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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우춘12

명나라 초기의 십대맹장(十大猛將) 글: 주팔피(朱捌皮) 중국역사상 명나라의 명장은 당나라에 바로 다음 간다. 그리고, 명나라초기는 명장이 가장 많이 배출된 시기이다. 그중 10위내에 드는 명장들은 누구일지 살펴보기로 하자. 10위 경병문(耿炳文) 장흥후(長興侯). 주원장(朱元璋)의 호주이십사기(濠州二十四騎)중 한명. 수성(守城)의 제일명장. 혼자서 장흥을 십여년이나 지켜내면서, 장사성(張士誠)의 진격을 버텨내어, 주원장이 서쪽에서 진우량(陳友諒)과 천하를 놓고 싸우는데 배후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주었다. 9위 탕화(湯和) 신국공(信國公). 주원장의 죽마고우로 반란의 길로 들어서도록 인도한 인물임. 나중에 주원장을 따라 집경(集慶)을 점령하고, 진강(鎭江)을 공격한다. 전공으로 통군원수(統軍元帥)로 승진한다. 나중에 상주(常州),.. 2022. 7. 6.
주중팔(朱重八)은 왜 주원장(朱元璋)으로 개명하였을까? 글: 만풍모우(晩風暮雨) 명나라의 개국황제 주원장은 맨밑바닥에서 시작하여 황제에 오른다. 그는 중국역사상 가장 전설적인 색채를 지닌 제왕중 하나이다. 주원장의 원래 이름은 주중팔이다.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당시의 많은 보통사람들과 같이 숫자로 이름을 지었다. 숫자로 이름을 .. 2020. 2. 27.
대명개국공신 상우춘(常遇春) 세 아들의 수수께끼 글: 소가노대(蕭家老大) 상우춘은 자가 백인(伯仁)이고, 호는 연형(燕衡)이다. 남직예(南直隸) 봉양부(鳳陽府) 회원현(懷遠縣)(지금의 안휘 방부 회원현) 사람이다. 명나라의 개국장군이며, 원 지정15년(1355년)에 주원장에 귀부(歸附)하여 스스로 나서서 선봉장이 되어, 적을 물리친다. 그는 .. 2019. 12. 27.
중국역사상 전신(戰神)이 될만한 72명의 장수 글: 천지사화(天地史話) 홍콩대작영화를 보면 우리는 경찰이건 흑사회이건 모두 관공(關公)을 모신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인상 속에서 무묘(武廟)에 대한 것은 모두 청나라때부터 시작된 관공무묘(關公武廟)에 머물러 있다. 혹은 아마도 살신(殺神) 백기(白起)를 떠올릴지.. 2019. 10. 2.
건문제와 주체의 마지막 결전 글: 두문자(杜文子) "정난지역(靖難之役)"의 4년째, 주체의 연군(燕軍)은 건문제의 조정군과 계속 싸우면서 이미 장강을 넘었고, 나날이 남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렇게 되자 건문제는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건문제는 누구에게 의지하여야 한단 말인가? 당연히 그 스.. 2018. 6. 27.
코케테무르(擴廓帖木兒): 주원장이 칭찬한 기남자(奇男子) 글: 백과두조(百科頭條) 역사상 기인은 수도 없이 많다. 이 글에서 소개할 사람은 주원장이 '기남자'라고 칭찬했던 인물이다. 그는 왕보보(王保保)이다. 만일 이 이름이 낯설다면, 이렇게 말해보겠다. 조민(趙敏)이 오빠이다. 그러면 아마도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릴 것이다. 김용의 <의천.. 2018. 2. 22.
주원장은 왜 원순제를 도망치도록 놔두었는가? 글: 유려평(劉黎平) 원순제(元順帝)가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은 하나의 수수께끼였다. 일찌기 1368년 칠월, 서달(徐達)의 북벌군은 하북 통주(通州)에 도착한다. 원왕조의 도성에 하루이틀이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기괴하게도, 북벌군사통령 서달은 통주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 2013. 8. 15.
건문제 주윤문의 황위는 동생의 것을 빼앗은 것이다. 글: 자작자애2 홍무25년 구월 십이일, 명나라조정에서는 큰 사건이 하나 벌어진다. 주윤문(朱允炆)을 황태손(皇太孫)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명나라의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주윤문이 황태손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가 황태손이 되는 것은 명분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 2013. 4. 13.
주원장은 개국공신들을 어떻게 죽였는가? 글: 이응전(李應全) 많은 사람들은 황제가 된 후, 주원장은 사마살려(卸磨殺驢), 과하탁교(過河拆橋), 토사구팽(兎死狗烹)했으며, 항상 구실을 찾아서 공신을 도살한 마귀라는 것이다. 사실이 그러한가? 만일 공신들이 건국전과 건국후에 모두 높은 덕행을 보였다면 아마도 그런 일.. 2012. 3. 21.
원명(元明)교체기: 동실조과(同室操戈), 동근상전(同根相煎) (II) 4. 남방한인의 동근상전, 북방몽골인의 동실조과 차칸테무르가 죽자, 주원장은 아주 편안해 졌다. 더 이상은 북쪽으로부터의 위협이 없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전력을 다하여, 남방의 각 한인무장세력들을 손보기 시작한다. 1363년, 진우량과 파양호에서 대전을 벌여 결정적인 승리를 취득하고 강서 전.. 2009. 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