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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현종84

양귀비(楊貴妃)의 죽음에 얽힌 몇 가지 의문점 756년, 안사의 난의 폭발했다. 일대의 절세미인 양귀비는 마외파(馬嵬坡)에서 생을 마쳤다. 2년후 양귀비의 묘를 팠는데, 양귀비의 사체를 발견하지 못했다. 설마 양귀비가 마외파에서 죽었다가 살아났단 말인가? 미스터리 1 “양귀비유체”에 대한 신당서와 구당서의 기재가 다르다. 신당서에서는 향주.. 2006. 12. 12.
강채평(江采萍) : 양귀비의 정적 양귀비를 아는 사람은 많지만 강채평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실, 양귀비와 강채평은 당현종의 삼궁육원칠십이비중에서 세력균형을 이루고 있던 정적이었다. 강채평은 매비(梅妃)라고 불리우며, 복건성 포전 강동촌에서 태어났다. 부친인 강중손(江仲遜)은 시서에 뛰어난 수재였고, .. 2006. 11. 3.
무측천의 뒤를 이어 황제자리를 꿈꾸던 여인들 무측천(武則天)은 당태종 이세민의 재인(才人, 후궁중 낮은 등급)이었고, 이세민의 아들인 당고종 이치(李治)의 황후였으며, 중국을 수십년통치한 "측천대황제(則天大皇帝)"였다. 그녀는 중국에서 유일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여황제였다. 무측천은 총명하고 영리하였으며, 속이 깊고 음험하고 독랄하였.. 2006. 6. 16.
양귀비(楊貴妃)를 황후(皇后)에 봉하지 않은 이유는? 양귀비는 이름은 옥환(玉環)이고 호는 태진(太眞)이며, 현재의 섬서성 화양 사람이다. 양옥환은 대대로 관리를 지낸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의식주의 걱정은 없이 자랐다. 그녀는 아무런 걱정없이 금(琴)을 다루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며 지냈다. 어렸을 때부터 예술적인 환경속에서 자랐.. 2006. 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