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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기8

명인종(明仁宗)의 제왕술(帝王術) 글: 호연문사(浩然文史) 홍희(洪熙, 명인종 주고치의 연호)떄, 명인종(明仁宗) 주고치(朱高熾)는 몸이 좋지 않았고, 당시 조정을 질타하던 5명의 거두 건의(蹇義), 양사기(楊士奇), 양영(楊榮), 김유자(金幼孜), 하원길(夏元吉)이 핵심의사결정층이 되어 송인종을 보좌한다. 영락(永樂, 명성조 주체의 연호)때, 명나라는 실제로 의사결정권이 3분되어 있는 상태였다. 인종에 이르러, 과거 자신을 따랐던 노신들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해 건의, 양사기에게 은장(銀章)을 새겨서 준다. 이 은장은 두 노대신의 공로가 혁혁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동시에, 이 은장을 찍어 올리는 상소는 직접 황제에게 전달되도록 했다. 나중에 양사기가 극력 주장하여, 명인종은 양영, 김유자, 하원길의 3명에게도 은장을 수여한다. 이것은 .. 2022. 7. 20.
명선종의 황후 호선상(胡善祥)은 단지 아들이 없어서 폐위되었을까? 글: 사우춘(史遇春) 명선종(明宣宗) 주첨기(朱瞻基, 1398-1435), 명나라 제5대황제, 명인종(明仁宗)의 장남. 어렸을 때, 조부 주체(朱棣, 명성조)와 부친 주고치(朱高熾, 명인종)의 사랑과 인정을 바았다. 명성조 영락9년(1411), 14살때, 조부에 의해 황태손(皇太孫)으로 세워진다. 여러번 주체를 .. 2019. 1. 18.
주첨기(朱瞻基)의 난제: 숙부 주고수(朱高燧)를 어떻게 할 것인가? 글: 두문자(杜文子) 주고수는 명성조 영락제 주체의 셋째아들이다. 주고치(朱高熾)의 동생이고, 주첨기의 셋째숙부이다. 황위와 인연이 없었던 그는 그러나 야심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간이 작아서, 혼자서 무엇을 하지는 못하고, 항상 둘째형인 주고후(朱高煦)와 힘을 합쳐서 태자 주고.. 2018. 7. 12.
원세개 신변의 구재인(九才人) 글: 장문서(張文瑞) 원세개 일생의 영욕훼예(榮辱毁譽)에 대하여는 여러가지 견해들이 있다. 죽은지 백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정설이 없다. 원세개의 일생을 살펴보면 그의 도덕이나 문장은 제외하고라고 한 일은 적지 않다. 일을 하려면 사람이 필요하다. 사람을 쓰려면 먼저 사람을 알아.. 2015. 1. 14.
태감 왕진(王振)은 어떻게 국가대권을 장악했는가? 글: 두문자(杜文子) 명나라에는 수많은 태감이 있었지만, 명성을 날린 태감들은 모두 한가지씩 재주가 있었다. 저명한 태감 왕진이 바로 그러하다. 그는 원래 하북(河北)의 한 현성에서 놀던 불량배였다. 젊었을 때는 책도 조금 읽었고, 몇번 과거에 참가했지만 모두 낙방했다. 처를 얻고 .. 2014. 8. 27.
황위계승전: 주고치(朱高熾) vs. 주고후(朱高煦) 글: 두문자(杜文子) 누가 황위를 계승하느냐는 문제는 영락제 주체(朱棣)에게 처음부터 골치거리였다. 그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하나는 큰아들 주고치이고, 다른 하나는 둘째아들 주고후이다. 이치대로라면 장유유서의 관념이 강했던 고대에 큰아들이 원래 합법적인 법정승계.. 2014. 8. 27.
왕진(王振): 명나라 환관전횡의 효시 글: 주가웅(朱家雄) 중국역사상 많은 왕조에서 환관전횡의 현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몇몇 유명한 환관(태감)이 출현한다. 예를 들면, 진나라의 조고(趙高), 동한말기의 십상시(十常侍), 당나라의 고력사(高力士), 이보국(李輔國), 구문진(俱文珍), 왕수징(王守澄), 구사량(仇士良), 전영자(田.. 2013. 11. 18.
경친왕(慶親王) 혁광(奕劻): 만청제일탐관 글: 유계흥(劉繼興) 마지막 황제 부의는 혁광이 신해년에 한 행위에 대하여 가장 날카롭게 평가한 바 있다: "(혁광)은 원세개의 돈을 받고, 태후에게 나라를 넘기라고 권했다. 대청 이백년의 천하는 혁광의 손에 끝장났다." 혁광은 만주 상남기 사람으로, 애신각라씨이며, 건륭의 열일곱째 .. 2013. 8.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