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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위15

유선(劉禪): 그는 기백이 큰 황제였다. 글: 유아독존(惟我獨尊) 성명: 유선 별명: 자 공사(公嗣), 아명 아두(阿斗), 촉후주(蜀後主) 성별: 남 연대: 삼국시대 종년: 64세 어록: 차간락(此間樂), 불사촉야(不思蜀也). 평가: 도와줘도 안되는(扶不起來) 촉의 유비가 죽기 전에 유선을 제갈공명에게 탁고(托孤)하였고, 유선은 촉후주가 .. 2015. 3. 5.
제갈량은 왜 위연을 싫어했을까? 글: 조단양(趙丹陽) 육출기산(六出祁山)하면서 영토는 조금도 얻지 못한 제갈량은 오장원에서 피로와 수치가 겹치면서, 병세가 침중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하직할 때, 장사(長史) 양의(楊儀), 장군 위연에게 여러가지로 해석가능한 정치적 유언을 남긴다. 이 유언은 양의가 보기에 자신.. 2015. 2. 12.
무후사(武侯祠)는 왜 성도(成都)가 아닌 면현(勉縣)에 두었을까? 글: 호각조(胡覺照) 여기에서 먼저 설명할 일은 현재 성도의 무후사는 원래 소열묘(昭烈廟), 즉 유비에 제사지내는 묘였다. 단지 나중에 무후사로 바꾸었을 뿐이다. 서촉청권이 공식적으로 결정한 무후사는 바로 한중(漢中)이 면현(勉縣) 무후묘(武侯墓) 원소재지에 있었고, 그후에 묘와 .. 2015. 2. 10.
제갈량이 건립한 형주적(荊州籍) 방파체계 글: 호각조(胡覺照) 형주(荊州)의 패배와 이릉(夷陵)의 패배라는 두 번의 타격을 입은 후, 서촉(西蜀)은 인재결핍이 더욱 두드러진다. 제갈량이 국가를 운영하는 초기에 이로 인하여 골머리를 앓는다. <화양국지>의 기록에 따르면, 서촉은 일찌기 성도의 남쪽에 높은 누대를 지어 사방.. 2014. 12. 16.
강유는 어떤 점에서 제갈량만 못한가? 글: 염호강(閻浩崗) 강유(姜維)는 제갈량이 고르고 고른 유일한 적전제자(嫡傳弟子)이다. 제갈량이 제자를 받으려는 마음은 삼고초려에서 나올 때부터 있었다. 그러나 여러해가 지나도록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 그는 분명 마속(馬謖)을 진지하게 고려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큰 기대.. 2013. 6. 27.
제갈량: 미묘한 군신관계로 본 인격분열 글: 호각조(胡覺照) 필자는 <출사표에서 한 것은 황제꿈이다>라는 글에서 이미 제갈량이 황제가 되려고 했다는 근거를 나열한 바 있다: (1) 남정에서 성도로 돌아올 때, 이미 '오석'을 받았다. 즉, 금부월 1병, 곡개 1구, 전후우보거 각 1부, 취고수 각 1대, 호분용사 육십명. 이것은 대신.. 2012. 8.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