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당태종)

현무문사변 이후: 참초제근(斬草除根)

중은우시 2013. 3. 30. 13:32

글: 왕관인(王寬仁) 

 

현무문사변이 끝났지만, 이당황실의 피는 아직도 더 흘려야 한다.

왜냐하면 풀을 없애려면 뿌리까지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태자 이건성과 제왕 이원길은 비록 제거했지만, 그들의 아들 10명이 건재하다. 이세민에 있어서, 이것은 정치적 적을 남겨놓는 꼴이다. 잠재적인 복수역량이다. 문제는 이들 나이어린 조카들이 성인이 된 후에 반란의 기치를 들고 부친의 복수를 하겠다고 덤비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야심을 가진 누군가에게 그들이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형을 죽이고 동생을 죽이고, 부친을 핍박한 유혈정변은 아직은 다 끝난 것이 아니다. 이세민은 그 자체의 관성으로 그 불가피한 논리적 결론을 집행하였다. 도질(屠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고,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잔인하다고 하면 잔인하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권력투쟁의 게임법칙이다. 이런 법칙 속에서 모든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하나의 바둑돌이 된다. 스스로 어떤 역할을 할 지를 선택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역할 고유의 성격을 바꿀 수는 없다. 바꾸어 말하면, 너는 규칙 속에서 잘 헤쳐나갈 수는 있다. 그러나 규칙의 범위를 벗어날 수는 없다. 나아가 만일 무덕9년에 발생한 것이 '곤명지(昆明池)사변'이고, '현무문사변'이 아니었다면 이건성도 진왕 이세민을 죽이고 난 후에 진왕의 아들들에게 칼을 들이댔을 것이다.

 

그래서, 일단 역사가 현무문사변을 선택하여, 운명의 신이 이세민에게 미소를 짓자, 태자와 제왕의 10명의 아들은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6월 4일의 이날 오후, 진왕부의 두 무리의 병력은 명을 받들어 동궁와 제왕부로 달려가고 있었다. 이당황족의 이들 금지옥엽들은 즉시 공포와 절망의 울부짖음을 보인다. 그 10명의 젊은 친왕들은 부친이 죽은 애통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사신의 차가운 손톱은 그들의 목을 붙잡았다.

 

사서에는 그들의 연령이 적혀 있지 않다. 아마도 이것은 후세의 독자들에게  좋은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마음 속에서 우러나는 일종의 고통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서에 그들의 이름은 기록하고 있다.  누렇게 변한 사서에 그들은 아무런 특징없는 부호, 두 세줄의 사람들이 쉽게 흘려넘기는 문자로 남아 있다.

 

이건성의 다섯 아들은: 안륙왕 이승도, 하동왕 이승덕, 무안왕 이승훈, 여남왕 이승명, 거록왕 이승의이고, 이원길의 다섯 아들은" 양군왕 이승업, 어양왕 이승란, 보안왕 이승장, 강하왕 이승유, 의양왕 이승도이다.

 

이것이 바로 역사에 남긴 그들의 정보 전부이다. 비록 그들의 연령이 얼마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부친의 나이는 알고 있다. 이건성은 죽을 때 38살이었고, 이원길은 24살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자식들이 얼마나 되었을지는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기껏해야 약관이 되지 않았을 것이고, 가장 어린 아이는 겨우 발을 뗐을 수도 있다.

 

태자와 제왕의 아이들을 모두 죽이고 난 후, 진왕 이세민의 부장은 그들의 좌우심복 100여명까지 모조리 죽여버리고 그들의 재산은 모조리 몰수하고자 한다. 이때 위지경덕이 극력반대한다: "모든 죄악은 두 원흉에 있다. 이미 주살했는데, 더 이상 살인을 확대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면 인심을 안정시킬 수가 없다." 이세민은 그의 의견을 받아들여 도살행위를 중지한다.

 

그날, 당고조 이연은 천하에 대사면령을 내린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흉역지죄(凶逆之罪)는 건성, 원길에 그치고 나머지 일당은 모두 책임을 묻지 않겠다. 조정사무는 모두 진왕(秦王)에게 넘겨 재결하게 한다." 

 

육월 오일, 풍립(馮立)과 사숙방(謝叔方)이 스스로 투항한다. 설만철(薛萬徹)은 여전히 도망다니고 있었다. 이세민은 계속하여 그의 관대한 정책을 선전하고, 설만철은 그제서야 장안으로 돌아온다. 이세민은 이렇게 말한다: "이들은 그들의 주인에게 충성했다. 의사(義士)이다." 그리고 그들은 무죄석방한다.

 

육월 칠일, 이연은 정식으로 이세민을 황채자에 책봉한다. 그리고 조서를 내려 다시 한번 밝힌다: "오늘부터 군사, 정치 및 일체의 대소 정무를 모두 태자에게 넘니니 재결한 후 다시 보고하라."

 

이세민은 성공하였다.

 

그는 뛰어난 지혜,담량 및 박력으로 일거에 천하의 정세를 뒤집고, 정적을 제거하고 정변의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고명한 정치수단과 인심을 안정시키는 관대한 정책으로 폭력정권후에 나타날 수 있는 정치적 혼란을 막아냈다. 이렇게 하여 그는 순조롭게 황태자의 지위에 오른 것이다.

 

이 전광석화와 같은 순간에, 대당제국의 역사는 완전히 새로운 장을 열게 된 것이다. 이 참신한 장은 이처럼 위대하고 현란하다. 현무문의 붉은 피는 금방 새로운 시대로 덧칠되고 만장의 광망에 가려진다. 그러나, 무덕구년 육월 사일은 이세민의 생명중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상처이다. 만일 이세민이 나중에 만들어진 정관의 위대한 치적을 천고에 빛나는 비석이라고 본다면, 비석의 기단은 황량한 풀로 뒤덮인 무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