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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도7

육항(陸抗)과 양호(羊祜): 삼국말기 적이자 친구인 두 명의 위대한 모사(謀士) 글: 정정(丁丁) 삼국시대 말기 모사라 칭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게다가 위대한 모사라고 불릴만한 사람은 더더욱 적다. 위대한 모사라고 이름붙일만한 사람을 억지로 찾는다면 4명정도가 있을 것으로 본다: 첫째는 당연히 동오의 육항이다. 둘째는 당연히 서진의 양호(이때는 이.. 2016. 7. 17.
엄수(嚴修): 단포원세개(斷袍袁世凱) 글: 유강(劉剛), 이동군(李冬君) 어린황제 부의가 즉위하자, 그의 부친 재풍이 감국이 된다. 재풍은 광서제의 동생이다. 일단 취임하자 원세개를 향하여 칼을 휘두른다. 그러나, 그 칼은 머리를 향하여 휘두르지는 않았다. 그저 발 위를 내리쳤다. 원세개에게 족질(足疾)이 있다는 이유로 .. 2014. 4. 29.
원세개시대의 언론자유 글: 부국용(傅國涌) 송교인이 졸지에 암살당하고, 새로 탄생한 민국에는 파란이 일었다. 손중산은 무력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선택했고, 금방 원세개의 우세에 밀려 무력으로 패배당한다. 민국의 창업자인 손중산, 황흥은 다시 망명길에 들어선다. 장태염(章太炎)은 북경에 연금되어 있었.. 2013. 12. 22.
양도(楊度)가 남긴 수수께끼 글: 왕개림(王開林) "홍헌(洪憲)"왕조가 와해된 후, 양도는 "제제여얼(帝制餘孼)"의 욕과 "제제화수(帝制禍首)"라는 죄명을 뒤집어 쓰고, 침울하게 남쪽으로 돌아간다. 단기서 임시집정부의 형사지명수배를 받는다. 옛날의 친구들은 모두 그를 피했다. 마치 무슨 전염병균을 보는 것처럼. .. 2013. 12. 21.
양계초(梁啓超)와 채악(蔡鍔): 원세개(袁世凱)를 잠못이루게 한 사도(師徒) 글: 고문기(高文麒) 2003년 4월, 천진의 마르코폴로광장의 북쪽에 두 동의 나란히 선 이탈리아식 서양건물이 정식으로 관광객에게 개방되었다. 북쪽으로 놓여진 건물은 중화민국초기의 대사상가 양계초의 주택이고, 남쪽으로 놓여진 건물은 그의 서재인 그 이름도 유명한 음빙실(.. 2009. 4. 20.
"중화민족(中華民族)"이라는 용어는 누가 처음 쓰기 시작했는가? "중화민족"이라는 용어는 지금은 너무나 많이 알려져 있지만, 자세히 계산해보면 겨우 105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을 뿐이다. 이 말을 만들어낸 사람은 양계초(梁啓超, 량치차오)이다. 양계초가 "중화민족"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기 이전에 중국인들은 기본적으로 현대적인 의미의 민족개념이 없었다. 심.. 2007. 8. 17.
양도(楊度) : 제왕학의 마지막 전인 중국 근대는 인물들이 백출한 시기었다. 근대 인물중에 특이한 인물들이 많은데, 그 중에 양도(楊度, 1875-1931)라는 사람도 있다. 그는 자가 석자(晳子)이고 호남 상담 사람이다. 그는 일생동안, 재자, 거인, 제왕술의 마지막 전인, 명사, 저명한 해외유학파, 헌정의 대가, 청나라의 정사품관리, 원세개의 .. 2006. 1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