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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29

양주(揚州) 수양제묘(隋煬帝墓) 글: 시정정(時婷婷) 2022년 5월 5일 양주(揚州, 양저우)시 문화재보호부서에 따르면, 수양제유지공원(隋煬帝遺址公園)을 10월에 대외공개하여, 400여건의 수양제와 관련된 문화재를 관광객들에게 관람하도록 제공할 것이라고 한다. 수양제는 최소 3번 이장되었는데, 지금 그 비밀이 풀리고 있다. 주나라때부터 시작하여, 한나라때, 수당송때, 명청때 3차례에 걸쳐 전성기를 맞이했던 강소성의 양주는 중국고대의 문화맥락이 농축되어 있다. 3000여년의 역사에서 양주는 정식으로 도성(都城)이 된 적은 엇지만, 수,당시기에는 중요한 도시로서 짙은 인상을 남겼다. 이 모든 것은 수양제 양광(楊廣)과 관련이 있다. 이 유명하지만 논쟁이 많은 제왕은 대운하를 만들었고, 과거제도를 시작한다. 그리고 호화사치와 음탕을 일삼고.. 2022. 5. 6.
내가 아는 북경대학 교수들의 집안내력 (1) : 중문과, 외국어과 글: 양문리(楊文利) 1 임경(林庚) 내가 처음 북경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1980년대가 끝나가는 때였다. "북대중문사로(北大中文四老)"중 한명인 임경(林庚) 교수가 은퇴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더 이상 본과학생들에게는 수업을 하지 않았다. 스스로 너무 늦게 태어난 것을 한탄했다. 그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을 수 없어서 유감으로 여겼다. 그래도 임경 선생의 풍채를 직접 보고, 그의 강의를 들을 기회는 있었다. 개략 당시(唐詩)에 관한 강의였고, 제목은 기억이 희미하다. 나이 팔순의 임선생은 비단장삼을 입고, 소쇄여소년(瀟灑如少年)하고 표일여선자(飄逸如仙子)했다. 나중에야 알았다. 임선생은 명문집안 후손인 것을. 부친 임재평(林宰平)은 광서때의 거인(擧人)으로 일찌기 일본으로 건너가 법률을 배웠다. 그러나.. 2022. 4. 30.
마르코 폴로는 중국에 온 적이 없다. 글: 살사(薩沙) 대여행가 마르코 폴로는 도대체 중국에 왔던 것일까? 1298년 9월 7일 마르코폴로는 감옥에 갇히고, 루스티첼로와 합작으로 를 쓴다. 마르코폴로는 중국에 온 적이 있을까? 쿠빌라이를 만난 적이 있을까? 지금 보면, 마르코폴로가 중국에 와서 쿠빌라이를 만났다는 것을 증명할 증거는 없다.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원나라때의 모든 역사기록에서 마르코폴로를 찾아볼 수 없다. 몽골인들이 원나라를 건립한 후에는 더 이상 유목민족이 아니고, 계통적으로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다. 마르코폴로여행기에는 그가 여러번 원나라의 대칸 쿠빌라이를 배알했다고 적었다. 1275년 여름, 23살의 마르코폴로는 처음 쿠빌라이를 만났고, 동행한 사람은 그의 부친과 숙부였다. 마르코폴로의 기술에 따르면, 대칸은 젊고 .. 2021. 10. 8.
봉호도(峰虎圖): 삼백년간 무수한 논쟁을 불러온 그림 글: 취초인문세계(聚焦人文世界) 타이페이 고궁박물원에는 한폭의 괴화(怪畵)가 소장되어 있어, 300여년동안 무수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이 그림을 둘러싸고 주로 3가지 의문이 있다: 첫째, 화가는 왜 호랑이를 그리면서 꼬리를 만 상갓집 개같은 모습으로 그렸을까? 둘째, 그림의 제목이 왜 '봉호도(峰虎圖)'일까? 셋째, 이런 그림이 어떻게 명작이 되어 고궁박물원에 소장될 수 있었을까? 먼저 이 그림을 살펴보자. 호랑이 한 마리가 그려져 있는데, 피골이 상접하고, 몸을 웅크리고 있으며, 눈빛에서는 두려움이 크게 나타나 있다. 호랑이를 왜 이런 모습으로 그렸을까? 그림의 오른쪽 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거기에는 땡벌이 한 마리 그려져 있다. 원래 위풍당당한 산중대왕이 산에서 땡벌을 당해내지 못해서 고통스러.. 2021. 2. 12.
