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 30

유비는 왜 항상 다른 제후들과의 합작을 끝까지 유지하지 않았을까?

글: 장공성조(長空星照) 유비는 평원상(平原相)이 된 후, 자립의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실력과 당시 천하형세로 인하여, 제후들은 부득이 다른 제후와의 합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통해 갈등이 첨예한 적을 상대하고, 다른 제후들에게 병합되지 않을 수 있었다. 제후들이 유비와 합작한 경우는 적지 않다. 그러나 유비는 시종 다른 제후들과의 합작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일까? 유비가 평원상이 된 것은 공손찬때문이다. 공손찬이 원소와 싸우기 때문에, 유비와 청주자사 전해(田楷)는 제(齊)의 딸에 주둔했다. 조조는 서주를 공격했고, 서주자사 도겸이 도와달라고 한다. 전해와 유비는 함께 가서 그를 도와준다. 이때 유비에게는 1천여명의 병사가 있었다. 그리고 유주의 일부 소..

원소(袁紹)는 어떻게 기주(冀州)를 차지했는가?

글: 천추원(千秋遠) 삼국시대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런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원소는 수수께끼같다. 그가 관도지전 이후에 보인 모습을 보면 그다지 우수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기주, 청주, 유주, 병주의 4개주를 차지할 수 있었을까? 당시 전체 천하는 겨우 11개주인데, 그중 4개주를 차지하다니, 그 시대의 최강자가 아니었던가. 그중의 기주는 원소가 성공한 기반이 되었다. 그렇다면 원소는 어떻게 기주를 얻었을까? 이건 기주목(冀州牧) 한복(韓馥)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한다. 1. 아무 생각이 없는 행운아 한복 기주라는 곳은 백성도 많고 물산도 풍부한 좋은 지방이다. '천하지중자(天下之重資)'라고 불렸다. 기주목은 자연히 좋은 관직이었다. 기주목 한복은 원래 어사중승이고, 기주는 그와 관계가 없었..

춘추(春秋)시기 주나라(周) 이외에 칭왕(稱王)한 제후국은?

글: 정회역사(情懷歷史) 춘추시기는 기원전770년(주평왕원년) 주평왕이 동천하여 동주(東周)를 시작한 그 해로부터, 기원전476년(주경왕44년) 전국전날까지 모두 295년간을 가리킨다. 일설에는 기원전453년, 한, 조, 위가 지씨(智氏)를 멸한 때까지로 보고, 일설에는 기원전403년 삼가분진때까..

지도로 보는 삼국(三國): 12장의 지도로 본 군웅세력의 변화

글: 천지사화(天地史話) 동한말기에 정국은 안정되지 못했다. 외척이 권력을 농단하고, 환관이 권력을 장악한다. 전쟁은 수십년간 지속되고, 비용도 많이 들었다. 요역과 병역의 부담이 무거워진다. 184년, 장각이 태평도를 창립하고, 청주, 서주, 유주, 기주, 형주, 양주, 연주, 예주의 8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