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석산(石山)
최근 한동안 사람들이 모두 코로나바이러스에 주목하지만, 베이징의 정치분위기는 조용한 가운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아마도 내년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즉, 2022년의 중공20대의 결과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래서 극히 이상하고 상당히 민감하다.
6월 2일, 중국국무원 정부웹사이트에 보도가 한편 실렸다. 리커창이 국무원 '방관복회의(放管服會議., '방'은 지방분권, 시장진입문턱완화등을 가리키고, '관'은 공정한 감독과 공평한 경쟁을 촉진하는 것을 가리키며, '복'은 효율적인 서비스를 가리킨다 )'에서의 강화(講話)이다. 제목은 "시장주체는 경제사회발전의 중요한 역량이고, 인민은 진정한 영웅이다"이다.
제목뿐만이 아니라, 글의 시작부분과 끝부분에서 모두 특별히 '인민이 진정한 영웅이다'라는 말을 강조하고 있다. 관찰자들은 심지어 정부웹사이트가 최초에 발표한 글에는 제목이 이 몇 글자가 빠졌는데, 두 시간후 이 몇 글자가 추가되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관례에 따르면, 이는 분명히 리커창이 직접 요구해서 추가된 것으로 봐야할 것이다.
신화사와 인민일보의 관련보도의 제목은 "리커창, 전국에서 '방관복'개혁을 심화하고 시장주체의 활력을 배양하고 자극하기 위한 전화회에서의 강화"였다.
전체 문장에 "인민이 진정한 영웅이다"라는 말은 없다.
6월 2일은 "6.4"직전의 민감한 날이다. 리커창이 "인민이 진정한 영웅이다"라는 것을 굳이 강조했다는 것은 상당히 민감한 일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특별히 찾아보았다. 중국대륙의 적지 않은 웹사이트들 지방정부 웹사이트, 관영매체의 웹사이트에서는 모두 이 "인민이 진정한 영웅이다"라는 보도를 전재했고, 신화사의 보도내용을 전재하지 않았다.
이것은 아주 흥미있는 현상이다. 중공내부의 권력투쟁에서 어느 지방이 누구를 따르고, 누구에게 줄을 서는지. 아마도 모두 이런 지방신문과 지방정부웹사이트를 통해서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상황은 왕후닝이 실종된지 3개월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왕후닝은 중공정치국상위로 이데올로기,선전과 당무를 관장한다. 즉 중공 각급 관영매체의 태상황이다. 초기에, 왕후닝은 항상 시진핑의 방문시 따라가거나, 사방을 시찰했다. 전해지는 바로는 시진핑이 많은 사상이론은 모두 왕후닝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했다.
최근에 먼저 소식이 전해진다. 왕후닝은 그가 18년간 재직하고 있던 중앙정책중심 주임직을 물러났다는 것이다. 왕후닝, 사람들이 삼대제사(三代帝師)라 부르는 그는 최고권력자를 위하여 정책을 기획하고 제정한다. 그러나 작년 10월에 이르러, 그는 그 직위에서 물러난다. 그런데도 그가 이데올로기와 선전을 주관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신화망에는 지도자난이 있다. 모든 지도자의 말을 거기에 모아 놓는다. 중앙정치국상위는 모두 7명이다. 최근에 강화를 한 시간을 살펴보면, 시진핑, 리커창은 말할 것도 없고, 기본적으로 매일 모두 공개장소에 나타나서 강화를 한다.
리잔슈가 마지막으로 강화를 한 것은 6월 7일이고, 왕양의 마지막 강화는 5월 29일이며, 자오러지가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6월 3일이고, 한정이 마지막으로 강화한 것은 6월 4일이다. 그러나, 왕후닝이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내 강화한 것은 3월 10일의 양회때이다. 그후의 보도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어디를 방문하거나, 회의를 하거나 강화를 하지 않았다.
이런 대비로 우리는 알 수 있다. 왕후닝에게 일이 터진 것이다. 무슨 일일까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신체건강이고 다른 하나는 시진핑과 사이가 틀어진 것이다.
내 생각에 후자의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시진핑의 최근 강화를 보면 상당히 부드러워졌고, 사람들에게 강경한 인상에서 벗어나려는 것같다. 이런 모습은 과거 몇년간 중국의 선전태도와 다르다. 이는 아마도 왕후닝의 지위변화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을 것이다.
왕후닝은 중공내부에서 소위 신권위주의의 창도자이다. 그는 중국이 발전하려면 반드시 절대권위를 지닌 인물이 영도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는 당내자유파의 소위 개명하고, 이성적이고 민주적인 입장과는 반대된다. 장쩌민, 후진타오시기에 그는 이런 방식을 주로 썼다. 그러나 시진핑시기에는 그와 죽이 맞았고, 심지어 '시진핑신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사상'까지 만들어 냈다. 이건 한마디로 말해서 그냥 '시진핑사상'이라는 말이다.
