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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고종59

문성공주(文成公主) : 가장 성공한 화친정책 문성공주상 중국역사상 적지 않은 공주 또는 종실여인이 번국(藩國)의 국왕과 화친한 사례가 있다. 당태종때 문성공주가 멀리 토번(吐藩)으로 시집간 것은 화친의 가장 전형적인 경우이다. 그녀의 영향하에, 한족과 장족(티벳족)의 우의는 큰 발전이 있었다. 그래서 문성공주를 가장 성공한 외교관으.. 2007. 7. 19.
당태종의 아들들 당태종은 아주 능력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자기의 자식들은 어쩔 수가 없었다. 당태종 이세민에게는 14명의 아들이 있다. 관례에 따르면, 장남은 태자로 삼고, 나머지 아들들은 왕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이세민 자신이 적장자가 아니었고, 이로 인하여 아들들은 모두 황제의 지위를 탐하게 되었다... 2007. 6. 22.
당태종의 후계자 선정 배경 만년의 당태종에게 가장 골치아픈 문제는 태자문제였다. 정관17년 4월, 이승건(李承乾)이 태자위에서 폐위되었다. 이후 태자가 될 자격을 지닌 사람은 장손황후의 또 다른 두 아들이었다. 바로 위왕(魏王) 이태(李泰)와 진왕(晋王) 이치(李治)였다. 두 사람을 비교하자면, 이태의 조건이 훨씬 뛰어났다. .. 2007. 5. 23.
건릉(乾陵, 측천무후, 당고종의 합장묘)에 얽힌 이야기 (2) 건릉은 도굴된 적이 있는가? 1960년, 몇몇 농민이 폭약으로 돌을 깨다가, 부주의로 무척천의 묘도입구를 깬 적이 있다. 이 묘도입구는 참으로 국가의 절대기밀사항이었다. 도굴군들이 천여년간 찾을래야 찾을 수 없었던 것이었고, 황소(黃巢)가 40만대군을 시켜 수년을 팠지만 파내지 못했던 것이었다. .. 2006. 10. 20.
문가황제(文佳皇帝) : 중국 최초의 여황제? 중국역사상 유일한 여황제는 무측천(측천무후)라는데 역사학자들은 이의가 없는 듯하다. 그러나, 반란군지도자로서 스스로 황제를 칭했던 여인에 대한 기록이 있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바로 당고종때 농민반란을 이끌었던 진석진(陳碩眞)이라는 여자인데, 그녀는 스스로 문가황제로 .. 2006. 4.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