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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왕후닝)

왕후닝이 교체될 것이라는 6가지 신호

by 중은우시 2021. 6. 14.

글: 왕우군(王友群)

 

현임 중공 정치국상위, 이데올로기 총책임자 왕후닝은 최근 몇년간 중공의 급격한 좌경화, 문혁회귀의 핵심인물이다. 여러가지 흔적을 보면, 왕후닝의 여러 조치는 인심을 얻지 못했고, 중공20대의 인사배치때 그의 지위는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것이다.

 

왕후닝은 1995년 장쩌민, 쩡칭홍에 의해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베이징 중남해로 발탁되어 일하기 시작했다. 당시 장쩌민이 중공당수이고, 쩡칭홍은 중앙판공청 주임이다.

 

1995년부터 2021년까지 26년동안, 왕후닝은 3대의 중공당수(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을 모셨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 후진타오는 중공당수를 10년간 맡았는데, 그는 단지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고, 중대한 문제는 여전히 장쩌민, 쩡칭홍이 결정했다. 그러므로, 1995년부터 2012년까지 17년간, 왕후닝은 실제로 장쩌민, 쩡칭홍을 위해 일했다. 그는 장쩌민, 쩡칭홍의 가장 중요한 '붓자루'였던 것이다.

 

2012년 11월 중공18대때, 시진핑은 중공당수에 오른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시진핑은 주로 장쩌민, 쩡칭홍의 손에서 최고권력을 빼앗아 오는데 힘썼다. 그동안 왕후닝은 저자세로 시진핑을 도와 '시진핑사상'을 포장하여, 시진핑의 신임을 얻어내고, 마침내 2017년 10월 중공19대때 중공 정치국상위에 오른다.

 

왕후닝은 중공의 이데올로기를 3년여 관장해 왔다. 그러면서 계속 시진핑에게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미혼탕을 먹이며, 시진핑을 하늘끝까지 치켜세웠다가 땅바닥으로 내팽개치기를 반독했다. 2018년 미중무역전, 2019년 홍콩반송중운동진압, 2020년 우한폐렴은폐로 인한 글로벌팬데믹과정에서 게속 시진핑을 진흙탕으로 몰아넣었다. 그 결과 시진핑은 좋은 카드에서 신속히 엉망인 카드로 바뀌어 버리고 만다.

 

내년 중공은 20대를 개최한다. 중공중앙총서기, 중앙군위주석, 중공정치국상위, 중공정치국위원등이 모두 새로 선임될 예정이다.

 

시진핑이 권력을 장악한 8년여동안 반부패의 명목으로 장쩌민, 쩡칭홍이 발탁하고 중용한 여러 당정군의 고위관료들, 일찌기 장쩌민, 쩡칭홍을 도와서 '총부리(군사대권)', '칼자루('정법대권)', '돈주머니(재경대권)'을 장악했던 많은 고관들을 체포했다.  이들은 시진핑을 뼛속까지 미워하고, 온갖 방법을 써서 시진핑을 끌어내리고자 했다. 현재, 그들은 국내외에서 세력을 규합하여, 절벽끝까지 몰린 시진핑을 밀어버리려 하고 있다.

 

시진핑은 위기가 눈앞에 닥친 것을 인식했다. 현재 3연임을 추구하고, 자신의 심복을 20대 인사배치에서 중요한 자리에 앉히고자 하고 있다. 국내외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최소 6가지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왕후닝의 이데올로기관장책임자의 지위는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첫째, 시진핑의 최대정적인 장쩌민이 'zoro화' 될 것이다.

 

6월 7일, 중공중앙 기관지 <인민일보>는 '선언'이라는 필명으로 <사회주의는 중국을 배신하지 않았다>는 글을 발표하고, 당매체들이 속속 전재했다. 이 글에서 시진핑의 이름은 6번 나오고, 모택동이 3번 나오며, 등소평이 1번 나온다. 그러나 장쩌민은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6월 8일 <인민일보>는 역시 '선언'이라는 필명으로 <중국은 사회주의를 배신하지 않았다>는 글을 발표하는데, 시진핑의 이름은 6번, 모택동이 1번, 등소평이 1번 나온다. 역시 장쩌민은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5월 1일, 중공중앙기관지 <구시>는 중공전국정협 부주석 장칭리(張慶黎)의 글인 <당의 단결과 집중통일을 유지보호하고, 당의 흥망성쇠에 관한 중요한 일이다>라는 글도 당매체들이 대량으로 전재했는데, 거기에 중공지도자를 언급할 때, 단지 모택동, 시진핑만 언급된다. 장쩌민의 이름은 나타나지 않았다.

