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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5

건륭제는 왜 재덕을 겸비한 황십일자(皇十一子) 영성(永瑆)에게 황위를 물려주지 않았을까?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강희제 말년의 구자탈적(九子奪嫡)과 비교하면, 건륭제 말년의 후계자선택은 범위가 넓지 않았다. 그가 너무 오래 살아서, 대다수의 황자는 이미 사망했다. 17명의 황자들 중에서 겨우 4명만 남았다. 바로 황팔자(皇八子) 영선(永璇), 황십일자 영성, 황십오자 영염(永琰) 그리고 황십칠자 영린(永璘)이다. 이 네 명의 황자들 중에서, 황팔자 영선은 다리에 장애가 있었고, 황십칠자 영린은 나이가 너무 어렸다. 그래서 두 사람은 후계자에서 제외된다. 결국 남는 것은 영성과 영염의 두 황자이다. 재능으로 따지면 영성은 서화(書畵)에 모두 뛰어났다. 옹방강(翁方綱), 유용(劉鏞), 철보(鐵保)와 함께 건륭조 4대서예가로 꼽힐 정도이다. 명실상부한 대재자(大才子)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재.. 2021. 2. 7.
청나라때 친왕(親王)은 모두 몇명인가? 글: 관첩(關捷) 필자가 <애신각라종보>와 <청사고.제왕전>을 살펴봤더니, 청나라때 애신각라 친왕은 모두 140명이다. 홍타이시의 규정에 따르면, 조부 타크스(塔克世) 이하의 직계자손으 '종실(宗室)'이라고 부른다. 태조 누르하치때부터 함풍제까지 황자(皇子)는 모두 113명이다. .. 2019. 1. 9.
건륭의 후손과 북경의 왕부 글: 장월(張月) 건륭제는 자녀가 아주 많았다. 제왕가에서 태어난 이들 황자와 공주들은 서로 다른 운명을 지녔다. 그리고 황실 구성원으로서 그들은 북경성 내에 많은 왕부(王府)를 건설한다. 수백년의 풍운과 변화를 거쳐 어떤 왕부는 지금까지도 보존되어 있다. 수백년의 지난 이야기.. 2018. 11. 22.
건륭(乾隆)은 왜 자질이 평범한 가경(嘉慶)을 후계자로 정했을까? 글: 유계흥(劉繼興), 유병광(劉秉光) 청나라 초기에는 사해가 신복(臣服)하고 국위를 떨치는 강성한 국면을 이룬다. 그리하여 130여년에 이르는 "강건성세(康乾盛世)"가 나타났다. 여기에는 집권자들이 하나같이 사직을 보전하고,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는 걸출한 재능을 지녔다는 것 이외.. 2012. 6. 30.
북경의 청나라 왕부(王府)....그 두번째 9. 나왕부(那王府) 나왕부는 보초(寶초)후통내의 국상(國祥)후퉁 갑2호에 소재하고 있다. 몽고 커얼커 사이인노얀부 자사크 화석친왕 나얀투(那彦圖)의 왕부이다. 국상후통 갑1호의 두개의 건물은 원래 왕부에서 중로의 가장 북쪽에 있는 두개의 나란히 있던 건물이다. 집안에는 2개의 태.. 2005. 8.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