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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세창18

공덕성(孔德成) : 공자의 77대 직계 후손 글: 황경도(黃驚濤) 2천여년의 역사에서 공자의 적전(嫡傳) 후예중 산동성 곡부의 공부(孔府)를 떠난 사람은 단지 세 사람이다. 그중 가장 최근의 사람이 바로 공덕성(孔德成)이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장개석이 1948-1949년 대륙을 떠나 대만으로 도망치면서 대량의 황금과 문화재 이외에 일부러 3명을.. 2007. 8. 29.
북양정부 총통 4명의 하야 이후의 생활 여원홍(黎元洪) 호북 황피(黃陂) 사람. 1864년 출생. 1911년 무창기의때 혁명군에게 붙잡혀 중화민국군정부 악군대도독 겸 총사령관이 되어, 봉건황제제도를 무너뜨린 지도자가 됨. 1912년 남경임시정부의 부총통에 당선됨. 1916년 원세개가 죽은 후 대총통의 자리를 승계함. 민국초기의 정계에서 여원홍은.. 2007. 5. 7.
북양군벌 최후의 마지노선: 죽어도 민족반역자는 되지 않는다. 1930년대, 일본인들이 중국을 침입했다. 그들은 아마도 중국의 '이이제이(以夷制夷)'전술을 배워서인지, 중국에서도 '이화제화(以華制華)'의 전술을 사용하려고 했다. 북양군벌의 우두머리들은 일본인들이 회유하려는 첫번째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일본인들의 예상과는 달리, 이들 무식한 중국군인들.. 2007. 1. 19.
원정설(袁靜雪) : 나의 부친 원세개 나의 부친이 임시총통선서를 한 후 다시 조금의 시간이 흘렀다. 청황실은 중남해를 내놓았다. 우리는 다시 당시 철사사후통 육군부(지금의 중국인민대학 기숙사)에서 중남해로 이사했다. 나의 부친은 이때부터 중남해에 들어가 거주했고, 다시는 신화문(중남해의 정문)을 나서지 않았다. 이것은 "동흥.. 2007. 1. 12.
원세개의 집권후의 5차에 걸친 내각변동 원세개가 신해혁명의 과실을 빼앗아 권력을 장악한 이후, 몇년간의 풍파속에 5차례에 걸친 내각이 탄생하였다. 1. 당소의(唐紹儀) 내각 당소의는 청나라 말기에 원세개의 신임을 깊이 받던 관료이다. 이 때 그는 원세개를 위하여 힘을 보태어 주었었다. "조화남북"을 내세웠고, 그는 혁명에 동조하여 동.. 2006. 12. 7.
서세창(徐世昌) : 관운이 형통했던 풍운아 서세창은 청나라때는 군기대신으로 신하로서 최고의 직위에 까지 오르고, 원세개가 집권하였을 때는 국무경(國務卿)에 올랐으며, 민국시대 북양정부에서는 대총통에까지 오르게 된다. 그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요직을 차지하였는데, 그의 정치적인 특색을 보면 이렇다. 정치적인 업적은 거의 없다. .. 2006. 1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