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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 유수(劉秀)는 황제에 오르면서 왜 "한(漢)"이라는 국호를 그대로 썼을까?

글: 심야요재(深夜聊齋) 한(漢)나라는 전후로 400년간 지속되는데, 둘로 나뉜다: 서한(西漢)과 동한(東漢). 나중의 북송(北宋), 남송(南宋)과는 달리, 서한과 동한의 사이는 끊어져 있다. 중간에 왕망(王莽)의 신(新)왕조가 있었다. 다만, 한동안 '신'왕조는 주류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왕망은 황위를 찬탈한 인물로 덕이 없다고 여겨져서, 왕조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왕조의 중후기 당시의 사회 각계층에도 한왕조를 재건하려는 움직임은 있었다. 비교적 두드러진 것은 유씨종실(劉氏) 종실의 인물들 중에서 황제를 칭하는 자들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비록 그 중 대부분은 가짜이긴 하지만.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한무제의 증손자라고 하였고, 어떤 사람은 한성제의 아들이라고 하였..

<죽서기년(竹書紀年)>: 중국고대의 비주류 사서

글: 지역사(知歷史) &lt;죽서기년&gt;은 위양왕(魏襄王) 시대에 저술되었다. 이 시대에 여러 나라가 나타나고, 유가(儒家)는 아직 독보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lt;죽서기년&gt;은 서진(西晋) 연간이고, 이 때는 &lt;사기&gt;가 이미 중국역사기록의 '대표브랜드'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lt;죽서기..

서하황제(西夏皇帝): 수명은 짧은데 재위기간은 길다

글: 풍현일(馮玄一) 서하는 당항족(黨項族)이 건립한 국가이다. 당항족은 강족(羌族)의 한 갈래이며, 위진남북조시기에 소위 "오호(五胡)" 가운데 강족이 있었다. 16국의 하나인 후진(後秦)은 바로 강족이 건립한 정권이다. 일찌기 당나라말기에 당항족은 일부 할거세력을 건립하기 시작한..

<상서(尙書>의 요(堯)임금 : 아들보다 사위를 좋아했을까?

글: 천하무신(天下無臣) 아주 오래된 옛날에 우리들이 "요(堯)임금"이라고 존경하여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전해지는 바로는 산서(山西) 사람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그를 "방훈(放勛)"이라고 불렀는데, &lt;서이아(小爾雅)&gt;의 해석에 따르면, "방(放), 기야(棄也)", 훈(勛)은 &lt;이아(爾雅)&gt;..

[황자쟁위술] 무장탈위술(武裝奪位術) 내선득위패(內禪得位牌) 순편

무력으로 황위를 차지하는 범주에는 궁중정변의 방식으로 황제를 핍박하여 황위를 물려받는 것, 즉 선양(禪讓)받는 것이 포함된다. 선양은 비교적 온화하고 우아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중국고대에 요(堯), 순(舜), 우(禹)의 왕위가 선양으로 넘어간 것을 효시로 한다. 요,순,우의 선양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