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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황자쟁위술

[황자쟁위술] 무장탈위술(武裝奪位術) 내선득위패(內禪得位牌) 순편

by 중은우시 2015. 10. 11.

 

무력으로 황위를 차지하는 범주에는 궁중정변의 방식으로 황제를 핍박하여 황위를 물려받는 것, 즉 선양(禪讓)받는 것이 포함된다. 선양은 비교적 온화하고 우아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중국고대에 요(堯), 순(舜), 우(禹)의 왕위가 선양으로 넘어간 것을 효시로 한다. 요,순,우의 선양방식은 비록 황자들의 황위다툼과는 성격이 약간 다르지만, 최근의 연구자들에 의한 선양의 실제모습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선양(禪讓)은 유가에서 상고시대의 성현정치(聖賢政治)를 대표한다. 공자의 제자들이 오매불망하는 선양은 도통(道統)이 정통(政統)에 승리한 표지이다. 천하는 덕이 있는 자가 다스리고, 정권을 잡은 우두머리는 동시에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이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인치국(聖人治國)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요순우탕(堯舜禹湯), 문무주공(文武周公)은 모두 성인치국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다만, 예악이 붕괴된(禮崩樂壞) 춘추시대이후에 이러한 도정합일(道政合一)의 정치모델은 파괴되고 말았다. 이는 유가들이 영원히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이다.

 

공자때부터, 역대 유가의 지도자들은 모두 상고의 성현정치를 회복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그들은 성인이 정권을 잡는 것까지 바라지는 않았다. 그저 정권을 잡은 사람이 성인으로 되기를 희망했다. 즉, "치군요순(治君堯舜)"이다. 그러나, 선양이라는 상고시대 정치적 몽상은 정말로 존재했던 것일까?

 

일찌기 요순선양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했던 사람은 위문제(魏文帝) 조비(曹丕)였다. 그는 한헌제의 선양을 받아들인 후 한마디를 던졌다: "순우수선, 아금방지(舜禹受禪, 我今方知, 순임금 우임금이 선양을 받은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알았다)." 정권을 조씨들이 장악하고 있는 현실앞에서, 여러 해동안 정치적 괴뢰인 한헌제는 더 이상 도덕적인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 조비와 나란히 존재할 수 없었다. 조비는 자신의 마음으로 순임금과 우임금의 마음을 추정했다. 이렇게, 요순선양의 아름다운 정치신화는 분쇄된다.

 

정통사서가 아닌 <<죽서기년>>도 이런 주장을 채택하고 있다: "옛날에 요의 덕이 쇠하였고, 순에게 갇히게 된다. 순은 요를 감금하고, 다시 단주를 막아서, 부친과 서로 만날 수 없게 하였다." 그 의미는 순이 정변을 일으켜서, 요임금과 태자 단주를 구금하고, 제위를 탈취했다는 말이다. <<상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우리는 그 안의 잔혹과 공포를 엿볼 수 있다: "요가 순으로 하여금 제위를 승계하게 했다....공공을 유주에 유배시키고, 환도를 숭산으로 쫓아내고, 삼묘는 삼위로 갔으며, 곤을 우산에서 죽였다. 네명의 죄를 처벌하자, 천하가 복종했다" 선양이라는 이벤트가 벌어진 후에 순은 요임금에 충성하는 중신들을 주살했다. 일벌백계의 책략이었고, 그의 권력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인사들에 대한 경고였다. 즉, 요의 네 중신에게 손을 쓰지 않고서는 천하가 따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 우리는 유가에서 순임금에게 붙여놓은 아름다운 겉치장을 제거하고 나면, 진실한 순임금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낼 수 있다.

 

모두 알다시피, 순은 밭에서 일을 했다. 역산에서 친히 농사를 지었다. 시골의 가난한 사내아이였다. 평화로운 시대에 보통촌민에서 시작하여 수십년동안의 노력으로 요임금의 두 딸을 취하고, 조정의 중신이 되고, 다시 섭정왕이 되고, 마지막에는 천자의 자리를 차지한다. 이것은 아주 이례적이다. 순에게는 남이 갖추지 못한 뛰어난 점이 있고, 독문절기가 있음을 말해준다.

