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회인 7

청나라때 외국인은 어떻게 중국국적을 취득하였을까?

글: 심서분(沈西汾) 청나라때, 많은 외국인들이 중국으로 와서 관직을 얻거나, 국적을 취득하는 일이 있었다. 청나라초기에 독일인 탕약망(湯若望, 아담 샬), 벨기에인 남회인(南懷仁, 페르디난트 페르비스트), 프랑스인 백진(白晋, 조아킴 부베), 포르투갈인 서일승(徐日昇, 토마스 페레이라), 이탈리아인 낭세녕(郞世寧, 주세페 카스틸리오네)등이 모두 청정부에서 관직을 얻었고, 청나라관복을 입었으며, 중국예의를 행했고, 심지어 중국의 생활방식에 따라 생활했다. 탕약망은 30살때 중국복장으로 바꾸어 입었으며, 중문이름을 취하고, 전후로 청정부로부터 태복시경(太僕寺卿), 태상시경(太常寺卿), 통정사(通政使)등의 관직을 받는다. 옹정제는 그를 '광록대부(光祿大夫)'에 추봉했고, 관직을 1품에 이르렀다. 청정부는 탕..

아오바이(鰲拜)(5): 강희제와의 갈등이 격화된 이유는...?

글: 기련해(紀連海) 무수한 전투와 궁중투쟁을 거쳐서 이미 50세가 된 아오바이는 마침내 대청왕조에서 첫째가는 권력을 쥔 신하가 된다. 다른 3명의 보정대신이 그의 말에 따랐을 뿐아니라, 나이어린 강희제도 그에게 조그만치도 불경하지 못했다. 다만 권력을 틀어쥔 아오바이는 나이어..

강건성세: 산업혁명과 르네상스를 만났을 때.....

글: 아억(阿憶) 강희제는 외국의 조공을 아주 좋아했다. 그것은 변방이 중앙에 대하여 공순(恭順)을 의미한다고 여겼다. 서방의 과학기술 공물도 그에게 특별히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다만 그는 과학기술을 완전해 배척하지는 않았다. 단지 그는 과학사상이 사회변혁에 가져다주..

<사고전서>에 서양서적을 실은 이유는?

글: 포강객(浦江客) &lt;사고전서(四庫全書)&gt;는 건륭37년(1772년)부터 시작하여 10년가량의 시간을 들여, 대량의 인력물력을 들여 편찬한 대형 총서(叢書)이다. &lt;사고전서&gt;는 많은 유학자, 한학자들이 집단적으로 완성한 건륭제가 친히 정한 국가적 사업이었다. 건륭가경연간의 고거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