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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5

포스트 무측천시대의 여성정치참여현상 글: 정아여(鄭雅如) 705년 2월, 여황 무측천(武則天)이 병이 들어 상양궁(上陽宮)에 드러누웠다. 재신(宰臣) 장간지(張柬之)등은 그 기회를 틈타 여황의 총애를 받아 권세를 쥐고 있던 장역지(張易之) 형제를 주살하고, 여황을 퇴위하도록 핍박하여 태상황(太上皇)으로 밀어내고, 황태자를 .. 2019. 11. 15.
여후(呂后)는 광견병으로 죽었는가? 글: 장계합(張繼合) 고대 중국에 3명의 국가통치권을 장악했던 여인이 있었다. 그녀들은 각각 여치(呂稚, 즉 여후), 무조(武曌, 즉 무측천)과 자희태후(慈禧太后, 서태후)이다. 생각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여인들도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권력에 대한 욕마이 있고, 일단 정점에 도달하면 전.. 2018. 11. 7.
원고낭(元姑娘): 중국 최초의 여황제 글: 육기(陸棄) 중국역사상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넘어온 이래로, 부녀의 사회적 지위는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이었다. 천당에서 지하로 떨어진 셈이다. 특히 "부위처강(夫爲妻綱)"의 대에 부녀는 어떤 사회적 지위도 없었다. "시집가기 전에는 부친을 따르고, 시집간 후에.. 2017. 12. 5.
역사상의 무측천: 공어심계(工於心計), 심한수랄(心狠手辣) 글: 고회민(高會民) 무씨(武氏), 통상적으로 무측천(武則天) 혹은 무후(武后)라고 칭하며, 당중종, 당예종때 황태후로 임조칭제(臨朝稱帝)하는 기간동안 이름을 "무조(武曌)"라 고친다. 그녀는 중국역사상 유일하게 군권(君權)을 장악하여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여황제이다. 무측천은 병주(.. 2015. 1. 14.
무측천의 진짜 이름은 무엇일까? 글: 예방육(倪方六) 무측천(武則天)의 이름이 무엇일까? 이렇게 물으면 아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은 기괴하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무측천의 이름이야 무측천이지 뭐겠느냐는 식으로. 역사애호가들은 아마도 무측천의 이름은 무측천이 아니라 무조(武曌)라고 얘기할지 모른다. 그리고, 조금 더 파고 들.. 2010. 1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