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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태제13

중국역사상의 태상황(太上皇) (3) 글: 장명양(張明揚) 당나라때 태상황으로서는 되돌아보기도 싫은 '완전은퇴'시대를 겪은 후, 태상황들의 운명은 송나라때부터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게 된다. 송, 명, 청 3왕조에 걸쳐 모두 6명의 태상황이 배출돈다. 당나라때 유행한 '핍궁(逼宮)'과 비교하면, 이들 태상황들은 자원하여 태상황으로 물러난 경우가 많았으며, 현무문사변이나 마외지변같은 궁중투쟁장면은 연출되지 않았다. 나라가 망하게 된 송휘종(宋徽宗)과 정신이상이 온 송광종(宋光宗)을 제외하면, 이 시기의 태상황들의 은퇴생활은 아주 여유있었다. 황제의 눈치를 보지 않았을 뿐아니라, 연금생활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권력도 대부분 황제보다 컸다. 정치생활에서 왕왕 전형적인 "퇴이불휴(退而不休)"였다. 명영종(明英宗) 주기진(朱祁鎭)의 태상황생활은 그다.. 2023. 5. 1.
명선종의 황후 호선상(胡善祥)은 단지 아들이 없어서 폐위되었을까? 글: 사우춘(史遇春) 명선종(明宣宗) 주첨기(朱瞻基, 1398-1435), 명나라 제5대황제, 명인종(明仁宗)의 장남. 어렸을 때, 조부 주체(朱棣, 명성조)와 부친 주고치(朱高熾, 명인종)의 사랑과 인정을 바았다. 명성조 영락9년(1411), 14살때, 조부에 의해 황태손(皇太孫)으로 세워진다. 여러번 주체를 .. 2019. 1. 18.
탈문지변(奪門之變)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글: 청풍명월소요객(淸風明月逍遙客) 명대종(明代宗) 경태제(景泰帝) 주기옥(朱祁鈺)은 유일한 아들인 주견제(朱見濟)가 죽은 후, 하루빨리 아들은 낳기 위하여 여색을 계속하여 탐한다. 심지어 당시의 명기(名妓) 이석아(李惜兒)까지 궁중으로 불러들인다. 이 일은 명나라사람 황경방(黃.. 2018. 12. 5.
경태제(景泰帝) 주기옥(朱祁鈺)은 황태자를 교체하기 위해 어떻게 하였는가? 글: 두문자(杜文子) 황제가 되면 모두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삼고 싶어한다. 경태제 주기옥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사정이 그다지 쉽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대명에는 이미 황태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경위는 이러했다. 명영종 주기진(朱祁鎭)이 오이라트와 싸우다가 포로로 잡힌다. 손.. 2018. 9. 20.
토목보지변(土木堡之變)이후 주기옥(朱祁鈺)은 어떻게 황제로 추대되었는가? 글: 두문자(杜文子) 정통14년 칠월, 대명의 북방 변관에서 긴급한 사태보고가 올라왔다. 오이라트가 침입했다! 명영종(明英宗) 주기진(朱祁鎭)은 왕진(王振)의 꼬드김에 넘어가 바로 친정(親征)에 나서게 된다. 명영종은 이렇게 경솔한 결정을 한 것에 대하여 참혹한 댓가를 치르게 된다. .. 2018. 9. 11.
명영종(明英宗) 복수기: 복위후 누구를 죽였는가? 글: 두문자(杜文子) 경태8년 정월, 명영종은 '탈문지변(奪門之變)'을 통하여 복위에 성공한다. 비록 다시 권력의 꼭대기로 되돌아왔지만, 이때의 명영종은 내심이 취약하고 공허했다. 다시 무슨 변고가 일어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지지자들(탈문공신들)과 상상 속의 '.. 2018. 7. 24.
만귀비(萬貴妃)는 어떻게 성화제(成化帝)의 총애를 독점했을까? 글: 두문자(杜文子) 성화제 주견심(朱見深)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여인은 바로 만귀비이다. 그녀는 주견심이 일생동안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인이다. 만귀비가 죽은 후, 성화제는 심지어 이로 인하여 병석에 드러누워 반년후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를 보면, 만귀비는 주견심의 생명역.. 2018. 7. 4.
성화제(成化帝)는 이미 금의위(錦衣衛)와 동창(東廠)이 있는데, 왜 서창(西廠)을 만들었을까? 글: 두문자(杜文子) 성화 13년, 대명은 태감 왕직(汪直)을 우두머리로 하는 특무기구 서창을 만든다. 이전에 이미 금의위와 동창이라는 두 개의 특무기구가 있지 않았는가? 그리고 이 두 기구의 업무능력은 약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성화제는 다시 힘을 들여 서창을 설립하게 되었을까? 첫.. 2018. 6. 23.
명나라 황궁의 조선여인 글: 염경생(閻京生) 원나라는 조선반도에 "정동행성(征東行省)"을 설치했고, 고려국왕이 정동행성의 승상(丞相)을 맡았다. 근 백년동안 여러 몽골의 공주가 고려국왕에게 시집간다. 그리하여 인척관계가 성립되었다. 이와 동시에, 원나라황실과 귀족들은 자주 고려에 여자를 바치라고 요.. 2017. 10. 15.
[황자쟁위술] 차도살인술(借刀殺人術) – 이용외적패(利用外敵牌) 외적의 힘을 빌어 황제 혹은 그 후계자를 제거하는 것은 예로부터 자주 쓰이던 수법이다. 자신의 손에 피한방울 묻히지 않고 명성에 전혀 누가 되지 않으면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니, 황제 혹은 후계자들이 즐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유왕은 요녀 포사(褒姒)에 빠져 태자 의구(宜.. 2015. 8.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