 

중공은 일찌감치 건당100주년을 기념하여 당내 최고영예인 <71훈장>을 계획했다. 5월 31일 신화사는 <71훈장>의 추천건의자 명단을 발표하는데 모두 29명이었고, 장쩌민은 없었다.

 

왕후닝의 진정한 주군인 장쩌민이 '제로화'되었다는 것은 왕후닝의 처지가 좋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둘째, 시진핑은 왕후닝이 조종한 대외선(大外宣)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

 

5월 31일, 중공정치국 집단학습때, 시진핑은 중공의 대외선(中國對外宣傳大布局의 약칭)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기조를 잘 장악해야 한다. 자신감을 보이면서도 겸손, 겸허해야 하며, 신뢰할만하고, 사랑할만하고, 존경할만한 중국이미지를 만드는데 노력해야 한다" 

 

이는 확실히 시진핑이 왕후닝주관하의 중공대외선이 '방망이'가 난무하고, '모자'를 마구잡이로 씌우고, 욕설과 지저분한 말을 마구 내뿜는데 대한 불만을 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중공중앙은 일찌기 미국국무장관 폼페이오를 '깡패도박꾼' '인류의 공적'이라고 욕했다. 중공정치국위원, 중앙외판주임 양제츠는 미국에 대하여 '위에서 내려다보며 중국에 대하여 말할 자격이 없다', '세계에서 절대다수의 국가는 미국이 창도하는 보편가치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중국인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등으로 통박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 자오리젠은 '아마도 미군이 바이러스를 우한으로 가져온 것같다'고 말하면서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이 Five Eyes에 그들의 '눈이 찔려서 멀게 될지도 모르니 조심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미국과 일본이 '낭패위간(狼狽爲奸)'한다고 욕하고, 일본이 '배신하고' '이리를 집으로 불러들였다', '기꺼이 미국전략의 앞잡이가 되기를 원했다'고 욕한다.

 

중국 주프랑스대사는 프랑스학자 Antoine Bondaz를 '작은무뢰배' '작은깡패' '미친개' '악플러'등으로 욕했다. 중국 주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 총영사 리양(李楊)은 캐나다통리 트뤼도를 '미국의 주구' '집안을 망친 자'라고 욕했다.

 

5월 1일, 중공정법위의 공식웹사이트 '중국장안망'에는 합성사진이 올라왔느넫, 중국의 로켓점화와 인도의 시신화장을 대비하고, 여기에 '중국의 점화와 인도의 점화'라는 글을 추가해서, 인도의 바이러스상황이 악화되고, 사망자가 많다는 것을 조롱했다.

 

이런 화약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전랑' 언어와 아무런 인간성도 보이지 않는 글과 도면을 보면 중공은 전세계에서 이미지가 땅바닥에 떨어졌고, 엄청난 반감과 혐오를 불러와 정반대의 효과를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류허의 문혁을 부정하는 옛글이 다시 발표되었다.

 

5월 5일, 대륙의 넷이즈에는 현임 국무원 부총리 류허가 2008년에 발표한 옛글을 실었다. 다만 제목은 <문혁재난에 대한 반성이 없으면 오늘날 중국경제의 성장은 불가능하다>로 고친다.

 

이 글은 첫문장이 이러하다: "개혁초기 등소평은 분화대혁명의 잘못을 결연히 부정했고, 계급투쟁을 근간으로 하는 정치노선을 끝냈으며, 국가의 업무중점을 경제건설을 중심으로 옮겼다. 그때, 세계의 대부분 사람은 이런 역사적 결정의 비범한 의의를 의식하지 못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어떤 사람은 문화대혁명이 가져온 평균주의빈곤과 그때 누렸던 정신특권을 그리워한다. 다만 중국은 이미 되돌아설 수 없는 발걸음을 내딛였다."

 

류허는 이렇게 보았다: 문화대혁명의 교훈을 반성하는 기초 위에서 형성된 발전에 대한 컨센서스가 과거 30년간 중국에서 경제기적을 창조한 가장 큰 원인이다. 문화대혁명재난에 대한 반성이 없으면, 오늘날 중국의 경제성장은 불가능하다. 바로 문화대혁명이라는 반면교사작용으로 중국인은 '계급투쟁을 근간으로 하는' 이론의 잘못과 황당함을 인식했고, 쇄국의 엄중한 결과와 비극적인 결말을 인식했고, 또한 한 사람으로서 겪은 무서운 위기와 악몽을 인식했다. 그래서 중국인은 비로소 빈곤을 탈출하고, 동란을 끝내고, 개혁개방을 추진하려는 강렬한 바램을 갖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또한 대외개방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시장화의 개혁방향을 견지하는 것의 중대한 의미를 강조했다.

