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궐특근비(闕特勤碑): 한어와 돌궐어로 전혀 다르게 쓰여진 비문

by 중은우시 2019. 2. 26.

글: 천지사화군(天地史話君)


유라시아대륙의 북방대지에는 많은 유목민족이 활약했다. 서부는 흉노(匈奴)의 지계(支係)가 동부는 동호(東胡)의 지계가 있었다. 역사적으로 서로 다른 부락과 민족이 상호 융합하면서 전후로 흉노, 선비, 유연등의 민족이 흥기했다.


수당시기에, 돌궐인이 방대한 제국을 거립한다. 당나라초기에 여러번 남하하여 침입한다. 이세민이 즉위한 초기에는 결맹정책을 맺는다. 정관3년(629년) 가을, 당태종은 이정(李靖)으로 하여금 이세적(李世積), 시소(柴紹), 설만철(薛萬徹)을 이끌고 10만의 병력을 이끌고 길을 나누어 돌궐을 친다. 이적은 기발한 전략으로 승리를 거두고 정양(定襄)에서 돌궐을 대파한다. 힐리(頡利)칸은 도망친다. 이정은 길을 막아 그 부족 5만여명의 항복을 받아낸다.


당나라의 지속적인 타격으로, 동돌궐은 귀순하여 점점 중원민족에 융합된다. 서돌궐은 중앙아시아로 이주하여, 최종적으로 유럽까지 진출하여 오스만투르크제국을 건립한다.


돌궐이 중국에 영향을 끼친 것은 주로 수,당시기이다. 사서에 기록도 그다지 많지 않다.


100여년전에, 러시아의 학자는 몽골국 항애산(杭愛山)이북에서 석비를 하나 발견한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궐특근비>이다. 비의 정면좌 좌우측에는 돌궐문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당현종의 친서가 한문으로 새겨져 있다. 한문내용은 당현종이 이미 죽은 돌궐칸 궐특근을 추모하는 내용이다.



<궐특근비>의 윗부분에는 "고궐특근지비(故闕特勤之碑)"라고 새겨져 있다. 비문은 당현종의 어제어서(御製御書)이다. 자체는 예서(隸書)이고, 14행에 행마다 36자가 있어 반듯하고 법도에 들어맞는다. 비문에서, 당현종은 먼저 당나라와 돌궐간의 역대 우호관계를 설명하고, 당현종이 돌궐칸을 아들로 삼은 후, 쌍방간에 평화가 이루어졌다고 강조했다.


<궐특근비>의 나머지 3면은 돌궐문이다. 비문은 비가(毗伽)칸의 말투로 쓰여있다. 그 내용은 한문의 내용과 전혀 다르다. 돌궐문의 비문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한인의 말은 시종 달콤하다. 한인의 물건은 시종 아름답다. 달콤한 말과 아름다운 물건으로 속인다. 한인은 이런 방식으로 멀리 사는 민족들이 그들에게 접근하게 만든다. 한 부락이 이렇게 그들에게 가까이 가서 거주하게 되면 한인들은 악의를 드러낸다. 한인은 진정으로 총명한 사람과 진정으로 용감한 사람이 발전하게 놔두지 않는다. 만일 누군가 잘못을 범하면, 항인은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고, 그들의 직계친족, 직계씨족, 부락을 없앤다. 너희 돌궐인들은 일찌기 달콤한 말고 아름다운 물건에 유혹되어 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하였다." 


<궐특근비>의 돌궐문은 당나라를 고발하는 내용이다. 이는 유목민족과 농경민족간의 짧은 평화시기의 실질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