후에 잘보이기 위하여, 첩이 낳은 자식들은 모조리 버리고 기르지 않았었다. 그리고 양광이 등극한 후에는 장안에 상주하지 않았다. 생존한 딸들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일부는 그가 장안에 남겨두고 신경쓰지 않았었고, 일부는 그가 데리고 다녔다. 그중 일부분은 심지어 양광이 죽은 후 적모(嫡母)인 소황후(蕭皇后)를 따라 돌궐로 간다. 그러나 에는 '공주전'이 없으므로 양광의 대부분의 딸들은 구체적인 봉호(封號), 성명, 생년등의 기록이 없다. 인원수도 자연히 정확히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먼저 열녀인.. 2020. 6. 29.
1대 15, 당왕조 개국초기에 상대한 15명의 지방할거세력 글: 열사군(悅史君) 모두 알다시피 단명한 수(隋)나라가 멸망한 후, 이어서 근 300년간 통치하게 되는 것은 당나라이다. 당나라는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역사유산을 넘겨 주었고, 지금까지도 중국인들의 자랑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당왕조의 개국초기에는 휘황한 미래를 계획할 여유가 .. 2019. 5. 26.
모용(慕容), 탁발(拓跋), 우문(宇文): 선비족(鮮卑族)의 삼국연의 글: 금색연화554(金色年華) 진한(秦漢)시기에, 중국 북방의 유목민족은 흉노(匈奴)와 동호(東胡)의 두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한나라초기, 흉노가 전성기를 이루고, 동호족은 흉노의 모돈선우(冒頓單于)에게 패배하여, 두 부로 나뉜다. 오환산(烏桓山)에 거주하던 동호는 오환이라 부르고, .. 2019. 3.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