 

류허의 이 글은 일찌기 2008년에 출판된 <중국경제50인이 본 30년>에 실렸다. 원 제목은 <중국경제삽십년과 미래장기문제>였다.

 

류허는 '중공체제내의 개혁파'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다. 시진핑은 내방한 미국 국가안전고문 토마스 도미니온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이 류허이다. 그는 나에게 아주 중요하다. 미중협상과정에서 류허는 중국측수석대표로 참가한다. 어떤 때는 직접 '시진핑특사'라는 직함을 달기도 했다.

 

류허는 시진핑의 가장 중요한 경제분야 고문이다. 시진핑의 대외방문이건 국내시찰이건, 류허가 항상 그 곁을 따른다. 최근의 사례를 보면, 6월 7일에서 10일까지, 시진핑이 칭하리를 고찰할 때, 류허가 곁에 따라갔다.

 

위의 류허의 옛글의 기본관점은 왕후닝이 주도하는 문혁으로 회귀하려는 극좌적인 주장과 완전히 다르다. 넷이즈가 이 글을 발표하면서 눈에 띄는 제목을 단 것은 아마도 왕후닝의 주장과 맞서려는 뜻일 것이다. 넷이즈가 이 글을 발표한 배후에는 분명 중공고관의 지지가 있을 것이다.

 

넷째, 자오쯔양과 미국경제학자의 대화가 크게 발표된다.

 

5월 27일 넷이즈에는 <보기 드문 고위층대화기록, 정보량이 거대하다(고수대결, 쓸데없는 말은 없음)>이라는 글을 싣는다. 전문은 1989년 홍콩에서 출판된 <중국에서의 프리드먼>이라는 책에 나오는 대화기록이다. 여기에 자오쯔양의 컬러사진도 덧붙여 놓았다.

 

전 중공중앙총서기 자오쯔양은 중공체제내의 개혁파중 대표적 인물중 하나이다. 등소평의 1989년 "6.4도살'에 반대했기 때문에 하야한다. 프리드먼은 자유시장경제를 주장하는 것으로 세계에 유명하다. 일찌기 1976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 두 사람의 대화는 당시 중국에서 가장 민감한 가격개혁문제를 담고 있다.

 

대화를 시작하면서 자오쯔양은 이렇게 말한다: "오늘은 얻기 힘든 기회이니, 주로 당신의 의견을 듣겠다. 당신은 우리의 개혁에 관심이 많다. 경제학 방면에서 당시는 유명한 교수이고, 나는 어린 학생이다. 당신이 멀리서 왔으니 당신이 말을 많이 해야 한다. 나는 많이 듣겠다."

 

프리드먼이 말한다: "중앙의 권력을 하방(下放)하는 것이 관건이다. 하방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통화팽창을 억제하는 것은 단지 하나의 방법이다. 즉 화폐공급량을 통제하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화폐를 적게 발행해야 한다. 그는 중국의 통화팽창문제는 투자나 소비의 문제가 아니라, 화폐를 너무 많이 찍어내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프리드만은 가격개방하고, 가격개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더라도 통화팽창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만일 공식가격이 낮은데 살 수없는 물건이라면 실제로는 저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또한 이렇게 말했다. 개혁의 가장 핵심문제는 바로 중도에 교착상태에 머무는 것이다. 나가지도 않고 물러나지도 않는 것.

 

대화가 끝날 때, 자오쯔양은 말한다: "나는 다시 한번 당신에 말한 유익한 건의에 감사한다. 나와 나의 동료는 당신의 건의를 잘 연구하겠다. 결론적으로 중국의 개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당신이 말한 것이 완전히 동의한다. 중국의 발전은 미국인민의 이익에도 완전히 부합한다.

 

류허의 옛글과 마찬가지로, 이 중요한 대담도 넷이즈가 발표했다. 제목도 마찬가지로 눈에 띄고, 대담하고, 첨예하다. 대화내용도 강력한 현실적인 의미가 있다. 자오쯔양은 허심탄회하게 전문가의 의견을 들었고, 좋은 것은 받아들였다. 그것이 글에서 충분히 드러난다.

 

이 대화는 왕후닝이 주도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교조적인 투쟁적인 고식적인 설교와 보도와는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넷이즈가 이 글을 발표한 배후는 아마도 중공의 고관일 것이다. 

 

다섯째, <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기준이다>를 다시 꺼내다.

 

1978년, 5월 10일, 중공중앙당교의 내부간행물 <이론동태>에는 후야오방이 심의한 <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기준이다>를 실었다. 11일 <광명일보>는 '본신문특약평론원'이라는 명의로 1면에 공개적으로 발표했고, 신화사도 당일 원고를 송부한다. 12일 <인민일보>, <해방일보>등도 전문을 게재한다. 13일에는 다시 여러 성신문에 전재된다. 이 글은 당시에 거대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전국에서 진리의 기준에 대한 대토론이 나타난다.

