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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율융서7

소태후(蕭太后): 무덤까지 혼외 애인을 데려가다 글: 장계합(張繼合) 1004년 겨울, 북풍이 몰아칠 때 밀물처럼 요나라병사들이 물려왔다. 유명한 소태후 소작(蕭綽)과 그녀의 친아들 요성종(遼聖宗) 야율융서(耶律隆緖)는 함께 전투에 참가한다. 이번에 주도적으로 전쟁을 일으킨 이유는 바로 실지수복(失地收復)이다. 즉 송나라의 손에서 .. 2018. 1. 31.
[황자쟁위술] 양차동풍술(亮借東風術) 태제입승패(太弟入承牌) 야율중원 요성종(遼聖宗) 야율융서(耶律隆緖)의 차남인 야율중원(耶律重元)은 특이하게도 황태제(皇太弟), 황태숙(皇太叔)의 경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황제의 아들이 아닌 동생, 숙부의 자격으로 황제의 자리에 한 걸음 앞까지 다가갔지만, 결국 황제위에 오르지 못하고 오히려 죽음을 맞이한다. .. 2015. 10. 11.
중국인들은 언제부터 수박을 먹었는가? 글: 예방육(倪方六) 난징사람들의 말을 빌리자면, "요 며칠은 더워죽겠다(熱死了)". 날씨가 더우니, 수박(西瓜)이 잘 팔린다. 수박을 먹는 일은 현대인들에게 별 것이 아닌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고대에 수박을 먹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원(元)나라때만 하더라도, 수박은 귀족.. 2013. 7. 12.
승리자의 비밀 글: 위득승(魏得勝) 한가지 문제는 계속 나를 괴롭혔다. 그것은 바로: 역사적으로 문화수준이 낮은 새북(塞北)의 오랑캐족이 왜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송제국을 3백여년간이나 능욕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이것은 조광윤 일족이 강력하게 반쿠데타정책을 집행한데 따른 반작용이.. 2013. 2. 4.
조이용(曹利用): 권신(權臣)의 최후 글: 안건회(晏建懷) 조이용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일은 송(宋)나라를 대표하여 요(遼)나라와 전연지맹(澶淵之盟)을 체결하면서 최후의 양보선을 잘 지켜내는데 사명을 욕되게 하지 않아, 전쟁으로 도탄에 빠질뻔한 북송왕조를 구해냈다는 것이다. 경덕원년(1004년) 요성종 야율.. 2012. 6. 27.
소태후는 어떻게 국내외를 다스렸는가? 글: 장계합(張繼合) 어떤 여자가 대시인 볼테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인이 연약함으로 자신을 무장할 때 가장 강하다." 이 말은 요나라의 '여황'과 같은 인물로 대권을 장악했던 소태후, 소작의 생각과 일치한다. 여성의 아름다운 눈물은 쉽게 남자들로 하여금 눈앞의 상황을 제.. 2012. 6. 3.
소태후(蕭太后)는 어떻게 조정을 장악했는가? 글: 장계합(張繼合) 중국역사는 일방적이다. 남자들중 운이 좋은 사람이 자연히 주인공이 된다. 운이 나쁘면 조연이 된다. 여자는 '단역'조차도 할 자격이 없었다. 당당하게 조정에 들어가서 정사에 참여할 수도 없었다. 오로지 <거란국지>와 <요사>만이 예외적이다. 이 정권은 '집.. 2012. 3.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