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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법12

사마광(司馬光): 완벽한 일생의 유일한 오점 글: 문재봉(文裁縫) 북송의 명상(名相) 사마광을 얘기하자면, 많은 사람들은 그가 어렸을 때 사람을 구하기 위해 항아리를 깬 것이라든지, 왕안석(王安石)의 변법에 반대한 것이라든지, 기년체사서인 을 편찬한 것등은 알고 있지만, 사마광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하여는 아마도 잘 모르고 있을 것이다. 사마광이라는 사람은 어려서부터 어른스러웠다. 마치 동년이 없었던 것처럼. 사서기록에 따르면 그가 공부를 시작해서 글을 알면서부터 "성인과 같이 늠연했고, 를 들으면 대강의 의미를 이해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고, 배고픔과 목마음 추위와 더위도 모를 정도였다." 19살에 진사갑과에 급제했고, 성격은 강정(剛正)했으며 사람됨은 집요(執拗)했고, 다른 사람들과 이치를 따지는 것을 좋아.. 2020. 8. 12.
왕안석(王安石)의 아들 왕방(王雱)을 둘러싼 수수께끼 작자: 미상 왕방(1044-1076), 자는 원택(元澤), 왕안석의 아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는 왕안석이 변법을 추진할 때 힘이 되는 조수였다고 한다. 일찌기 신법의 기획과 제정에 참여하고, 신법의 추진과정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사람의 그의 지력(智力).. 2018. 1. 13.
사상잠화(四相簪花): 신기한 송나라때 이야기 글: 노채(老蔡) 명나라 구영(仇英)의 <사상잠화도> 송나라때는 기이한 이야기들이 많다. 문인과 사대부들은 그런 이야기를 모아서 기록으로 남기길 좋아했다. <몽계필담보록권삼> <후산담총> <청파잡지>에는 모두 같은 이야기 하나를 적고 있다. 즉, "사상잠화"이야기이다.. 2017. 12. 10.
산진자투(散陣自鬪)의 진나라군대가 어떻게 육국을 이겼을까? 글: 최강냉파중(最强冷吧衆) 진나라의 굴기에 관하여 그리고 최종적으로 육국을 병합한 것에 관하여 얘기하려면 모두 진나라군대의 전투력이라는 이슈를 피해갈 수가 없다. 어쨌든 전통적으로 누군가 나서서 진나라의 사당이 좋다고 떠들어도,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전쟁의 제일선에.. 2017. 10. 2.
"소흥사야(紹興師爺)" 부침록 이홍장글: 기련해(紀連海) "소흥사야"라는 단어의 '소흥'은 청나라때의 소흥부(紹興府)를 가리킨다. 청나라때의 소흥부는 산음, 회계, 소산, 제기, 여요, 상우, 승현, 신창의 8개현을 포함하고, 항주만의 남안에 위치한다. 전체지구는 회계산을 중심으로, 포양강과 조아강을 양날개로 하여, .. 2016. 2. 18.
전국시대 4명의 변법가 글: 하림여추생(夏臨與秋笙) 전국시대는 풍운이 변환하고 백가쟁명했다. 그리하여 적지 않은 대담한 역사인물을 배출한다. 영웅이라고 말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역사에 이름을 남긴 호걸이라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얘기할 사람은 전국시대 4명의 변법의 달인들이다. 전국시.. 2015. 5. 6.
진나라의 굴기 글: 이중천(易中天) 진나라의 굴기는 확실히 변법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변법은 어쩔 수 없이 몰려서 하게 된 것이다. 이 점은 진효공이 그의 "구현령(求賢令)"에서 분명하게 말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제후들이 진나라를 비천하게 여긴다. 추악하기 그지없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기계(.. 2014. 4. 29.
사마착(司馬錯): 진나라 천하통일의 최대공신 작자: 일명(佚名) 기원전316년, 상앙(商鞅) 변법이후 20여년이 지난 진나라는 동쪽으로 갈 것인가, 서쪽으로 갈 것인가의 전략적 방침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동쪽으로 간다는 것은 전략핵심지역으로 들어가 전략중심요지를 탈취한다는 것이고; 서쪽으로 간다는 것은 풍부한 자.. 2013. 6. 10.
누가 무술변법(戊戌變法) 실패의 원흉인가? 글: 장굉걸(張宏杰) 백년세월의 얇은 장막을 통해 무술변법의 전후를 살펴보면, 우리는 분명히 발견할 수 있다. 중국현대화전환이라는 이 중요한 발걸음은 실패로 끝날 운명은 아니었다는 것을. "변법"은 그 당시 '대세'였고, '여러 사람들이 바라는 바'였다. '변법'을 시작할 때, 형.. 2012. 1. 31.
왕안석(王安石): 가장 재미없는 인물 글: 왕일위(王一葦) 일반적인 추도사에서 하는 말로 하자면, 왕안석의 일생은 혁명의 일생이고, 전투의 일생이다. 그의 흥미는 아마도 정치적 포부를 펼치는데만 있었던 것같다. 그리하여 그의 시인으로서의 재능과 영감을 썩히게 된다. 그는 청렴했고, 집안에서도 청빈한 생활을 했다. 여색에도 흥미.. 2010. 10.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