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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만철5

궐특근비(闕特勤碑): 한어와 돌궐어로 전혀 다르게 쓰여진 비문 글: 천지사화군(天地史話君) 유라시아대륙의 북방대지에는 많은 유목민족이 활약했다. 서부는 흉노(匈奴)의 지계(支係)가 동부는 동호(東胡)의 지계가 있었다. 역사적으로 서로 다른 부락과 민족이 상호 융합하면서 전후로 흉노, 선비, 유연등의 민족이 흥기했다. 수당시기에, 돌궐인이 .. 2019. 2. 26.
장손황후(長孫皇后)의 현무문사변때의 공헌 글: 만풍모우(晩風暮雨) 당나라때 당태종 이세민의 장손황후는 현량숙덕(賢良淑德)하며 남편을 도와 '정관지치'를 열게 한 것으로 후세에 칭송을 받는다. '삼대이래 황후중 현덕한 사람은 당나라 장손씨가 최고이다."라는 평을 얻었다. 장손황후는 당태종의 현내조일 뿐아니라, 경심동백.. 2018. 12. 7.
이세민의 현무문사변후 이건성의 팔대간장(八大干將)은 어떻게 되었는가? 글: 지역사(知歷史) 이건성은 대당의 황태자로서, 그의 적계역량과 인맥자원은 엄청나게 대단했다. 문신,무장이 부지기수였고, 원래 이세민을 수습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아쉽게도 한번 실수하여 모조리 잃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를 따르던 심복들의 최후는 어떠했을까? 그 중.. 2018. 1. 14.
관료사회 철칙: 신군불용구신(新君不用舊臣) 글: 풍현일(馮玄一) 이세민이 즉위한 후, 소우(蕭瑀)의 운명은 곡절을 겪기 시작한다. 이세민시대에 소우는 "삼기삼락(三起三落)"을 겪는다. 제1차, 정관원년 십이월에 발생한다. 이세민이 새로 즉위하고 비록 소우를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로 임용하지만, 방현령(房玄齡), 두여회(杜如晦).. 2017. 7. 21.
현무문사변 이후: 참초제근(斬草除根) 글: 왕관인(王寬仁) 현무문사변이 끝났지만, 이당황실의 피는 아직도 더 흘려야 한다. 왜냐하면 풀을 없애려면 뿌리까지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태자 이건성과 제왕 이원길은 비록 제거했지만, 그들의 아들 10명이 건재하다. 이세민에 있어서, 이것은 정치적 적을 남겨놓는 꼴이다. 잠재적.. 2013. 3.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