 

평화시대에 정치적인 지위를 획득하려면 일정한 절차가 필요하다. 난세에서처럼 밑바닥에서 왕후장상이 되기는 힘들다. 이런 점에서 평화시대가 일반백성들에게는 복이라 할 수 있지만, 정치야심가에게는 불운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다만 진정한 수완을 지닌 정치고수라면, 평화시대라고 하여 그다지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알고 있다. 과거시대에 고시를 통하여 신분상승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과거이전에 관리를 선발하는 방법은 징벽(徵僻)이었다. 조정에서 누군가가 현명하다는 말을 들으면, 조서를 내려 그에게 관직을 내리고 정부를 위하여 일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적 포부를 지닌 사람이라면 정치의 궤도를 걸어야 한다. 그러자면 무명지배가 되어서는 안되고 반드시 사회적으로 좋은 평판을 얻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명성을 얻을 수 있을까? 덕행을 베풀거나 재능이 남보다 월등해야 한다. 그래야 이름을 세상에 알릴 수 있다. 그러나, 재능으로 이름을 날리기 보다는 덕행으로 이름을 날리는 것이 더욱 빠르다. 왜냐하면 재능은 관리로 채용된 후에 일처리하는 과정에서 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덕행은 언제든지 나타낼 수 있다. 소위 "대덕(大德)"은 "세행(細行)"으로 나타난다. 모든 자잘한 일에서도 사람의 고상한 품격을 드러낼 수 있다. 그리하여, 정치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조정의 징벽을 얻기 위하여, 덕행을 쌓는데 주력한다. 산야에 숨어있으면서 자신이 명리에 담백한 고매한 인격자라는 것을 드러내거나, 부모에게 효도하여 효자로 이름을 날리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의로운 일에 재물을 아끼지 않음으로써 좋은 사람이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징벽제도를 비교적 적극적으로 시행하던 한나라때 많이 발생했다.

 

순임금의 독문절기는 바로 그가 쇼를 하는 능력이 일류였다는 것이다. 순이 요임금에게 징벽되어 일을 맡게 된 이유는 바로 그가 덕행과 재능에서 모두 아주 뛰어난 사회적인 명성을 얻었던 것이다. 그는 은일(隱逸), 효행과 재능에 모두 힘을 쏟았다.

 

먼저, 효(孝)에 힘을 쏟았다. 역사서에는 "부친은 완고하고 모친은 악독하고 동생은 오만하다"고 적혀 있다. 그의 부친, 계모와 이복동생은 그를 죽이기 위하여 갖은 수단을 썼다. 여기에서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순의 집안에 재산이 별로 없었는데, 순의 가족들은 왜 그를 죽여버리려고 했을까? 더욱 불가사의하고, 사리에 맞지 않는 것은 순이 이미 요의 사위가 된 후에도, 그의 가족은 계속하여 그에게 여러가지 모살행동을 벌였다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순이 곡창을 만들 때, 곡창을 불태운다. 순이 우물을 팔 때는 낙정하석(落井下石, 우물속으로 돌을 던짐)한다. 모두 순을 죽여버릴 때까지 끝까지 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만일 순을 죽여서, 그의 동생인 상(象)이 모든 재산을 가지게 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해가 된다. 그러나, 순이 부마가 된 후에는 이기적인 상에게 있어서, 형에게 의탁하는 것이, 형을 죽이는 것보다 훨씬 이익이 컸을 것이다. 역사서에는 이에 대하여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상이 이때 순을 죽이려고 기도한 것은 형이 죽으면 동생이 이어받는(兄終弟及) 것때문이다. 순의 꽃처럼 예쁜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라는 두 명의 부인을 넘겨받아 요임금의 부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만, 이런 주장은 너무나 견강부회적이다. 부마를 죽인다는 것은 정치적인 리스크가 너무나 크다. 생각해보라, 순이 비정상적으로 죽으면, 가장 큰 혐의를 받을 사람은 바로 상의 모자이다. 이전에 그들은 여러번 순에 대하여 나쁜 짓을 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상이 이것도 몰랐을까? 교만한 두 공주가 남편을 죽인 원수와 결혼을 하려고 할까? 그녀들이 남편을 죽인 원수를 살려둘까? 사람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추측해보자면, 군자이든 소인이든 리스크를 회피하려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정사에서 순이 그의 가족과 은원이 있다고 한 것은 정권을 장악한 순의 창작으로 보인다. 아니면 그들이 짜고친 고스톱일 것이다.

