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송의8

중국의 비극, 항우의 실패를 비웃으면서 시작되었다. 글: 주건군(朱建軍) 생당작인걸(生當作人傑) 사역위귀웅(死亦爲鬼雄) 지금사항우(至今思項羽) 불긍과강동(不肯過江東) 항우와 유방의 군사대결은 항우의 패배로 끝이 난다. 표면적으로 보면, 누가 최고통치자가 되느냐는 백성과 그다지 큰 관계가 없다. 다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만일 항우가 서초패왕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더라면, 중국의 미래는 아마도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항우는 복고(復古)를 더욱 원했다. 그래서 분봉제도(分封制度)를 채택한다; 유방은 비록 일부 자제들에게 분봉하였지만, 전체적으로는 진시황의 제도를 채택한다. 이것은 이번 글의 주제가 아니다. 내가 더욱 말하고 싶은 것은 항우의 실패라는 이 사건이 중국인의 심리에 미친 영향이다. 이 영향은 중국인에게 “성왕패구(成王敗寇, .. 2022. 6. 3.
초회왕과 여러 장수들간의 "먼저 관중에 들어가는 사람을 왕으로 봉한다"의 약속의 존재여부 글: 정보(程步) 유방이 왜 험난한 길을 걸어 함양으로 공격해 들어갔는지에 관하여 원인으로 얘기하는 한가지는 바로 초회왕(楚懷王)이 여러 장수들과 약정하기를, 먼저 관중에 들어가는 사람을 왕으로 삼는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항우는 진군이 그의 숙부인 항량을 죽였으.. 2019. 1. 27.
유방(劉邦)은 진시황(秦始皇)의 동생이다 (2) 글: 정보(程步) 4. 유방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 200년간 존속한 왕조의 개국황제이고, 그 후에 부인 여후가 여러해동안 집권하였는데, 아무도 유바으이 조상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른다. 이것도 기이하지 않은가? 기이하다. 그래서 한나라이래로 여러 글에서 추측하고 논쟁했다. 어떤 사.. 2018. 10. 27.
항우는 왜 제국을 잃어야 했는가? 글: 후홍빈(侯虹斌) 1 부득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전쟁시기에 성을 도살하는 것(屠城)은 일상적인 일이라고. 항우는 특히 이를 좋아했다. <사기>에 이런 기록이 있다; "진2세 2년(기원전208년), 항우는 양성(襄城)을 도살한다. 같은 해, 유방, 항우는 성양(城陽)을 도살한다. 2년후, .. 2015. 3. 26.
항량(項梁)의 사후 초군(楚軍) 내부의 권력투쟁 작자: 미상 초군(楚軍)은 잡탕밥같아서, 각종 세력이 모두 있었다. 항량이 살아있을 때는 그래도 통일시킬 수 있었다. 그가 죽은 후에 지휘권을 둘러싼 쟁탈전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피했다. 항량이 돌연 전사했고, 그 자신이 아마도 나이가 많다고 생각지 않아서인지 후계자를 명확히 지.. 2013. 12. 21.
홍문연(鴻門宴): 항백은 왜 유방에게 알려주었을까? 글: 곽찬금(郭燦金) 정상적인 논리로 보면 홍문연은 불가사의하다. 항백은 왜 멍청하게 적인 유방에게 알려주었을까? 자신의 조카인 항우가 어찌되든 신경쓰지 않으면서. 범증은 "일찌기 기계(奇計)를 잘 세웠다" 그런데 왜 범증의 '기계'를 항우가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항우는 왜 유방을.. 2013. 11. 10.
항우: 저평가된 정치가 글: 양무후(陽武侯) 홍문연은 항우 인생의 전환점이다. 이전에 그는 기세가 중천에 뜬 해와 같았고, 운이 아주 좋았으며, 계속하여 상승했다. 그후에는 계속하여 내리막길이다. 유방에게 핍박당해 오강에서 자살할 때까지. 실패자를 동정하는 마음에서, 특히 재능있는 실패자를 동정하는 .. 2013. 9. 14.
항우(項羽)의 최대의 적은 누구인가? 글: 조성명(曹聲明) 사마천의 <사기>를 살펴보면,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전혀 다른 얼굴의 두 개의 항우이다: 하나는 풍운을 질타하고, 용감하게 전진하며, 천하를 휩쓰는 무적의 항우이고, 다른 하나는 강퍅자용하고 광망잔폭하며, 실패와 멸망의 길로 한걸음 한걸음 나가는 항.. 2013. 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