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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주석병권8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 조광윤이 무장들에게 부패허가증을 준 것이다. 글: 정수위(丁守衛) 언뜻 보면, 조광윤의 "배주석병권"은 아주 시원스럽고, 가벼우며, 사람들에게 "담소간(談笑間), 장로회비연멸(檣櫓滅飛煙灰)"한 것같은 느낌이고, 전혀 심을 들이지 않았으며, 수단이 뛰어난 조광윤은 원래 아주 골치아픈 이 일을 쉽게 처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 2014. 5. 29.
관취도은자(灌醉掏銀子): 배주석병권의 후속 마무리 조치 글: 진사황(秦四晃) 대송 초창기, 송태조 조광윤은 한고조 유방과 같은 문제에 부닥친다. 바로 어떻게 공고위중(功高威重)의 장군들을 관리단속하여, 새로 얻은 황권에 위협이 되지 않게 하느냐이다. 당연히, 이때, 역사는 다시 천년이 흘렀다. 화하의 일들도 많이 변했다. 대송황제는 대.. 2014. 4. 4.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은 일종의 오해이다. 글: 황작비비(黃雀飛飛) 송태조의 "배주석병권"의 이야기는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다. 세상사람들은 모두 조광윤이 천하를 얻은 이후, 공신들이 그가 했던 바를 배워서 모반작란을 일으킬까봐 두려워하여, 술을 마실 때 무장들을 권하여 병권을 포기하도록 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강산을 .. 2013. 11. 10.
조광윤: 전설상의 미복사방(微服私訪) 글: 허석림(許石林) 송나라의 재상 조보는 사는 것이 아주 곤혹스러웠다. 다른 관리들은 퇴조한 후, 편안한 사복으로 갈아입고, 혹은 연회를 베풀거나, 혹은 금을 연주하거나 독서를 하거나, 가족들과 즐겁게 놀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가 그럴 수 없을 뿐아니라 만.. 2013. 4. 28.
조광윤(趙匡胤)의 어인술(馭人術) 글: 신력건(信力建)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군인들이 병권(兵權)을 잃은 것은 송태조 조광윤때부터라는 것을. 건륭2년(961년) 칠월, 송태조 조광윤은 금군 숙장(宿將)들을 연회에 초청한다. 그리고 온화한 방식으로 그들의 병권을 해제시켰다. 그가 도대체 어떻게 한 것인가? 아주 간단하다.. 2012. 8. 15.
송태조 조광윤은 급사한 것이 아니다. 글: 유병광(劉秉光) 송태조 조광윤(趙匡胤)의 죽음은 사학계를 괴롭혀온 천년의 미스테리이다. 역대이래로 "촉영부성(燭影斧聲)"이라는 설이 있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의 죽음을 후궁의 스캔들과 관련시키기도 한다. 보통사람들은 조광윤이 비명에 죽었다고 알고 있다. 즉, 하.. 2012. 1. 7.
황제와 공신의 "죄수딜레마" 글: 후양방(侯楊方) 송나라의 개국은 희극적(戱劇的)이다. 겨우 이틀만에 이루어졌다. 당시 후주(後周)의 금군점검(禁軍點檢, 군총사령관에 해당함)을 맡고 있던 조광윤(趙匡胤)은 대군을 이끌고 북상하여 변경을 침입해들어온 요군(遼軍)과 사우러 가고 있었다. 군대를 이끌고 수도인 개봉을 떠나 멀.. 2007. 3. 25.
조보(趙普) : 송태조 조광윤의 군사 조보(922-992) 자는 칙평(則平), 조적은 유주 계현, 나중에 부친을 따라 낙양으로 옮김. 조보와 관련하여 가장 유명한 말은 "반부논어치천하(半部論語治天下, 절반의 논어를 가지고 천하를 다스리다)"이다. 그는 말년에 논어 이십권을 손에서 떼지 않았다고 하여 생긴 말이다. 어릴 때부터 관.. 2006. 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