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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대12

광서제(光緖帝)는 왜 사진을 남기지 않았을까? 글: 지식거륜(知識巨輪) 사진은 그 사람의 일생을 남기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1843년 사진기가 발명된 이래, 서양의 상류층인사들은 자주 이 사진기로 사진을 찍어서 남겼다. 사진기가 청나라에 전래된 후, 서태후는 사진을 많이 찍었고, 지금도 우리는 서태후의 사진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광서제의 경우는 몰래 찍은 사진 한장만 남아 있다. 이것은 도대체 무엇때문일까? 광서제는 청나라의 마지막에서 두번째 황제이다. 그의 일생은 전설적이면서도 비참하다. 1874년, 동치제(同治帝)가 죽고, 후사를 남기지 못한다. 서태후는 조정대신들과 긴급회의를 열었고,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순친왕(醇親王) 혁현(奕譞)의 아들 재첨(載湉)이 황위에 오르도록 결정한다. 그 말을 듣자 혁현은 땅바닥에 쓰러져 대성통곡.. 2023. 1. 5.
시진핑의 캐리람접견: 바뀐 것과 바뀌지 않은 것 글: 주효휘(周曉輝) 중국 관영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12월 16일, 시진핑은 중남해의 영대(瀛臺)에서 북경에 업무보고하러 찾아온 홍콩특별행정구행정장관 캐리람(林鄭月娥)을 접견했고, 그녀의 홍콩 현재 형세와 특별행정구정부업무상황에 대한 보고를 들었다.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은 .. 2019. 12. 18.
영년(英年): 서태후가 총애한 풍수가 글: 포강객(浦江客) 광서24년(1898) 팔월 초엿새, 서태후는 정변을 일으켜, 변법을 시행하는 광서제는 영대(瀛臺)에 연금하고, 훈정(訓政)이라는 명목으로 최고권력을 다시 장악한다. 기실 1년전에, 대권을 놓칠까 우려하던 서태후는 이미 광서에제게 손을 쓴 바 있다. 그것은 바로 칠왕분(七.. 2019. 1. 20.
서태후의 사망을 전후한 시기의 후계다툼 글: 사우춘(史遇春) 동한때 반고의 <한서> 권87상 <양웅전(揚雄傳)> 제57상에는 양웅의 <반이소(反離騷)>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있다. <반이소>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정경미여추국혜(精瓊靡與秋菊兮), 장이연부천년(將以延夫天年); 임멱라이자운혜(臨汨羅而自隕兮), 공일.. 2018. 11. 16.
서태후는 자신이 죽은 후의 일을 어떻게 안배했는가? 글: 중천비홍(中天飛鴻) 자희(慈禧), 만주족. 예허나라씨. 안휘 휘냥 지광태도, 증삼등승은공 혜징(惠徵)의 딸. 옥첩(玉牒), 즉 황족족보에 기록된 내용은 이러하다: "예허나라씨. 혜징의 딸" 아명은 난아(蘭兒)이며, 예허나라가족중에서는 그녀가 행아(杏兒)라고 불리웠다. 함풍원년, 즉 1851.. 2018. 2. 19.
영대수도(瀛臺囚徒): 개혁황제 광서제의 비극 글: 장효파(張曉波) 1908년, 무신년(戊申年), 청광서34년. 불안했던 청나라 역사에서 1908년은 아주 두드러진 해이다. 8년전에는 전체 화북을 뒤흔들었던 의화단의 난과 8국연합군의 중국침략이 있었고, 3년후에는 천번지복할 신해혁명이 일어난다. 반드시 언급해야할 일은 이 해의 11월 13일.. 2014. 11. 20.
조광윤(趙匡胤): 황위찬탈을 막기 위하여 참서(讖書)를 몰래 고쳐버리다. 글: 우좌(于左) 조광윤은 일개 무부로 군림천하를 하게된다. 그는 빈천할 때 감히 천자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겠는지 신에게 점을 쳐서 물어보았던 사람이다. 그는 다른 사람도 자신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여러 사람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졌을지를 .. 2014. 1. 14.
부준(溥儁): 청말 대아거(大阿哥)로 황위계승자가 되었던 인물 글: 상한(桑寒) 청나라말기, 서태후는 온갖 방법을 다 써서 구차하게 정권의 목숨을 연장하고자 하였다. 가경제이후, 청왕조는 황태자를 둔 적이 없다. 황태자를 두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직접적으로 국가의 장래 주인을 결정하는 일이다. 서태후는 '무술변법'이후 광서제를 멸시한다. 자.. 2013. 8. 15.
광서제의 연금생활은 어떠했는가? 글: 낙방거사 "무술변법"이 실패한 후, 서태후는 광서제의 명의로 유지를 반포하여, 광서제는 질병으로 조정업무를 처리할 수 없어, 서태후가 다시 "훈정"을 한다고 선언한다. 그녀의 이번 "훈정"은 이전의 "수렴청정"과는 달랐다. 직접 황제와 나란히 앉아서 신하들을 마주하고 업무를 듣.. 2013. 6. 10.
서태후와 진비(珍妃): 고부갈등의 원인은? 글: 홍촉(洪燭) 자금성을 산보한다. 내가 가장 잊지 못할 곳은 삼대전(속칭 금란전인 태화전 포함)도 아니고, 건청궁, 곤녕궁같은 것도 아니며, 후화원의 한 말라버린 우물이다. 그것은 자금성의 여러 우물들 중에서 가장 별볼일 없는 것일 것이다. 밋밋하다. 다른 우물들은 대부분 한백옥.. 2013. 5.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