중공의 좌회전에 대한 모든 장애를 왕후닝이 모조리 제거했다.
왕후닝은 당내의 보편적인 반대에 부닥친다. 이는 충분히 예견가능했다. 당연히, 왕후닝에 반대하는 진정한 목표는 시진핑에 반대하는 것이다. 특히 그의 강경하고 야만적인 외교와 내정정책에 반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왕후닝에게 일이 터졌다는 것은 반드시 시진핑 본인이 당내에서 처한 각종 비판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금년 5월, 중국의 공안은 중공내부의 일부 모파(毛派) 극좌파인사들을 체포한다.
6월 3일, 대륙의 한 모좌(毛左) 웹사이트에 이런 글이 올라온다. 5월 12일부터 산둥성 지닝시 공안국이 대규모로 성내, 성외의 모좌인사를 체포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체포된 것은 산둥취푸사범대학의 교수 마허우즈(馬厚芝)이다.
그후 체포된 것은 산둥성 쥐현(莒縣)의 류칭펑(劉淸風), 허베이 셔현(涉縣)의 푸밍샹(付鳴翔), 샨시 시안의 후자홍(胡加洪), 허난 카이펑의 네쥐바오(聶聚寶), 허닌 린잉현의 우룽화(鄔榮華)이다.
웹사이트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이들은 모두 산둥성 지닝의 공안에 체포되었고, 가족들도 모르고 있다. 단지 그들은 최근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것만 안다. 현재는 단지 위의 6명에 대한 소식만 전해졌다. 아마도 소식이 전해지지 않은 모좌인사들의 체포는 더 많을 것이다. 많은 좌파인사들이 행동을 개시했다. 일부는 항의하고 구하려는 행동을 하고 있다.
이들 모파 극좌인사들은 모택동사상을 선전할 뿐인데,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인가? 지닝 공안의 회답은 다음과 같다: 모주석사상을 선전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 다만 체포된 자들은 '단체범죄'를 저질렀고, 사법재판을 받을 것이다. 그외에 공안에 따르면, 체포된 자들중 "일부는 사단조직을 만들려고 했다"고 한다.
이 "사단조직"은 바로 "중국모택동주의공산당"이다.
이것은 보시라이당(薄熙來黨)이다. 당연히 처음부터 끝까지, 보시라이는 이 당에 정식으로 참가하거나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배후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말하기 어렵다.
2009년 1월 성립을 선포하고, 10월 15일 이 당은 전중국20여개성의 34명 대표가 충칭시 완셩구(萬盛區) 헤이산진(黑山鎭) 헤이산곡풍경구(이곳은 저팔계의 고향이라는 말이 있다)에 모여서 정식으로 성립대회를 개최했고, 보시라이를 이 당의 총서기로 추대한다.
그날, 충칭의 공안(당시는 왕리쥔이 충칭 공안국장이었다)은 자동소총을 들고 회의장에 진입하고, 이 모택동주의공산당의 대표를 모조리 체포했다. 그중 25명은 '불법집회'라는 죄목으로 '행정구류10일'에 처해진다. 충칭에서 4,5일간 구류한 후 석방해서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10명의 평균연령은 50세인데, '테려활동조직죄'라는 죄명으로 형사구속된다. 2011년 9월, 충칭법원은 비공개재판을 통해 '국가정권전복죄'로 마허우즈, 웨이진샹(魏晉湘)에게 유기징역 10년형에 처하고, 등궈빈(鄧國賓), 뉴용(牛勇), 허위안파(何遠發)은 유기징역 5년형에 처한다.
2009년 10년형에 처해졌으면, 2019년에 형기만료로 석방된다. 확실히 마허우즈는 석방된 후에 즉시 행동을 개시했다. 작년은 코로나사태로 인해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금년 5월, 코로나사태가 완화되면서,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활동한다. 그러다가 다시 공안에 체포된 것이다.
2016년 10월 1일, 모택동주의공산당은 "전국인민에게 고하는 글"을 발표한다. 공개적으로 현재의 중국공산당통치에 반대한다. 이 전국인민에게 고하는 글에서 명확히 시진핑의 구호에 반대했다. 전국인민에게 고하는 글에는 이런 말이 있다: "그들은 철저히 '4항기본원칙'을 배반했다. '4개견정불이'로 이 항을 대체했다. 우리의 반란은 이치에 맞는다!"
