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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소의5

청나라말기 "미국유학아동"들은 얼마나 우수했을까? 글: 장금(張嶔) 증국번(曾國藩)이 관료사회에서 종횡하며 부침을 거듭했지만, "유미유동계획(留美幼童計劃)"은 그의 일생에서 최후의 큰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1872년 8월 11일, 즉 증국번이 사망하기 5개월전에, 이 '중화창시지거(中華創始之擧)'라 불리는 계획을 힘들게 싸워서 성사시켰다. 120명의 '유미유동'은 4차에 나누어 3만2천리를 건너 미국으로 유학간다. '서도자강(徐圖自强, 천천히 스스로 강해지기를 도모한다)'의 국가사명을 어깨에 지고 떠난 것이다. 증국번의 생전에 오른팔이며, '유미유동계획'의 집행자인 용굉(容閎)은 흥분하여 외쳤다: "나는 야응(夜鷹, 쏙독새)이 눈을 뜬 것같았다." 막 나라의 대문을 열었던 시대에, '서양유학'은 대다수의 중국인들에 있어서, 머리깨지면서 앞다투어 가려.. 2020. 5. 28.
원세개의 용인철학(用人哲學): 4종류의 인재를 중용한다. 글: 백가잡평(百家雜評) 근대사의 풍운인물로 원세개(袁世凱)는 논쟁의 대상이다. 사학자들의 그에 대한 평가는 지금까지도 정설이 없다. 그러나, 만일 용인의 각도에서 본다면, 원세개는 거의 일치하여 찬양받는다. 심지어 증국번(曾國藩), 이홍장(李鴻章)보다도 훨씬 높은 평가를 받는.. 2019. 1. 26.
북양총리 조병균(趙秉鈞)은 왜 원세개에게 암해(暗害)를 당했는가? 글: 장부걸(張溥杰) 조병균은 자가 지안(智安)이고 하남 임여(臨汝) 사람이다. 1859년에 태어나서 1914년에 사망한다. 그의 신세내력은 상당히 전설적이다. 상당히 "이 형님은 하나의 전설이다"라는 대단한 기운이 느껴진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는 "어려서는 유랑아로 성이 무엇인지도 .. 2014. 1. 14.
당소의(唐紹儀)의 부침 글: 설이(雪珥) "당승(唐僧)"은 채식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청나라의 관료라면 다 아는 것이다. 만일 이것을 모르는 자가 있다면 그는 정치적 기본지식이 너무나 모자란 것이다. "당승"의 이름은 "당소의(唐紹儀)"이다. 그는 청나라의 장관급 고위관료이고, 나중에 중화민국의 초대 총리를 맡는다. 당시 .. 2009. 11. 18.
원세개의 집권후의 5차에 걸친 내각변동 원세개가 신해혁명의 과실을 빼앗아 권력을 장악한 이후, 몇년간의 풍파속에 5차례에 걸친 내각이 탄생하였다. 1. 당소의(唐紹儀) 내각 당소의는 청나라 말기에 원세개의 신임을 깊이 받던 관료이다. 이 때 그는 원세개를 위하여 힘을 보태어 주었었다. "조화남북"을 내세웠고, 그는 혁명에 동조하여 동.. 2006. 1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