 

금년 3월에서 6월까지, 대륙의 각 매체는 계속 글을 실어서 이 글이 나타난 과정과 의미를 크게 선전했다.

 

예를 들어, 3월 24일, <광명일보>가 글을 발표할 때, 특별히 등소평이 이 글을 긍정하고 지지했다는 것을 언급한다. 당시, 등소평은 이 글의 발표를 통해,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했고, 정신적인 굴레를 벗어나게 하여, 우리의 사상이 대해방을 이루게 하려고 했다.

 

그리고, 5월 31일, 신문1면에 글을 발표하여 특별히 이 글은 당시 중앙당교 부교장 후야오방이 심의한 후 발표했다는 경위를 설명한다.

 

<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기준이다>의 핵심은 이것이다: 문혁을 부정한다. 당시의 중공당수 화국봉이 견지한 '양개범시'(무릇 모주석이 한 결정은 우리가 견결히 유지보호한다. 무릇 모주석이 지시한 것은 우리가 시종 일관되게 따른다)를 부정했다.

 

등소평은 진리의 표준에 대한 대토론과정에서 화국봉을 대체하여 중공의 진정한 핵심지도자로 떠오른다. 그후 점차 권력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화국봉이 맡고 있던 중공중앙주석, 중앙군위주석, 국무원총리등 직무를 박탈한다. 그리고 화국봉의 곁에 있던 부총리급의 고관들을 모조리 면직시킨다.

 

최근 대륙매체는 <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기준이다>라는 글과 관련된 내용을 포함하면서 중공체제내의 개혁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는 왕후닝이 주도하는 문혁회귀분위기에 대한 반격이다.

 

여섯째, 일부 중공대외선매체의 시진핑타도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6월 10일, 장쩌민파 색체가 있는 해외매체는 <누가 당중앙을 감독하는가>라는 글을 실어 창끝을 시진핑에 향했다.

 

6월 11일, 위의 해외매체는 <러시아매체는 시진핑의 칭하이에서의 티벳인과의 대담을 집중했다: 스탈린스타일이다> 러시아매체의 입을 빌어, 시진핑이 '스탈린'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6월 8일, 위의 해외매체는 <인민일보> 6월 7일, 8일 발표된 두 편에서 장쩌민을 한번도 언급하지 않은 평론을 언급하면서, 특별히 사진을 실었는데, 배열순서가 모택동, 등소평,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이었다. 장쩌민을 가장 중간에 놓았다. 시진핑은 가장 바깥엔 놓았다. 정말 고심이 느껴진다.

 

5월 28일, 위의 해외매체는 글을 발표하여, 중공이 전사회를 동원하여 신 '사사(四史)'를 학습하는데 대하여 집중포화를 가하면서, 시진핑이 '공리적으로 일종의 역사허무주의로 또 다른 역사허무주의를 대체한다'고 짖거한다. 이 글의 마지막에는 이런 질문을 올린다: '이 신조가 만들어낸 역사는 도대체 학습하는 것인가 정신통제하는 것인가?

 

일찌기 2018년 12월 3일, 위의 해외매체는 <극좌가 중국을 분열시키는데, 시진핑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글을 실어 시진핑의 전면적인 반성을 요구했다.

 

결론

 

기실, 왕후닝이 시진핑을 해치는 수법은 아주 졸렬했다. 예를 들어, 2020년 3월 우한폐렴이 우한에서 전세계로 만연되어 각국인민에게 중대한 재난을 끼칠 때, 왕후닝은 가장 빠른 속도로 <대국전역(大國戰疫)>의 출판을 주도했다. 신화사보도에 따르면, 이 책은 "시진핑 총서기가 대국의 지도자로서 백성을 위한 마음과 사명과 장기적 전략과 탁월한 지도력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는 시진핑을 칭송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시진핑을 욕하는 것이다. 이 소식이 나오자, 인터넷은 난리가 났다. 악평이 물결을 이루고 욕하는 소리가 하늘을 진동시켰다.

 

다만, 시진핑은 왕후닝이 먹인 마르크스레닌주의 미혼탕에 미혹되어, 오랫동안 진실한 상황을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했다. 하나의 오판이 다른 오판을 불러왔다. 내정과 외교가 모조리 망가졌다. 시진핑을 욕하고, 시진핑을 반대하고, 시진핑을 타도하자는 목소리가 국내외에 퍼진다.

 

오늘날, 시진핑의 처지는 위험하다. 왕후닝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으므로, 아마도 그의 심복으로 그 자리를 대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