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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66

유비(刘备)의 부인은 10명이 넘었을 것이다. 글: 역사대작회 ​ 유비에게는 감부인(甘夫人), 미부인(糜夫人), 손부인(孙夫人)과 오황후(吴皇后) 네명의 부인이 있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료의 기재를 보면, 유비의 부인은 이 네명만이 아니다. 칭제이후에 몇명의 비빈을 들였는지에 대하여는 정사에서 아무런 글도 남기지 않아 통계를 내기 어렵지만, 여기에서는 유비가 칭제이전에 몇명의 부인을 거느렸는지를 알아보자. 네 명은 훨씬 넘고,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열명은 넘을 것같다. 아래에서 차례로 살펴보겠다. ​ : "선주(先主, 유비를 가리킴)의 감황후. 패(沛)의 사람이다. 선주가 예주(豫州)에 있을 때, 소패(小沛)에 살았는데, 그때 첩으로 거두었다. 선주는 적실(嫡室)이 여러번 죽어서, 그녀가 항상 집안일을 관장했다(常摄内事)" ​ : "여포.. 2024. 4. 12.
삼국연의의 5대 궁술고수는...? 글: 초급칠품소지마관(超級七品小芝麻官) 사실상, 삼국연의의 적지 않은 무장들은 모두 활을 사용하는데 아주 능했다. 예를 들어 위연(魏延)은 일찌기 한중전투(漢中之戰)때 화살 하나로 조조(曹操)의 앞이빨을 맞춘 적이 있으며, 강유(姜維)는 위나라군대와 전투를 하는 과정에서 맨손으로 화살을 붙잡은 다음, 자신의 활로 쏘아서 적을 맞추어 죽인 바 있다. 태사자(太史慈)는 성밖에 서서 활을 쏘아 성을 지키는 병사의 손이 나무에 박히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궁술이 아주 뛰어난 인물들이다. 그러나 삼국시대 랭킹5위이내의 화살고수를 따진다면, 아래에서 소개하는 다섯 명을 얘기해야 할 것이다. 삼국시대 무장(武將)의 전투력을 비교하자면 많은 사람들은 자연히 백병전을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어.. 2022. 11. 28.
<삼국연의>의 주군을 배신한 10대 반도 작자: 미상 먼저, 우리는 삼국연의의 반도에 대하여 정의를 내려보자. 본문에서 주군이 아직 죽지 않았고, 그리고 그를 후대했는데도 그는 배신하고 적에게 가서 주군에게 크게 해를 끼친 사람을 진정한 반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정의를 기준으로, 삼국연의의 10대 반도를 정리해보자. 바로 이들이다. 1. 여포(呂布) 의문의 여지없이 여포는 삼국연의의 최대 반도이다. 여포는 원리 정원(丁原)의 의자(義子)이자, 정원 수하의 아끼는 장수였다. 그런데 그는 적토마 1필 때문에 정원을 죽인다. 이런 행위는 완전히 반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동탁에 투항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동탁에게 딴 마음을 품는다. 그것도 한 여인 때문에. 원래 동탁을 따르면 여포에게는 앞날이 밝았다. 어쨌든 동탁은 조정을.. 2021. 12. 24.
정사(正史)로 본 여포(呂布) 글: 역사춘추망(歷史春秋網) '삼성가노(三姓家奴)'는 여포에게 덧씌워진 최대의 오점이다. 여기에 반복무상(反復無常, 이랬다 저랬다 변덕스럽다), 배신기의(背信棄義, 신의를 지키지 않는다), 유리시시(唯利是視, 이익만 쳐다본다), 용이무모(勇而無謀, 용맹하나 지모가 없다), 애제장부(愛諸將婦, 다른 장수의 처를 좋아했다)등등. 거의 모든 나쁜 말들은 모두 그에게 붙여졌다. 그러나, 정사를 분석해보면, 이 모든 것은 '낙정하석(落井下石, 함정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던진다)'의 혐의가 짙다. 여포의 일생을 되돌아보면, 그는 계속 여러 사람들에게 계속 이용당하다가, 결국 다른 사람에게 짓밟혀 죽었는데, 죽고 난 후에도 천년간 여러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되었다. 그는 삼국시대 장수들 중에서 가장 비운의 장수라 할 .. 2021. 10. 25.
조조(曹操)는 왜 장료(張遼)를 받아들이고, 고순(高順)을 죽였을까? 글: 장공성조(長空星照) 장료와 고순은 모두 여포의 수하대장이다. 여포의 군중에서의 활약으로 보자면 고순의 군사적 능력은 장료보다도 뛰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조조는 하비성(下邳城)을 함락시킨 후, 장료의 투항은 받아들였지만, 고순은 여포와 함께 죽여버린ㄴ다. 둘 다 여포의 수하장수인데, 조조는 왜 장료의 투항을 받아들이면서, 고순은 죽여야했을까? 장료는 원래 정원(丁原)의 부하였다. 무공이 뛰어나고 힘이 세서 정원이 휘하로 거둔다. 하진(何進)이 군대를 경성으로 불러모을 때, 정원은 장료를 데리고 간다. 정원이 패망한 후, 장료는 동탁에 넘어간다. 동탁이 패망한 후에는 장료와 그의 부하들이 다시 여포에게 귀속된다. 여포가 이곽에게 패배한 후, 장료는 여포를 따라 서주로 간다. 그리고 대리노국상(代理.. 2021. 4. 12.
여포가 죽은 후 방천화극(方天畵戟)은 어디로 갔을까? 글: 계설필담(溪說筆談) 여포가 조조에게 죽임을 당한 후, 적토마는 조조에 의해 관우에게 하사된다. 그렇다면, 그의 병기인 방천화극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이런 무기는 사용하는 사람이 원래 많지 않다. 방천화극을 주병기로 사용할 수 있는 무장은 더욱 적다. 대장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손에 익은 무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무명소졸은 여포의 병기를 쓸만한 자격이 없다. 그래서 조조가 누구에게 하사하고 싶어도 줄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방천화극은 여포의 상징이 되었고, 아마도 전리품으로 조조가 소장했을 것이다. 기실 이 문제는 소설의 후반부에 언급되어 있다. 조비(曹丕)가 칭제하기 전에, 그의 동생인 황수아(黃鬚兒) 조창(曹彰)이 불복하여 병력을 이.. 2020. 1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