 

창작도 좋고, 연극도 좋다. 어쨌든 순은 이를 통하여 효자라는 미명을 얻는다. 이것이 최종 목적이었다. 효자라는 미명을 얻은 후에, 순은 역산의 토지위에서 그의 덕망과 재능을 보여주는 이벤트를 벌인다. 그는 백성들과 하나가 되어, 그가 가는 곳으로 백성들이 따라갔다; 다른 사람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순이 가면 스르르 풀렸다. 백성들은 분쟁이 발생하면 그를 찾았고, 그는 그것을 판결했고, 그의 재판에 모두 승복했다. 당연히 이것은 모두 나중에 순의 어용학자들이 한 말이다. 결론적으로, 그의 이름은 금방 역산을 넘어 천자의 귀에까지 들어간다. 그리하여 조정은 그를 징벽하여 조정에 불러 일을 시킨다.

 

순이 요의 조정에 온 후, 금방 요임금의 환심을 산다. 요임금의 말년에는 재해가 빈번했다: "홍수가 일기도 하고, 산이 무너지기도 했다" 공공, 곤, 환도등 명신들이 이때 모두 조정에서 일을 했다. 이들은 모두 순의 선배들이다. 그러나, 순은 그들이 갖추지 못한 것을 하나 갖추었다. 즉, 그는 부마였던 것이다. 요임금이 단주를 제외하고 가장 믿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이러한 믿음 때문에, 요임금은 말년에 정사를 돌보지 않고, 수도에 빠지고, 순의 주청에 대하여는 살펴보지도 않고 동의해주었다. 순이 일을 하기 시작한지 20년이 지나자 이미 세상은 바뀌어 있었다.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이미 날개를 달고 있었다. 모든 의사결정은 순에게서 나오지 요에게서 나오지 않았다. 요임금은 권력을 빼앗긴 후에 궁중에 유폐된다. 태자 단주는 다른 곳에 구금된다. 다만, 간교한 순은 바로 요의 천자위를 빼앗지 않는다. 그는 그저 섭정을 할 뿐이었다. 8년간 섭정을 한 후에 다시 한번 쇼를 해서 단주에게 정권을 넘겨주는 태도를 보인다. 다만 백성들이 동의하지 않아, 그는 할 수 없이 스스로 천자위에 오른다.

 

순이 단주에게 양보한 것은 정치적인 쇼이다. 사마천은 이렇게 말했다: "순이 단주에게 양보하고 남하의 남쪽으로 갔다. 제후들이 배알할 때 단주에게 가지 않고 순에게 갔다. 소송을 하는 자들도 단주에게 가지 않고 순에게 갔다. 칭송하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도 단주를 노래하지 않고, 순을 노래했다. 순은 말했다: "하늘의 뜻이로다. 그리고 천자의 자리에 오른다."

 

한번 비교해보자. 한 사람은 정권을 30년간 잡고 있던 사람이고, 당금의 섭정왕이며, 모든 문무관리들이 다 그의 손에 발탁되고 배양되었다; 다른 한 사람은 비록 태자이지만, 정적에 의하여 현명하지 못하다는 낙인이 찍혀있고, 여러해동안 구금되어 있었다; 날개도 없고, 적수공권인 태자가 어떻게 모든 것을 가진 섭정왕에 대항할 수 있을 것인가? 머리가 이상해지지 않았다면, 아무도 순에게 고개숙이지 않고 단주에게 고개를 숙이지는 않을 것이다.

 

순의 섭정은 수천년후에 왕망의 가황제와 비슷하다. 재미있는 것은, 순은 가식적이지만, "하늘의 뜻이로다"라고 탄식을 했고, 왕망이 나중에 한을 폐할 때도 비슷하게 "황천위명(皇天威命)"이라고 했다. 왕망이 동시효빈(東施效顰)을 했던 아니던 간에, 최소한 왕망은 요순선양의 실질을 꿰뚫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역대이래로 영웅만이 영웅을 알아본다. 그리고 간웅만이 간웅을 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