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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건문제)

건문제와 주체의 마지막 결전

by 중은우시 2018. 6. 27.

글: 두문자(杜文子)


"정난지역(靖難之役)"의 4년째, 주체의 연군(燕軍)은 건문제의 조정군과 계속 싸우면서 이미 장강을 넘었고, 나날이 남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렇게 되자 건문제는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건문제는 누구에게 의지하여야 한단 말인가? 당연히 그 스승이면서 친구인 중신 방효유(方孝孺)이다. 방효유는 근심어린 건문제의 얼굴을 보자, 위안하는 말을 해준다: "황상께서는 절대로 조급해 하지 마십시오. 성안에는 아직 20만의 강병이 있습니다. 경성은 고황제 주원장이 아주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성벽은 높고, 호성하는 깊기로 전국에서 최고입니다. 양식도 풍부하니, 굳건히 지켜내는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방효유의 위안되는 말과 설명에 극도로 긴장해 있던 건문제는 약간 마음이 놓인다.


방효유는 건문제에게 이렇게 건의한다: 즉시 명을 내려, 남경성 안의 여러 왕들이 각각 나누어 남경성의 성문을 지키게 하도록.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너 주체가 아무리 악독해도, 형제의 체면이나 정분까지 무시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건문제는 곡왕(谷王) 주수(朱穗), 안왕(安王) 주영(朱楹)등 몇몇 번왕으로 하여금 경성의 성문을 지키게 한다.


그외에 방효유는 건문제로 하여금 곡왕 주수와 안왕 주영등을 주체에게 보내어 담판하도록 건의한다. 주체에게 땅을 떼어줄테니 의화(議和)하자는 말이다. 그러나 주체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동생들이 그런 말을 하는게 적절한지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너희도 건문제에게 삭번을 당하지 않았느냐고 일깨워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오히려 주체가 건문제와 여러 번왕들의 관계를 이간하는데 성공한다.


의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연군은 계속 가까이 다가온다. 그리하여 일찌감치 넋이 나간 건문제는 더욱 불안해 한다. 심지어 대신들의 앞에서 대성통곡하기까지 한다. 어떤 대신은 건문제에게 이렇게 건의한다: 절강(浙江)일대로 피난을 먼저 가자고, 또 다른 대신은 차라리 호남지역으로 피난을 가자고 한다. 그러나 방효유는 이렇게 주장한다. 경사를 굳게 지키며, 각지의 근왕군사들의 지원을 기다려야 한다. 만일 불리하면 그때 사천등지로 가서 병마를 모으면 된다고 본 것이다.


건문제는 최종적으로 방효유의 건의를 받아들여, 남경을 고수하기로 한다. 한편으로 위국공(魏國公) 서휘조(徐輝祖)과 개국공(個國公) 상우춘(常遇春)의 아들인 상승(常昇)을 하여금 군대를 이끌고 연군의 진격을 막도록 하고, 다른 한편으로 사람을 보내어 납환(蠟丸)으로 싼 조서를 가지고 몰래 성밖으로 나가게 했고, 조서의 내용은 각지의 군대로 하여금 급히 경사로 와서 황제를 호위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때가 이미 늦었다. 남경의 주위는 이미 주쳬의 연군이 물샐틈없이 장악하고 있었다. 이들 조서는 모조리 연군에 빼앗기고 하나도 전달되지 못한다.


연군이 남경성에서 점점 가까워지자, 어떤 대신들은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아예 드러내놓고 주체를 도운다. 서달(徐達)의 작은 아들 서증수(徐增壽)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그는 조정의 좌도독(左都督)으로 있으면서, 암암리에 주체를 위해 일한다. 건문제는 서증수의 후안무치한 행적을 발견하고 난 후, 지금까지 문약했던 그는 더 이상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손에 쥐고 있던 검으로 서증수를 궁전복도에서 찔러죽인다. 이것은 아마도 건문제 정치생애에서 유일하게 크게 화를 낸 경우일 것이다.


