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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오21

이릉지전(夷陵之戰)의 피해는 어느 정도였을까?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이릉지전은 동한말기 3대전투중 하나이고, 또한 최후의 대형전투이다. 이 전투이전에 촉한과 동오의 합작관계는 육손이 관우를 기습함으로써 끝났다. 쌍방은 전우에서 적이 된 것이다. 조위는 그래서 잠시 숨돌릴 기회를 갖느다. 촉한은 이 전투에서 일패도지했고, 명장과 정예병사들의 손실이 참혹했다. 이릉지전을 시작하기 전에, 동오는 위에서 아래까지 촉한에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어쨌든 육손이 한 행위는 군자의 행동은 아니었다. 동맹국이 적국과 싸우는 틈을 타서, 힘을 보태지 않는 것 정도라면 몰라도, 오히려 등뒤에서 칼질을 했다. 그리하여 관우, 관흥 부자는 피살되고, 유비, 유봉부자는 멀어졌으며, 맹달이 촉한에 투항하고, 더더욱 간접적으로 장비의 죽음을 가져온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2021. 2. 27.
유비는 익주(益州)를 취한 후 한중(漢中)을 형주(荊州)보다 중시했다. 글: 지역사(知歷史) 유비는 214년 익주를 취한다. 그후 215년 제1차 형주위기가 발생한다. 즉 손권이 유비에게 형주를 돌려달라고 한 것이다. 당시 조조는 한중의 장로(張魯)에 군사행동을 취한다. 유비는 익주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려하여, 동오의 요구를 받아들여 형주를 재분배하고, .. 2020. 4. 2.
삼국소인물 (10): 문빙(文聘), 가장 저평가된 삼국명장 글: 역사대폭작료(歷史大爆炸了) 형주는 명장과 명상들을 많이 배출했다. 제갈량부터 방통까지, 이들 형주의 명사들은 전체 삼국시대의 진전에 영향을 미친다. 이들을 제외하고도, 여러번 조위(曹魏)를 위기에서 구해준 형주명장이 있다. 그가 바로 문빙이다. 문빙은 형주 사람이다. 그가.. 2019. 1. 18.
관우는 왜 손권과의 혼사를 거절했을까? 글: 이치아(李治亞) 관우는 손권과의 혼사를 거절한 것과 관련하여 역대이래로 비난을 많이 받았다. 관우가 시무(時務)를 몰랐다는 것이다. 유비도 손권을 남다르게 대했고, 조조도 아들을 낳으려면 손중모(손권)같아야한다고 말했을 정도이다. 관운장은 필부의 용기로, 혼사를 거절했을 .. 2018. 12. 3.
위십방(韋什方): 자신의 나이가 400살이라고 무측천을 속여서 재상이 되다. 글: 모운서(慕雲舒) 무측천이 황제를 칭하던 무주(武周)시기에, 이런 재상이 있었다. 자칭 동오(東吳) 손권(孫權)연대에 태어나서 400여살을 살았다는 위십방이다. 694년, 무주의 도성인 신도(神都, 낙양)에 3명의 기인(奇人)이 온다. 첫째는 하내(河內)에서 온 늙은 비구니로 낙양 인지사(麟.. 2018. 3. 15.
육항(陸抗)과 양호(羊祜): 삼국말기 적이자 친구인 두 명의 위대한 모사(謀士) 글: 정정(丁丁) 삼국시대 말기 모사라 칭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게다가 위대한 모사라고 불릴만한 사람은 더더욱 적다. 위대한 모사라고 이름붙일만한 사람을 억지로 찾는다면 4명정도가 있을 것으로 본다: 첫째는 당연히 동오의 육항이다. 둘째는 당연히 서진의 양호(이때는 이.. 2016. 7. 17.
삼국시대에 왜 형주(荊州)가 서로 다투는 촛점이 되었는가? 글: 정정(丁丁) 삼국간의 전투를 살펴보면, 적벽대전에서 서진이 촉한과 동오를 멸망시키고 통일할 때까지, 삼국간의 전쟁은 거의 멈춘 적이 없다. 기산에서 형주까지 그리고 합비까지의 길다란 전선이 있지만, 삼국이 다투는 진정한 촛점은 기실 '형주'였다. 기의 절대다수의 전쟁은 형.. 2016. 7. 3.
감녕(甘寧): 동오 제일맹장 글: 일세소랑(逸世蕭郞) 동오 손권의 수하에는 장수가 적지 않다. 그러나 무력을 논하자면 모두 삼국초일류무장의 반열에 들기는 어려운 것같다. 손견, 손책은 용맹함으로 이름을 천하에 떨쳤다. 특히 손책은 삼국시대 강호에서의 지위가 보통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소패왕(小覇王)"이라.. 2016. 3. 16.
적벽대전에서 승리한 후 왜 손권은 조조에게 투항했는가? 글: 장공성조(長空星照) 적벽대전 이전에, 동오의 대부분 관리는 모두 손권에게 조조에 투항하라고 권했다. 왜냐하면 당시 쌍방의 역량이건 전쟁형세이건 모두 조조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다만, 손권은 노숙의 건의하에, 조조에 맞서싸우려는 결심을 한다. 그리고 주유의 주장하에 동오.. 2016. 1. 19.
손권이 유비에게 "차형주(借荊州)"해준 것은 부득이한 조치였다. 글: 양민복(楊民僕) 역사상 유비는 '차형주'하였고, 한번 빌린 후에 돌려주지 않은 철두철미한 '무뢰한'이라는 견해가 있다. 손권은 부인도 주고 병사도 잃었으며, 호의를 베풀었지만 보답은 받지 못하였다고 하여 사람의 동정을 받는다. 다만 문제는 손권과 같이 총명하기 그지없는 사람.. 2015. 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