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역사변연(歷史邊緣)
청나라때의 무협인물을 얘기하자면, 모두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아마도 황비홍(黃飛鴻), 홍희관과 방세옥(方世玉)일 것이다. 이전의 홍콩영화에서도 이 세 사람의 이야기를 찍은 것들이 많다. 이 3사람은 역사상 진실로 존재했었다. 여기에서는 홍희관에 대하여 얘기해 보기로 하자.
홍희관의 조적은 광동성 화현이고, 구체적인 생졸년은 미상이다. 개략 청나라 순치중기에 태어났을 것이다. 그의 가정배경에 대하여는 역사상 기록이 없다. 다만 어려서부터 무술연마를 좋아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소림문하에 들어갔겠는가?
홍희관의 무예에 관하여 얘기하자면, 반드시 그의 스승인 채구의(蔡九儀)를 얘기해야 한다.채구의는 조경(肇慶) 사람이고, 일찌기 홍승주(洪承疇)의 부하였다. 요동에 주둔할 때 군령승선위(軍令承宣尉)를 지낸다. 명나라 숭정15년(1642), 홍승주가 대청에 투항한다. 채구의는 분노하여 군복을 벗고 하남 숭산의 소림사에 들어간다. 꼬박 8년간의 고된 수련을 거쳐, 채구의의 소림무공은 적지 않게 정진한다. 그후에 그는 <소림권술비사>라는 책을 가지고 고향인 조경으로 간다. 순치7년(1650년)부터 암중으로 제자를 받아서 소림무공을 전수한다. 동산재기하여 항청(抗淸)활동을 하고자 한다. 이 기간동안 소년 홍희관과 방세옥등이 그를 스승으로 모신다.
홍희관은 총명하고 공부를 좋아하며, 오성이 뛰어났고, 여기에 채구의가 정성껏 지도한다. 내공심법과 소림정수를 짧은 수년만에 홍수관이 다 배운다. 당시 만주족과 한족의 갈등이 심화되어 한인의 청왕조에 항거하는 정서가 극단적으로 올라간다. 만주족에 잘 대항하도록 무공수준을 높이기 위해, 채구의는 강희7년(1668)다시 어린 홍희관등 제자를 데리고 천주의 남소림사방장을 스승으로 모신다. 오성이 아주 뛰어났던 홍희관은 이 기간동안 남북소림의 무술을 모두 익힌다. 그리하여 강유상제(剛柔相濟), 혼연천성(渾然天成)의 소림절학을 이루게 된다.
홍희관은 남소림에서 수련하는 기간동안 첫째부인 유영춘(柳迎春)과 결혼한다. 그리고 아들 홍문정(洪文定)을 낳는다. 유영춘은 무림세가 출신으로, 자신이 절학을 가지고 있을 뿐아니라, 그녀의 모친은 강호인들로부터 '천수관음(千手觀音)'이라고 불리울 정도였다. 결혼하고 자식까지 낳은 홍희관은 매일 무술을 연마하며 반청활동을 하느라 도처를 다녔다. 처와 자식과 함께 있을 시간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홍문정은 어린 시절에 아예 부친을 만나보지 못했다.
강희11년(1672), 조정은 밀보를 받고, 출병하여 남소림사를 포위한다. 사내에 승려가 많지 않아서, 홍희관등은 청병과 힘껏 싸웠지만, 남소림사가 도탄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이 겁난을 당한 후, 홍희관과 방세옥은 청병의 추적을 피해서 숨어서 광동으로 돌아간다.
강희12년(1673), 홍희관은 광주 대불사에 숨어서 무공을 수련하고, 거의 외출하지 않는다. 같은 해 말, '삼번의 난'이 발발한다. 홍희관은 천하대란의 기회를 이용하여 널리 능인지사(能人志士)를 끌어모아, 지하무장세력을 만든다. 그리고 명나라를 재건하고, 만청을 몰아내겠다고 맹세한다.(당시 채구의는 이미 사망했다) 다만, 좋은 시절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불러모은 사람들이 어룡혼잡하여, 자주 싸움이 일어난다. 그리하여 금방 만청정부의 주목을 받게 되고, 그들에 대하여 다시 한번 토벌을 시작한다. 홍희관과 방세옥은 다시 한번 청병이 추적을 피해 도망친다. 이번에는 조경으로 간다.
조경에서, 홍희관과 방세옥은 같이 상의하여 반청기지를 은밀한 정호산(鼎湖山)에 만든다. 그들은 겉으로는 화선(花船) 사업을 하는 것으로 하면서 암중으로는 제자를 모아서 소림무공을 전수하고, 널리 인재를 모아서 대사를 도모한다. 바로 이 기간동안, 홍희관의 아들 홍문정이 천리 먼길을 걸어 부친을 찾아온다. 그리고 부친의 전수하에 정종의 소림무공을 수련한다. 홍문정도 자질이 뛰어나고, 무예가 발군이어서 사람들은 그를 남소림 오조(五祖)중 하나로 받든다.
홍희관의 본처가 사망한 후, 말년에 방세옥의 조카인 방영춘(方詠春)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은 나이차이가 20여살에 이르렀지만, 둘은 결혼한다. 이때 홍희관과 방세옥은 생사를 함께하는 사형제일 뿐이나라, 인척이 된다.
반도의 배신으로, 반청기지 경운사(慶雲寺)가 청나라병사들에게 포위당하고, 이번에는 조정에서 홍희관등을 일망타진하여 모조리 죽여버리려고 결심을 굳힌다. 홍희관은 자신의 뛰어난 무예와 지혜로, 죽을 힘을 다해 포위망을 뚫는다. 그 이후로 그는 평생 성과 이름을 숨기고 사방을 돌아다닌다. 홍희관이 강호를 돌아다니면서 여러 무공의 정수를 흡수하여, 소림무공과 합쳐서 홍권을 만들어 낸다. 지금까지 수백년이 지났지만, 홍권은 여전히 무술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홍희관은 아주 장수해서, 93세까지 살았다. 93세때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는 틈을 타서, 한 소녀가 봉안권(鳳眼拳)으로 몰래 공격하여 죽음을 당한다. 이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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