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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한)

초회왕과 여러 장수들간의 "먼저 관중에 들어가는 사람을 왕으로 봉한다"의 약속의 존재여부

by 중은우시 2019. 1. 27.

글: 정보(程步)


유방이 왜 험난한 길을 걸어 함양으로 공격해 들어갔는지에 관하여 원인으로 얘기하는 한가지는 바로 초회왕(楚懷王)이 여러 장수들과 약정하기를, 먼저 관중에 들어가는 사람을 왕으로 삼는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항우는 진군이 그의 숙부인 항량을 죽였으므로 그 복수를 하기 위하여, 서진하여 진을 공격하고자 했으나, 초회왕의 신하들은 항우가 잔폭한 것을 보고 그를 보내지 않았다. 그래서 항우는 강적을 상대하러 가고, 유방은 약한 병력을 상대했다. 그래서 유방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헛점이 너무 많아서, 성립되기 어렵다.


첫째, 초회왕이 도대체 어떤 "여러 장수"들과 약속했단 말인가? 연,조,제,한,위는 각각 왕이 있었다. 그리고 모두 멀리 떨어져 있었다. 각자의 장군은 자연히 각자의 왕의 말을 듣는다. 아무도 초화왕을 신경쓰지 않는다. 그래서 그가 다른 장수들과 무슨 약속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초회왕 자신의 장군으로는 아주 신임하는 송의(宋義)가 있는데, 그는 거록을 구하러 갔다. 항우, 범증, 그리고 많은 항씨자제들도 거록으로 갔다. 남아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도대체 누구와 약속을 한단 말인가. 만일 정말 이런 약속이 있었다면, 여러 장수들이 앞다투어 관중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면 누가 닭잡을 힘도 없는 초회왕을 지켜준단 말인가? 다른 사람의 장군은 초회왕과 약속하지도 않을 것이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약속할래야 할 수가 없다. 자신의 수하장군들에게도 이런 약속을 해줄 수가 없다. 그렇게 하다가 인심이 흩어지면 스스로의 몸도 지킬 수 없게 될 태니까.


둘째, 유방은 이백여리 떨어진 곳에 주둔하고 있었고, 유방을 불러들였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유방이 그를 만나러 갔다는 얘기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약속을 하겠는가? 초회왕이 항우, 여신의 병권을 박탈했는데, 초회왕이 유방을 부른다고 하더라도 유방은 감히 가질 못할 것이다. 자신의 적계장군들의 병권도 빼앗는데, 적계가 아닌 유방같은 경우는 더욱 말할 것도 없다. 이전에 귀순한 초왕 경구, 장군 진가도 항량에게 피살당한다. 유방은 빨리 돌아서는 바람에 항량에게 용서받을 수 있었다. 이제 항량은 죽었다. 유방은 겨우 수천의 인마를 가졌을 뿐인데, 부른다고 갔다가는 병권을 빼앗길 수 있다. 심지어 한 마디 명령이면 목이 달아날 수도 있다. 그럼 어디에 억울함을 호소하겠는가? 반란군은 자신들끼리 싸웠고, 전혀 봐주지 않았다. 그리고 내분은 그친 적이 없다. 유방은 겨우 손아귀를 벗어나 호랑이가 산으로 되돌아갔는데, 어찌 스스로 그물 속에 뛰어들겠는가. 그래서 사서에 초회앙이 유방을 팽성으로 불러서 회의를 했다는 기록이 없는 것이다. 그것이 맞다. 유방을 혹시 부르더라도 그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셋째, 항우는 장한이 그의 숙부를 죽인 원한을 풀기 위하여, 유방과 함께 서정하기를 원했다고 하는데, 이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장한이 숙부를 죽여 복수하겠다면, 먼저 장한을 찾아서 거록으로 가는게 우선일 것이다. 장한을 처리한 후에 다시 관중으로 가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가까이 있는 장한을 놔두고, 멀리 장안에 있는 진이세를 찾아서 복수하겠다는 것은 장한이 겁냈다는 것 이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넷째, 한발 양보하여, 정말 이런 약정이 있었다면, 관중으로 가는 것이 가장 좋은 임무인데, 송의는 병권을 쥐고 있고, 안양에 46일간 주둔하고 있으면서, 어찌 병력의 일부를 나누거나, 혹은 그의 아들을 관중으로 보내지 않았을까? 항우가 송의를 죽인 후, 거록에 다시 11개월이나 머물렀는데, 왜 철수해서 서쪽으로 가지 않았을까? 자기가 가지 않더라도 항씨자제중 항타같은 인물을 보내거나 혹은 신임하는 범증도 있다. 그는 지모가 뛰어나니 좋은 선택이 되었을 것이다.


다섯째, 만일 정말 그런 약정이 있었다면, 항우가 정말 진이세를 찾아가서 복수할 생각이엇다면, 7월에 장한과 회맹을 맺은 후, 즉시 병력을 서쪽으로 행군시켰어야 한다. 안양에서 함양까지는 1600리이다. 연도에는 모두 장한이 점령해서 통치했던 성읍이 있다. 장한이 길을 열면, 하루에 50리는 갈 수 있을 것이고, 8개월이면 함양까지 도착할 수 있다. 그러면 유방보다 2달이 빠르게 된다. 이때 유방은 아직도 무관(武關)을 들어가기 위해 고민하고 있었다. 만일 정예부대를 파견해서 빠른 걸음으로 가게 한다면 하루에 100리를 갈 수 있으니, 반달이면 도착할 수 있다. 그때 유방은 아직도 완성을 점령하지 못하고 있을 때일 것이다. 항우는 왜 아무런 동작을 취하지 않았던가? 계속 안양회맹이후에도 4달이나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을까?


여섯째, 그 시절에 왕을 칭하는데 무슨 약속이 필요할까? 그저 실력이 있으면 왕이 되는 것이고, 병력이 있으면 왕이 되는 것이다. 천하에 이미 왕이 많이 나타났다. 그중 누가 초회왕의 약속으로 되었는가? 장한은 항우와 회맹한 후 즉시 거록에서 옹왕이 된다. 이것도 약속해서 된 것인가? 초회왕에게 보고하여 비준을 받았던가? 나중에 제후를 일거에 봉할 때는 14명의 왕이 나온다. 누가 사전에 약속한 것이던가. 그리고 누가 초회왕의 비준을 받아서 왕이 되었던가?


만보를 양보하더라도, 정말 '여러 장수와 약속"한 게 있다면, 유방은 절대로 자시의 목숨을 가지고, 이 종이한장에 불과한 지켜지지도 못할 약속을 믿고 나서지 않을 것이다. 초회왕 자신이 허수아비이고, 언제 누구에게 칼을 맞을지 모른다. 그런데 무슨 약속을 하겠는가.


그래서, 유방이 서정을 한 것은 절대로 무슨 말도 안되는 초회왕의 약속을 믿어서가 아니다. 전체 서정에는 14개월이 소요되었고, 근 만리를 싸웠으며, 큰 전투만 23번이 있었다. 이는 절대로 무슨 좋은 임무여서가 아니다. 유방이 이렇게 한 것은 그 나름대로의 인생이상이 있었기 때문이고, 오래전부터 도모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죽은 모친의 부탁을 받아서이다. 더더구나 그의 신비한 진나라부친과도 관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