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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종6

당선종(唐宣宗) 이침(李忱): 당나라 멸망의 최대 책임자일까? 글: 화운초(和運超) 당선종 이침이 즉위한 후, 자리를 공고히 하기 위해, 사람들을 회유하여, 이덕유(李德裕)에게 악의적인 보복을 진행하며, 그가 했던 것은 모조리 반배하며 회창(會昌)연간의 인원을 축소정비하는 책략을 바꾸어 버린다. 대중원년(847년) 하반기, 이부(吏部)에서 "회창4년에 주현 관내에서 감원했던 383명을 다시 증원했다"고 보고한다. 문학가인 마식(馬植)은 과거에 이덕유에게 중용되지 못했는데, 당선종은 그를 형부시랑으로 삼고, 염철전운사를 맡긴다. 취원식(崔元式), 위종(韋琮)등 신진관리도 대부분 이덕유가 있을 때는 중시되지 않던 자들이다. 위모(魏謨, 위징의 오대손, 대중후기에 서천절도사가 된다)같은 인물이 중용된다. 그는 일찌기 양여사(楊汝士), 이종민(李宗閔), 우승유(牛僧孺)등과.. 2021. 9. 25.
당선종(唐宣宗) 이침(李忱): 황위계승전때 가장 잘 참은 황제 글: 합합아웅(哈哈阿熊) 역사에 관해 아주 재미있는 연구가 있다. 고대에 가장 위험한 직업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황제가 1위에 올랐다. 자세히 생각해보면, 이해가 된다. 중국역사 5쳔년간 매 왕조의 황제는 모두 힘들었다. 개국 혹은 멸망시기의 황제는 가장 힘.. 2018. 8. 5.
원화중흥(元和中興): 당제국의 유명무실한 중흥 글: 자주군(煮酒君) 안사의 나(安史之亂)은 중국에 큰 영향을 미친다. 중국 당왕조가 그 영향을 받았을 뿐아니라, 이후의 중국이 그 영향을 받는다. 안사의 난 이후 중국은 소수민족의 침입에 대하여 진공에서 방어로 국면을 바꾸게 된다. 안사의 난 이후, 중국은 더 이상 외적을 문밖에서 .. 2016. 4. 22.
당나라 7명의 황제가 황후를 두지 않은 이유는? 글: 노군후(老君猴) 취처납첩(娶妻納妾)은 황제의 궁정생활에서 정상적인 현상이다. 황후는 황제의 정처(正妻)로서 후궁의 여러 비빈들의 주인이고, 황제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그 영향력으로 보면 절반의 황제라고 말할 수 있다. 황제에게 몇 명의 부인. 비빈, 세부(世婦), 어녀(御.. 2014. 1. 29.
당선종(唐宣宗)의 세 가지 얼굴 글: 조염(趙炎) 백거이(白居易)가 죽은 후, 당선종 이침(李忱)은 추도시를 쓴다. 그중에는 "문장이만행인이(文章已滿行人耳), 일도사군일창연(一度思君一愴然)!"이라는 구절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감동할만하다. 임금으로서 이처럼 신하를 생각해주다니 이런 유정유의(有情有義)는 .. 2013. 5. 3.
일본왕자의 입당구법(入唐求法) 글: 사지동(謝志東) 당나라때 소악(蘇顎)이 편찬한 <<두양잡편>>에는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당선종(唐宣宗) 대중(大中)연간에 일본국의 왕자가 당나라를 방문했다. 왕자는 바둑을 잘 두었는데, 당나라의 국수(國手)와 바둑을 두고싶다고 요청했다. 당선종은 궁중의 기사(棋師)인 고사언(顧.. 2009. 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