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28 양송의 "세폐(歲幣)"는 송나라에 어느 정도의 부담이었는가? 글: 마도사(魔都師) 양송역사에는 후세에 욕을 얻어먹는 국책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세폐"를 바치고 평화를 얻은 것이다. 일찌기 요나라와 격전을 벌이다가 나중에 <전연지맹>을 체결한다. 나중에는 서하와 악전고투하다가 마지막에는 "세폐"를 주고 서하로부터 칭신을 받아낸다. .. 2018. 8. 2. 송(宋) 요(遼)간의 4대전투 글: 장효민(張曉珉) <요사(遼史)>의 기록에 따르면, 짧은 13일내에 송나라와 요나라간에는 4번의 전투가 벌어졌다. 이 4번의 전투결과에 대하여 <요사>에는 역사책이 영원히 기록하고 있지만, <송사>에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송,요의 제1차대전은 십일월 초하루에 발생한.. 2016. 8. 6. "황포가신(黃袍加身)"의 세 가지 의문점 글: 문재봉(文裁縫) 현덕7년(960년) 정월 초나흘, 역사상 그 이름도 유명한 "진교병변, 황포가신"의 이야기가 마침내 서막을 연다. 사마광의 <속수기문(涑水紀聞)>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바로 이날 새벽, 아직 꿈속에 있던 조광윤은 그도 무슨 일인지 모르는 사이에, 한 무리의 사람들.. 2015. 6. 16. 북송이 금에 멸망한 근본적인 이유는? 글: 문재봉(文裁縫) 냉병기시기에 만리장성은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분계선이었다. 만일 이 장성의 보호가 없었더라면, 유목민족이 침입해올 때, 중원왕조는 더욱 거대한 댓가를 치르거나 심지어 망국의 고통을 당해야 했을 것이다. 지도를 펼쳐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중원왕조가 생존.. 2015. 6. 2. 교봉(喬峰): 정치와 여인의 각도에서 해석하다. 글: 유려평(劉黎平) 교봉은 기실 허구의 인물이 아니다. 그 내포된 의미는 이미 중국인의 사고방식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그의 절대적인 신용(神勇)과 절대적인 고상(高尙)은 진실한 것이 아니다. 다만 중국인의 신용과 고상에 관한 추구는 진실한 것이다. 여인들의 절대적인 충실과 애정.. 2015. 2. 22. 적인걸(狄仁傑)의 남다른 말년 글: 이숙금(李淑琴) 적인걸(630-700), 당나라때 병주 태원(지금의 산서성 태원시) 사람이고, 자는 회영(懷英)이다. 당고종, 무측천의 두 황제시대를 거치면서 일생동안 관료생활을 하였고, 청렴하며, 사람을 잘 기용하고, 사건을 잘 처리했으며, 간악한 자들을 제거했다. 원래 혼란스러웠던 .. 2015. 2. 10.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