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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65

애국주의(愛國主義)를 내세우지 말라! 글: 만천(萬千) ​ 최근 들어 독특한 샤오펀홍(小粉紅)들은 자신을 '애국자'로 자처하면서 정부를 비판하는 모든 사람들을 물어뜯고 있다. 기실, 그들은 지금까지도 "국가"의 개념을 잘 모르고 있다. 무엇이 "국가"인가? 국가라는 것은 그저 공동(空洞)의 개념이다. 만일 실체라면 다음의 몇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먼저 토지가 있어야 한다. 그후에 이 토지 위에서 생활하는 한 무리의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 무리의 사람들이 창조한 민족문화와 역사문명이 있어야 한다. 진정한 애국자라면 이상의 요소를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의 현대사회에서의 개념은 민중의 선거로 이 사회를 관리하는 소수의 집정자를 가리킨다. ​ 진정한 애국자는 이 토지상의 민중, 자연환경과 역사문화를 사랑해야 하고, 당파, 정부와.. 2024. 2. 13.
중화민국의 12개 직할시(直轄市) 글: 민초사운(民初思韻) "직할(直轄)"은 고대에 "직예(直隸)"라고 불렀다. '직예제'는 송(宋)나라때부터 시작되었다. 북송은 "로(路)"를 성급(省級)행정단위로 삼았다. 23로(路)를 설치하는 외에 중앙정부가 직접 관할하는 부(府)가 있었다. 예를 들면 북경의 수도인 개봉부(開封府)이다. 1946년, 국민정부는 '헌법'에서 여러번 '직할시'를 언급한다. 그러나, 제11장의 '지방제도'에는 단지 '성(省)', '현(縣)'만 있고, 직할시와 지방(서장)에 관한 규정은 없었다. 그리고 그후 공문서에서는 "원할시(院轄市)"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리하여, 직할시는 직접 사용되지 않는다. 1921년 7월 북경정부가 반포한 에서 경도시(京都市)는 내무부가 직접 감독한다고 규정했다. 이는 중앙정부가 직접 감독하는.. 2023. 7. 6.
"치파오(旗袍)"의 진실된 역사... 글: 주한경(周漢卿) 솔직히 말해서, 필자는 이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 글은 관련전문가들이 쓰도록 남겨둘 생각이었다. 그러나 여러 해가 지났지만, 필자는 그 어느 전문가/역사학자/근대사전문가/의류전문가/지식인/작가들도 치파오의 진정한 역사를 쓰지 않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정본청원(正本淸源)하기 위하여 남자인 필자가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치파오(旗袍)는 "장삼(長衫)/치파오(祺袍)"의 오해이다. 그 이름은 오랫동안 "치파오(祺袍)" 혹은 "장삼"으로 불려왔다. 영문으로는 cheongsam이라고 불렸는데, 이는 '장삼'의 발음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장삼'이 원래 이름이다. 그런데 왜 치파오(祺袍)로 바뀌었다가 다시 치파오(旗袍)로 바뀌게 된 것일까? 간단하다면 간단한데, 복잡.. 2023. 3. 6.
사도뢰등(司徒雷登): 연경대학(燕京大學) 초대 총장 글: 청석두설(聽石頭說) 나는 지금까지 돌아가신 한 총장에 대하여 글을 쓰고 싶었다. 그가 창립한 연경대학(燕京大學)은 내가 공부할 인연을 갖지는 못했지만, 나에게 아주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연경대학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북경대학의 캠퍼스에서 한 남학생이 어느 써클의 셔츠를 입고 있는데, 등뒤에 "인진리(因眞理), 득자유(得自由), 이복무(以服務)"라는 아홉글자가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대학생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인생의 의미에 대한 미망(迷惘)에 빠져 있었는데, 그 몇 글자는 나에게 서광으로 비쳤었다. 나중에 나는 그 아홉글자가 연경대학의 교훈(校訓)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북경대학을 연원(燕園)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바로 북경대학의 핵심지역인 미명호(未名湖)와.. 2023. 1. 4.
상해탄제일미녀(上海灘第一美女) 장매영(蔣梅英)살인사건 글: 시광고사(時光故事) 예로부터 지금까지, 세월이 흘러도 용모가 노쇠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많은 여인들의 갈망이다. 오늘 얘기할 주인공은 천생여질(天生麗質)의 미인으로 환갑의 나이에도 여전히 미모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그녀의 미모가 그녀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비극적인 운명을 가져다 주게 되었다. 그녀는 바로 "상해탄제일미녀"라고 불리우던 장매영이었다. 그녀는 바로 "미려(美麗)"브랜드 담배의 모델이기도 했다. 강소, 절강은 자고 이래로 미녀를 많이 배출한 지역이다. 장매영은 1913년 절강성 진해(鎭海)의 한 부유한 상인집안에서 태어난다. 부모는 모두 비교적 개명한 사람들이어서, 당시 사상이 수구적인 사람들처럼 "여자는 재주가 없는 것이 덕이다"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2022. 2. 7.