<양주십일기(揚州十日記)>는 위작일까? 글: 화용군(華容君) 는 청나라때 나타났다고 하는 청나라초기 청나라군사들이 양주성을 함락시킨 후, 10일동안 잔혹하게 양주성의 주민들을 도살한 것을 기록한 글이다. 이 글은 역사학계와 애호가들의 논쟁을 불러왔다. 어떤 사람들은 이 글이 청나라군사들이 양주성의 주민들을 마구잡이로 도살한 것에 대한 진실한 증거라고 말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이 글은 모호하고 애매한 내용과 추악한 장면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였고, 이 글이 특정한 역사상황하에서 돌연 나타났다는 것들을 들어 이 글은 작성과 동기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필자는 후자의 견해에 찬동한다. 즉 는 악의를 가지고 쓴 위작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미리 밝히고 지나가야할 것같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청나라군사들이 양주에서 사람을 죽였다는 .. 2020. 11. 18.
<마르코폴로여행기>의 이상한 점들.... 글: 기점역사(起點歷史) <마르코폴로여행기>에는 원나라때의 북경성벽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명확히 써놓았다: 성벽은 흰색으로 칠해져 있다고. 원나라 대도(大都)의 성벽은 동서로 7400미터, 남북으로 6650미터, 둘레는 28.6킬로미터, 높이는 약 10 내지 12미터였고, 완.. 2020. 1. 8.
호진(胡軫): 동탁(董卓) 휘하의 최일류장수 글: 이치아(李治亞) 삼국연의의 명장 여포는 최고의 사나이이다. 일여이조삼전위(一呂二趙三典韋), 사관오마육장비(四關五馬六張飛). 그러나 역사상 여포는 당시 천하제일의 명장이 아니었을 뿐아니라, 심지어 동탁의 수하들 중에서의 제일명장도 아니었다. 여포는 유용무모(有勇無謀).. 2020. 1. 2.
완대성(阮大鋮): '통재(通才)'와 '간신(奸臣)'을 겸한 소인(小人) 글: 청림지청(靑林知靑) 추사여방초(秋思如芳草) 춘래일일생(春來日日生) 이것은 어렸을 때 외웠던 몇 개의 시중 하나이다. 당시에 비해 손색이 없다고 여겨져서 아주 좋아했었다. 그러나 이 시의 작자를 얘기하려면 약간 쑥스러워진다. 그는 완대성이라는 사람인데, 역사상 유명한 간신.. 2018. 12. 28.
무측천의 출생지 논쟁 글: 화운초(和運超) 사천 광원시(廣元市)는 여러해동안 관광선전에서 삼국중진이라는 것과 여황고향이라는 두 가지 레테르를 붙여왔다. 2017년 사천성은 사천역사명인문화전승 창신공정을 시행하여, 전문가학자의 회의를 거쳐, 공식적으로 제1차 10대역사명인을 공표했는데, 무측천도 그 .. 2018. 12. 24.
남송은 왜 남경(南京)이 아닌 항주(杭州)를 수도로 정했을까? 글: 흥체경(興替鏡) 남경과 항주에 관하여 누가 동남지구의 제1도시인지 문제는 여러차례의 논쟁이 있어왔다. 남경과 항주는 각각의 장점이 있다. 다만 총체적으로 보자면 남경의 역사감이 항주보다는 확실히 높다. 그래서 역대의 남방정권은 기본적으로 모두 남경을 수도로 삼아서 북방.. 2018. 1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