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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족23

역사연구원의 "폐관쇄국유리론"을 비판한다. 글: 욱풍(郁風) 최근 이라는 제목의 글이 인터넷에 널리 퍼지고 있다. 문장의 결론은 전통적인 "폐관쇄국으로 중국이 근대에 낙후되었다"는 관점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특정시기 유럽중심주의영향하의 문화적 산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이 정책은 반침략, 반식민, 반해외적대세력간섭, 반문화침투의 적극적인 작용이 있었다는 것이다. 문장의 원문은 이러하다: "우리는 명청시대의 중앙정부가 취한 것은 '자주한관'의 대외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각도에서 보자면, 개방할 것인지 말 것인지, 어떻게 개방할 것인지, 개방범위는 얼마나 넓힐 것인지는 국가주권범위에 속한다. 국내외의 일부학자들이 간단하게 그것을 '낙후'하다고 배척하고, '야만'스럽다고 질책하며 심지어 소위 '국제법'에 위반된다고 주.. 2022. 9. 8.
노사(老舍): "인민예술가"인 그는 왜 '문혁'때 비투를 받고 자살해야 했을까? 글: 정문(鄭文) 노사는 1949년이후 중국에서 최초로 '인민예술가'의 영예칭호를 받은 사람이고, 공인된 신시대의 '창작표병(創作標兵)'이었다. 그러나 그는 왜 돌연 자살해야 했을까? 그는 모택동 및 중국공산당과 무슨 관계였을까?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노사의 본명은 서경춘(舒慶春)이고, 부친은 만주족으로 호군(護軍)을 지냈으며, 팔국연합군이 북경으로 진입할 때 순국했다. 그리하여 일가족은 모친이 바느질과 빨래를 하면서 생활을 유지해야 했다. 노사는 북경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소학교 교장, 교육국 관리를 지낸다. 그후 영국 런던대학에서 중국어를 가르치고, , , 등의 소설을 발표하면서 점차 명성을 얻게 된다. 1936년에는 그의 대표작 를 발표한다. 항전시기에 노사는 중화전국문예계항적협회 상무이사 겸 총무.. 2021. 1. 15.
홍희관(洪熙官): 홍권(洪拳)의 창시자로 93세때 한 소녀의 손에 죽임을 당하다. 글: 역사변연(歷史邊緣) 청나라때의 무협인물을 얘기하자면, 모두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아마도 황비홍(黃飛鴻), 홍희관과 방세옥(方世玉)일 것이다. 이전의 홍콩영화에서도 이 세 사람의 이야기를 찍은 것들이 많다. 이 3사람은 역사상 진실로 존재했었다. 여기에서는 홍희관에 대하여 .. 2019. 2. 11.
여진족(女眞族)은 만주족(滿洲族)의 전신인가? 글: 관첩(關捷) 역사상의 여진족은 바로 만주족의 핵심구성부분인 전신이다. 하나의 민족계보로서, 만주족의 전신은 이러하다: 숙신(肅愼, 서주에서 동주전반기) - 읍루(挹婁, 전국시대에 이 명칭이 나타난다) - 물길(勿吉), 말갈(靺鞨)(남북조, 수, 당시기) - 여진(女眞, 오대, 명). 청태종 홍.. 2019. 1. 15.
당나라는 왜 백만대군을 가지고 돌궐을 어쩌지 못했을까? 글: 천지사화(天地史話) 당나라는 강역이 넓었다. 5,6천킬로미터에 걸친 돌궐칸국을 정복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장성남북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한다. 50여년후 후돌궐칸국이 건립되면서, 당나라는 다시 장성이남으로 축소된다. 당나라는 백만의 병사를 가지고 있고, 정치, 경제, 군사 .. 2018. 7. 13.
훈령(勛齡): 중국의 나폴레옹 글: 살소(薩蘇)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이홍장(李鴻章)이 비스마르크를 만났을 때, 자신이 동방의 비스마르크라고 칭해진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비스마르크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그러나 서방의 이횽장이라고 불리지는 않습니다." 이 에피소드가 만일 사실이라면, 비.. 2016. 4. 11.
청나라는 왜 300년이나 중국을 통치할 수 있었는가? 글: 사소우(史小雨) 소수의 청나라 만주족들이 어떻게 인구가 수백배에 이르는 한족주민들을 통치할 수 있었을까? 살펴보면 아래의 몇 가지 수단으로 종합될 수 있다: 첫째, 물자통제 통치받은 대다수의 보통백성을 대하면서 만주족 통치귀족들은 한 가지 오래된 경험이 있었다: "예를 들.. 2016. 1. 10.
섭정왕 도르곤의 급사에 관한 수수께끼 글: 문방장궤(文房掌樻) 도르곤은 섭정을 한지 7년만에 돌연 급사한다. 그의 사인에 관하여 공식사서에서는 모호하게 얘기한다. 만주족은 처음에 말타고 활쏘는 민족이었다. 귀족은 매를 풀어서 사냥하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한편으로 유락이며 다른 한편으로 무술연습이었다. 교육도 .. 2015. 2. 10.
"이자성"은 어떤 사람인가? 글: 양청균(楊淸筠) 명나라말기에는 '지구최후의 날'과 같은 재난이 닥쳤고, 젊은 나이의 숭정제는 관외에서 만주족과의 싸움으로 마음이 조급해 있을 때, 다시 기황으로 갈 곳이 없어 반란을 일으킨 농민군을 맞이해야 했다. 이 이러한 농민군의 난이 가장 심했던 지역은 섬서이다. 섬서.. 2015. 1. 13.
송(宋), 명(明) 두 왕조는 왜 같은 부락에게 멸망했는가? 글: 정만군(程萬軍) 중국역사를 살펴보면 언제든지, 항상 천적은 중원왕조와 병존하고 있었다. 이 천적은 때론 국경선을 맞닿고 있는 부락이거나, 이웃의 오랑캐국가이다. 특히 양송이래, 천적은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뱀이 코끼리를 삼키는(蛇呑象)"의 '화이지변(華夷之變)'이 연이어 일.. 2013. 1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