'4개견정불이'는 시진핑이 내놓은 것이다. 이 당은 등소평도 반대한다. 모든 중공관료에 반대한다. 그러나, 당내에 적지 않은 지지자가 있다. 이건 아주 흥미있는 일이다.
최근 그들은 당의 "11대"를 소집개최하여, 중국의 미래 방향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모택동주의공산당은 진정한 중국공산당의 마지막 전국회의는 9대라고 생각한다. 이후의 회의는 모두 수정주의와 제국주의의 주구들이 권력을 찬탈한 이후의 가짜공산당회의라고 본다. 그들은 2009년 34명의 대표가 모여 10대를 개최했다. 비록 모조리 체포되었지만, 그래도 포함시켜준다. 이번에 개최하는 것은 11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개최하기도 전에 모조리 체포되어 버린 것이다.
만일 순수한 이데올로기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들 모택동주의공산당이야말로 '근정묘홍(根正苗紅)'한 계승자이다. 모택동사상은 그들의 주장에 따를 때, 주로 두 가지 내용이다: 하나는 무장으로 정권을 탈취한다. 농촌에서 도시를 포위한다. 둘째는 무산계급독재하에 계속혁명이다. 당내의 자본주의도로를 걷는 당권파를 타도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문화대혁명'을 하겠다는 것이다.
모택동은 말련에 중공권력의 후계자가 그의 노선을 변경할까봐 우려했다. 문혁이후, 많은 중공간부가 타도되고, 아무도 일을 하지 않았다. 등소평은 모택동에게 글을 써서 충성을 표시하고, 자아비판을 한다. 그후 개조를 받아들이겠으며, 절대로 문혁을 뒤집지 않겠다고 하면서, 다시 나서서 일하고 싶다고 한다. 모택동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마지막에 모택동은 후회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말했다. 등소평은 '영원히 뒤집지 않겠다고 했지만, 믿을 수 없다' 그리하여, 다시 등소평을 공격한다. 그가 가장 무서워한 것은 누군가 문혁을 뒤집고, 문혁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장쩌민시기의 후기, 중국대륙 내부에 모택동파가 다시 굴기한다. 이들 모택동주의공산당의 이들과 비슷한 생각을 지니고 있는데, 중국공산당내에도 상당한 수가 있다. 주로 대학교, 이론정책부서와 선전기구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전소련과 유사하다. 가장 굳건한 공산주의자는 모두 선전과 이론부문에 모여 있는 것이다.
모택동주의공산당과 중국내부의 저명한 좌파웹사이트 "오유지향(烏有之鄕)"은 많은 교집(交集)이 있다. 오유지향은 원래 많은 체제내의 관리들이 참여했으며, 직접참여한 사람의 다수는 하급관리였다. 고위관리들은 뒤에 숨어 있었다. 필자는 일찌기 오유지향에 글을 올리는 사람을 취재한 바 있다. 그는 2009년 충칭으로 와서 모택동주의공산당의 성립에 참가해달라고 초청받는다. 그는 우한까지 갔으나, 재삼 고민한 끝에 결국 가지 않았다.
공산당이라는 체제에서 최대의 적은 왕왕 내부에서 나온다. 중공이 권력을 잡은 후, 반혁명집단을 체포하고 형을 내린다. 대부분은 모두 마르크스 레닌을 공부하는 사람들이고, 공산주의조직을 만들려는 사람들이다. 무슨 사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무슨 이데올로기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만일 권력을 잡은 사람과 일치하지 않으면 바로 반혁명이 된다. 예를 들어, 양샤오카이(楊小凱)는 저명한 경제학자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을 뻔한 인물인데, 몇년전에 사망했다. 그는 문혁때 10년간 갇혀지낸다. 이유는 그가 '공산주의연구소조'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의 옛 최고부자 머우치중(牟其中)이 조직한 것인데, 나중에 모두 체포되어 형을 받았다.
왕후닝이 실세하고, 모택동주의공산당의 활동이 진압되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같다. 다만 이는 현재 중공내부의 권력투쟁이 심화되고 있고, 사회내부의 불만이 격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 중공의 외부환경은 아주 좋지 않다. 서방국가는 연합하였다. 미국, 유럽, 일본, 호주, 여기에 캐나다와 인도가 가담하여 전선을 형성했다. 대외무역도 곤경에 빠졌고, 코로나로 책임추궁을 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내부경제는 더욱 심각하다. 사회의 불만정서는 당내고위층, 중간층만이 아니라, 하층관료 및 보통백성들까지도 불만이 크다. 이런 압력은 내년 중공20대에 큰 영향을 끼친다. 금년 하반기에서 내년 상반기는 관건적인 시기이다. 돌발사건이 일어나면 아마도 각종 연쇄반응이 일어날 수도 있고, 중공정권의 붕괴를 가져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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