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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단7

송나라때 '문정공(文正公)'의 시호를 받은 인물은? 글: 용가독사(勇哥讀史) 이런 말이 있다: "생진태부(生晋太傅), 사시문정(死諡文正)"(살아서 태부에 오르고, 죽어서 문정의 시호를 받는다). 고대의 무수한 문인들에게 있어서, 사후에 '문정'이라는 시호를 받는 것은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송나라는 문인을 존중한 시기였다. "만반개하품(萬般皆下品) 유유독서고(惟有獨書高)"(모든 것은 하품이고, 오로지 문관이 높다)을 부르짖던 왕조에서 몇명의 대신이 '문정'의 시호를 받았을까? 답안은 9명이다. 평균 34년에 한명씩 배출되었다. "문정"의 시호를 받은 9명의 대신은 사망한 시간을 기준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이방(李昉), 왕단(王旦), 왕증(王曾), 범중엄(范仲淹), 사마광(司馬光), 황중용(黃中庸), 채변(蔡卞), 정거중(鄭居中), 채심(蔡沈) 이.. 2020. 12. 18.
"오중간첩(五重間諜)" 원수(袁殊)의 말년생활 글: 송춘단(宋春丹) 1977년 5월, 베이징역. 한 열차가 막 도착했다. 플랫폼에는 32살된 증룡(曾龍)이 약속한 열차칸의 중간위치에서 긴장한 상태로 양쪽 차문으로 하차하는 승객들을 보면서, 이미 22년간 헤어져 있던 부친을 찾았다. 그의 부친은 바로 해방전에 국민당 군통, 중통, 왕정위정권, 일본특무기관에 들어가 '오중간첩'이라고 불리던 공산당 정보요원 원수였다. 이는 원수가 1955년 반한년(潘漢年)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들어간 후 처음으로 허가받은 귀휴였다. 아마고 과거의 직업습관때문인지, 그는 서신에서 증룡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잡지를 한권 들고, 8살짜리 딸을 데리고 오라고. 서로 알아보기 편하게. 그러나 증룡은 부친을 알아볼 자신이 있어서, 부친이 시키는대로 하지 않았다. 열차칸의 승객은 몇.. 2020. 10. 23.
양송의 "세폐(歲幣)"는 송나라에 어느 정도의 부담이었는가? 글: 마도사(魔都師) 양송역사에는 후세에 욕을 얻어먹는 국책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세폐"를 바치고 평화를 얻은 것이다. 일찌기 요나라와 격전을 벌이다가 나중에 <전연지맹>을 체결한다. 나중에는 서하와 악전고투하다가 마지막에는 "세폐"를 주고 서하로부터 칭신을 받아낸다. .. 2018. 8. 2.
한억(韓億): 평민출신 재상으로 8명의 아들이 모두 진사, 그중 3명은 재상에... 글: 만풍모우(晩風暮雨) 하묵성 영수현(靈壽縣) 우성향(牛城鄕) 중경정촌(中傾井村)은 그다지 유명할 것도 없는 작은 마을이다. 다만 송나라떄 이곳에서는 유명한 인물이 나왔다. 부자 9명이 모두 진사에 급제하고, 그중 4명은 재상에 오른다. 재상은 현재로 따지면 총리인데, 이런 작은 마.. 2018. 7. 31.
부언경(符彦卿): 세 딸이 황후에 오른 송나라 명장 글: 이자지(李子遲) 부언경(898-975), 자는 관후(冠侯), 완구(宛丘, 陳州라고도 부름. 지금의 하남성 회양) 사람. 오대 및 북송초기의 명장. 일찌기 여러번 요나라군대와 전투를 벌임. 무장세가출신으로 조부는 오왕(吳王) 부초(符楚), 부친은 진왕(秦王) 부존심(符存審, 일명 李存審, 이극용의 .. 2015. 1. 18.
왕흠약(王欽若): 모함도 기술이다 글: 안건회(晏建懷)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하늘에서 떡이 괜히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통상 발탁되는 사람들을 보면 다 어떤 원인이 있다. 인간관계를 잘 맺었거나, 재능이 출중하거나, 혹은 조상이 덕을 쌓았거나, 조정내에 아는 사람이 있거나, 돈을 많이 썼거나, 아부를 .. 2012. 1. 11.
북송명상 구준(寇準): 왜 군자와 소인이 모두 그를 싫어했는가? 글: 백가강단 정위(丁謂)가 영신방(佞臣榜)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단지 한 사람때문이다. 그는 바로 역사에 명성이 자자한 구준 대인이다. 그들간의 인연은 단지 사소한 한 가지 사건이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수(溜鬚)"사건이다. '유수사건'에 관하여, 사서에는 .. 2011. 1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