금방 주체는 남경성에 대한 공격명령을 내린다. 기실 주체도 알고 있었다. 남경성은 부친 주원장이 아주 견고하게 만들어서, 군사방어능력을 절대로 낮게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그리하여 그는 선봉관 유보(劉保)를 파견하여 남경성을 한바퀴 둘러보게 한다. 유보는 남경성의 조양문(朝陽門)일대는 거의 비어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군사적인 방비가 거의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기괴한 것은 주체가 조양문으로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은 것이다. 왜 그랬을까? 조양문은 비교적 민감한 지역이다. 그곳은 약간만 안으로 들어가면 명황궁의 동안문(東安門)이 된다. 그리하여 이곳은 성으로 들어가는 가장 편리하고 가장 빠른 문이다. 그러나 조양문의 바깥은 명효릉(明孝陵, 주원장의 능묘)의 금구(禁區)이다. 주체는 조제(祖制)를 수호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거병했는데, 여론상으로 자신이 불충불효하다는 평가를 받게 되면 곤란했다. 그래서 이 지름길은 포기한다.


주체는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남경성에는 대량의 관군이 있어, 함부로 공격하다가는 상대방의 결사항거에 부닥치게 되고 그러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는 것을. 자신이 이렇게 고생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제남성(濟南城)을 3개월동안 공격했지만 함락시키지 못했었다. 그래서 주원장은 남경을 공격할 때, 군사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심리전도 같이 썼다. "싸우지 않고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고의 병법이다." 그리하여 그는 남경성안의 동생들과 여동생들에게 서신을 보낸다. "나 주체는 다른 생각을 품은 것이 아니다. 그저 간신을 제거하고, 조제를 회복하려는 것이다. 실제로는 조카황제를 내가 어떻게 할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런 수법이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먹혔다.


다시 말해서 이때의 남경성안의 건문제 조정은 이미 와해되었다. 대신들은 투항할 준비를 하거나 망명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건문제에게 있어서, 이 지경에 이르러 결국 패배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최후의 결전을 치르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는 방효유의 건의를 받아들여, 친왕인 숙부들로 하여금 남경성의 각 성문을 지키도록 명한다. 겉으로 보기에 이는 '절묘'한 아이디어이다. 그러나 그가 어찌 알았으랴. 이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 큰 위험을 수반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당시 주체의 진공으로 말하자면, 만일 남경성안의 그 20만 수비군이 잘 지키기만 하면, 주체가 빠른 시간내에 쳐들어오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의외의 사건이 이때 발생한다. 명을 받아 남경의 북쪽 금천문(金川門)을 지키고 있던 곡왕 주수와 조국공(曹國公) 이경륭(李景隆)은 건문제를 위하여 임무를 완성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직무상의 편의'를 이용하여 자신을 위한 일을 처리한다. 두 사람은 머리를 굴려보고는, 건문제가 끝났다고 본다. 연왕이 바로 미래의 황제이다. 하루빨리 새 황제에게 붙어야 하고, 공을 세워야 한다. 그러면 향후 원로로 지낼 수 있다.


그리하여 주수와 이경륭은 금천문의 성루를 순시할 때, 멀리 주체의 깃발이 보이자, 즉시 금천문을 열어주고, 주체의 연군이 입성하도록 맞이한다. 주체는 그 말을 듣고, 기뻐서 어쩔 줄 모른다. 이것은 하늘에서 떨어진 떡이다. 받아먹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리하여 연군으로 하여금 신속히 성안으로 진입하도록 명한다. 연군이 금천문을 진입할 때, 위국공 서휘조라는 건문제의 충실한 대장은 비록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힘을 모아서 저항한다. 그러나 얼마후 패배하고 만다. 이후 연군은 거의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남경성을 장악한다.


이제 정난지역은 주체의 승리로 끝났다.

기실 만일 건문제가 방효유에 대하여 맹목적으로 신뢰하지 않았더라면, 주체가 남경으로 다가올 때, 일찌감치 회남 일대의 매은(梅殷), 철현(鐵鉉)에게 가서 싸울 수 있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한번 더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건문제가 번왕들로 하여금 성문을 지키게 할 것이 아니라, 성안의 20만병력을 서휘조에게 넘겨주어 통일적으로 지휘하게 했더라면, 남경성은 아마도 그렇게 일찍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