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송인종26

송인종(宋仁宗)의 3대 번민: 인모(認母), 폐후(廢后), 입저(立儲) 글: 원희(元曦) 이런 말이 있다. 청관난단가무사(淸官難斷家務事). 청렴한 관리도 집안 일은 판단하기 어렵다. 천자도 마찬가지이다. 그에게도 골치아픈 집안 일이 있다. 송인종은 일생동안 세 가지 일로 골치가 아팠다. 무슨 세 가지 일인가? 인모(認母), 폐후(廢后), 입저(立儲)이다. 쉽게 말하면, 누가 엄마이고, 누가 마누라이며, 누가 아들이냐는 세 가지 일인 것이다. 보통사람들의 집안 일은 그 자신의 프라이버시이다. 주변 사람들이 간여하기 힘들다. 그러나, 천자는 다르다. 왜 다른가?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천자는 권력이 크므로,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실제는 정반대이다. 천자에게는 프라이버시가 없다. 그의 집안일도 모두 나랏일이 되어 버린다. 대신들도 말을 하고, 언관.. 2023. 3. 8.
문언박(文彦博): 북송 4명의 황제 아래에서 50년간 재상을 지내다. 글: 주효휘(周曉輝) 고대 왕조에서 제후나 재상에 오르는 인물은 기본적으로 모두 재능이 있는 사람이다. 불가의 인과응보설에 따르면, 모두 복이 있는 사람들이다. 북송때 이런 명신이 있다. 일생동안 송인종, 송영종, 송신종, 송철종의 네 황제를 모시는 동안 전후로 여러번 재상을 맡았고, 재상을 맡은 기간이 50년에 이르며, 평생 불법을 독실하게 믿어, 일찌기 10만명을 모아 함께 염불한 바 있다. 그 외에, 아주 장수하여 91세에 좌화한다. 병없이 편안히 죽는다. 그의 이름은 바로 문언박이다. 문언박(1006-1097), 자는 관부(寬夫), 산서 분주(汾州) 개휴(介休) 사람. 그의 조상은 성이 경(敬)이다. 나중에 후진의 고조 석경당(石敬瑭)의 이름을 피휘하여 '경'에서 문(文)으로 성을 고친다. 후진이.. 2021. 9. 17.
송인종(宋仁宗) 조정(趙楨): 천고제일인군(千古第一仁君) 글: 진동만(陳東晩) 서언 중화역사 상하 5천년동안 감히 '인군(仁君)' '명군(明君)'이라 칭할 수 있는 황제는 몇 되지 않는다. 진시황은 육국을 통일하였으나 '폭군'으로 불린다. 한고조 유방은 대한의 기업을 건립하였으나 시종 '비조진양궁장(飛鳥盡良弓藏)'으로 공신들을 참살한 오점이 있다. 대당성세 '정관지치'를 실현한 당태종도 안타깝게도 현무문사변의 악과를 벗어날 수 없고, 송태조 조광윤의 '진교병변' '황포가신' '배주석병권'은 사람들을 가슴아프게 했고, 앙문억무(仰文抑武)로 대송을 약국으로 만들었다. 진정 명군, 인군이라 칭할 수 있는 사람은 송나라의 제4대황제 송인종 조정이다. 비극적인 출생 중국의 희곡중에 '이묘환태자(狸猫換太子)'라는 것이 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송인종 조정이다. .. 2021. 4. 17.
남송 중후기의 3대권신 글: 송지견(宋志堅) 한탁주(韓侂胄), 사미원(史彌遠), 가사도(賈似道)는 남송 중후기의 3대권신(權臣)이다. 그들 간에는 여러가지 다른 점이 있다. 예를 들어, 한탁주는 주전항금(主戰抗金)파이다. 악비의 억울한 사건을 바로잡고, 진회에게서 왕작을 빼앗고 시호를 고쳐버린 것도 그이다; .. 2019. 1. 22.
고대의 시호(諡號)제도와 규칙 글: 배주품역사(杯酒品歷史) 중국에 이런 말이 있다: 개관정론(蓋棺定論)! 관두껑을 닫고나서 결론을 내린다. 그 의미는 한 사람이 살아있을 때에 대한 시비공과는 그가 사망한 후에야 비로소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황제와 문무대신이 죽은 후에 조정은 그들에게 시호를 내린다. 1개의 글자로서 그의 일생을 개괄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호가 그냥 간단한 글자 1자는 아니다. 그 안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통상 황제의 시호와 묘호는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청나라의 강희(康熙)황제는 우리가 그를 성조인황제(聖祖仁皇帝)라고 부른다. '성조'는 묘호(廟號)이고, '인(仁)'은 시호(諡號)이다. 황제에게 묘호를 올릴 때는 불문율이 있다. 조(祖)는 공(功)이 있어야 하고, 종(宗)은 덕(德).. 2019. 1. 8.
의문진씨(義門陳氏): 천하제일가 글: 능한화지초(凌寒花枝俏) 중국에서 진(陳)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성씨이다. 최신의 성씨통계에서 진시는 이(李), 왕(王), 장(張), 유(劉)의 뒤를 이어 5위에 랭크되었다. 아는 사람중에 진씨가 한 명도 없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모든 성씨는 역사를 얘기하면 전설적이고 비장한 점.. 2018. 12. 28.
양송의 "세폐(歲幣)"는 송나라에 어느 정도의 부담이었는가? 글: 마도사(魔都師) 양송역사에는 후세에 욕을 얻어먹는 국책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세폐"를 바치고 평화를 얻은 것이다. 일찌기 요나라와 격전을 벌이다가 나중에 <전연지맹>을 체결한다. 나중에는 서하와 악전고투하다가 마지막에는 "세폐"를 주고 서하로부터 칭신을 받아낸다. .. 2018. 8. 2.
1116년, 송, 요, 금, 고려.....동북아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글: 추원(秋原) 1107년 고려의 주전파중신 윤관(尹瓘)은 여진을 공격하여 한때 승리를 거둔다. 전쟁후, 고려는 한반도의 동북부의 새로 차지한 토지에 9개의 성을 건설한다. 그리고 그 중의 하나인 함주(咸州)에 대도독부를 설치한다. 이를 통해 새로 점령한 지역의 군사통치를 강화한다. 아.. 2018. 7. 31.
송영종(宋英宗) 조서(趙曙): 비빈을 두지 않은 황제 글: 소가노대(蕭家老大) 후궁 비빈이 3천에 이르는 황제는 아주 많다. 그러나, 비빈을 두지 않은 황제는 보기 힘들다. 역사자료를 뒤져보면 이렇게 비빈을 두지 않은 황제를 찾아볼 수 있다. 그는 바로 송영종 조서이다. 송영종 조서와 황후 고씨(高氏)는 청매죽마(靑梅竹馬)의 서로 사랑하.. 2017. 10. 30.
[황자쟁위술] 투량환주술(偸梁換柱術) 서자입적패(庶子入嫡牌) 이묘환태자편 송인종 조정(趙楨)은 송진종(宋眞宗)의 아들이다. 천희2년(1018년)에 태자에 오르고, 건흥원년(1022년)에 즉위하였으며, 유태후(劉太后)가 수렴청정을 한다. 명도2년(1033년) 유태후가 죽고나서 비로소 친정(親政)을 시작했다. 송인종은 42년간 황제위에 있었으며, 북송, 남송을 합쳐 재위기간.. 2015. 8.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