민국시대의 12개 직할시 글: 역사망(歷史網) "직할(直轄)"을 고대에는 "직예(直隸)"라고 불렀다. 직예제도는 송나라때부터 시작된다. 북송은 "로(路)"를 설치하여 현재의 성급행정구역으로 삼는다. 23로외에 중앙정부가 직접 관할하는 부(府)가 있었다. 예를 들어 북송의 경사소재지인 개봉부(開封府)이다. 1946년 민국정부에서 통과된 '헌법'에는 여러번 '직할시'가 언급되어 있다. 다만 제11장 '지방제도'에는 단지 '성(省)', '현(縣)'만 규정되어 있고, 직할시나 지방(서장)에 대한 규정은 없었다. 그리고 이후의 공문에서도 여전히 "원할시(院轄市)"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직할시"라는 명칭이 직접 시행되지는 못했다. 국민정부에는 일찌기 12개의 직할시가 있었다. 1921년 북경정부가 반포한 에는 경도시(京都市)를 내무부가 직.. 2021. 12. 24.
펑솨이(彭帥)의 인터뷰영상에 대한 해외매체의 반응들... 글: 서간(徐簡)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중국의 테니스스타 펑솨이가 새로운 영상에 등장하여 그녀는 자신의 '성폭행'을 부인했고, 자신이 '행동의 자유'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소식은 즉시 해외매체에서 논란이 되었으며 일부 서방의 기자들은 중국의 이런 수법은 "월묘월흑(越描越黑, 그리면 그릴 수록 검어진다. 얘기하면 할수록 더욱 엉망이 되어 버린다)"이라고 본다. 12월 19일, 중국의 기자는 트위터에 영상을 하나 올렸다. 싱가포르의 에서 만든 해당매체가 펑솨이에 대하여 진행한 짧은 인터뷰영상이다. 기자는 스스로 이는 '친구'가 그녀에게 전해준 영상이며, 그 기자는 사진도 하나 붙여놓았다. 펑솨이, 야오밍(姚明), 올림픽요트금메달리스트 쉬리자(徐莉佳) 그리고 전 탁구선수 왕리친(王勵勤)이 같이 찍은 사.. 2021. 12. 22.
1960년의 대상해(大上海): 기아(棄兒)가 넘쳐나던... 글: 세상연구소(世相硏究所) 1960년을 전후하여 진소영(陳素英)은 무석시복리원(無錫市福利院)의 직원이었다. 그녀의 기억에 따르면 마치 하룻밤만에 복리원이 아이들로 넘쳐나게 된 것같았다. "복리원의 주위에는 매일 버려진 영아(嬰兒)들이 있었고, 파출소와 가도주민위원회에서도 계속 주운 아이들을 보내왔다...." 2005년 12월, 산동심친단(山東尋親團)이 무석에서 심친회(尋親會, 부모찾기모임)를 열었는데, 77세의 진소영노인은 반세기전의 그 일막을 떠올렸다. 이런 상황이 일어난 것은 무석만이 아니었다. 신속히 늘어나는 기아는 장쑤,저장일대의 여러 도시의 복리원들에 인구팽창의 압력을 가했다. 이런 흐름은 결국 상해까지 번져간다. 상해의 복리원도 곧 아이들이 꽉 차버린다. 기아는 상해의 길거리에서 계속 발견되.. 2021. 12. 21.
유태인들은 왜 중국 만주로 몰려들어왔을까? 글: 나일소(那日蘇) 유태인들의 상업적 두뇌는 사람들이 즐겨 얘기하는 주제이다. 과거 중국의 만주는 황량한 땅이라고 여겨졌었다. 유태인의 고향인 중동에서 만주까지는 거리가 수천킬로미터나 된다. 그러나 풍운이 휘몰아치던 근대에 머나먼 공간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유태인과 만주는 서로 얽히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실제로는 연원이 깊다. 19세기말부터 유태인들은 대량으로 중국의 만주지역으로 몰려든다. 그들은 자신의 장사수완을 가지고 만주지역에서 경제기적을 일궈낸다. 하르빈의 길거리에서 유태인들은 한때 상업의 80%를 차지한 바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점점 이 땅에서 사라졌고, 지금은 유태인스타일의 건축과 묘지만이 옛 시절을 기억나게 해주고 있다. 만주의 근대역사는 기본적으로 종횡의 두 철도.. 2021. 4. 16.
민국시대 최대의 서화위조단: 4건은 미국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글: 연석서원(硯石書院) 1947년 단오절 전날, 당시 상하이 소장계의 거물인 담경(譚敬)은 서화위조전문가인 탕안(湯安)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에게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원나라 조맹부(趙孟頫)의 의 복제품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한다. 둘은 바로 의기투합했고, 담경은 장소를 제공한다. 바로 상하이 기제로(祈齊路, 지금의 악양로) 175농 2호의 구식 화원양방(花園洋房)이다. 탕안이 앞장서서 허소(許昭), 정죽우(鄭竹友), 호경(胡經), 왕초군(王超群)등이 모인다. 이들은 모두 상하이에서 뛰어난 서화위조전문가들이다. 이렇게 이들은 근대역사상 가장 유명한 서화위조활동을 벌이게 된다. 위조의 주모자는 소장가인 담경이다. 담경(1911-1991), 자는 화암(和庵, 龢盦)이고 재호(齋號)는 구재(區齋)이다. 조적은 .. 2021. 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