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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부의)

마지막 황제 부의(溥儀)의 7명 여동생

by 중은우시 2019. 5. 15.

글: 장생전(張生全)


부의는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이다. 비록 어린 나이에 망국의 군주가 되었지만, 특수한 신분으로 계속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7명의 여동생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 여동생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1. 첫째 여동생 온영(韞英)


온영이 출생한 해는 그들의 집안에 큰 변고가 발생한 해이다.

첫째는 광서제와 서태후가 연이어 사망하고, 그녀보다 2살많은 오빠 부의가 태화전에서 황제로 등극했으며, 둘째는 그녀의 부친 재풍이 유조를 받들어 국사를 대리하는 섭정왕이 된 것이다.

장녀로서, 온영은 어려서부터 엄격한 교육을 받아 전통적인 황족 거거(格格)로 성장한다.

어른이 된 후, 재풍의 주재하에 온영은 내무대신 영원(榮源)의 장남에게 시집간다. 즉, 마지막 황후 완용(婉容)의 오빠인 윤량(潤良)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들 둘은 성격이나 생각이 전혀 맞지 않았다. 그래서 온영은 혼인한 후, 불행하게 지내고, 걸핏하면 친정으로 돌아와서 시댁으로 가지 않으려 했다.

재풍은 비교적 보수적인 인물이다. 그는 이혼은 체통을 잃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온영의 이혼을 결사반대한다. 동시에 그는 온영이 자주 친정으로 와서 지내는 것도 법도에 어긋난다고 여겨서 억지로 그녀를 시집으로 돌려보내곤 했다.

1925년, 17살의 온영은 돌연 볍을 얻었다. 진단을 해보고 나서 비로소 급성맹장염이라는 것을 알았다.

서양의사에게 보내어 수술을 받게 하자고 건의했지만, 봉건가장인 재풍은 수술하려면 옷을 벗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당당한 거거가 어찌 남의 앞에서 옷을 벗을고 만지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건 체통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반대한다. 결국 그가 이렇게 시간을 끄는 바람에 온영은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목숨을 잃게 된다.


2. 둘째 여동생 온화(韞龢)


온화는 1911년에 태어난다. 바로 무창의거가 일어난 해이다.

논화는 어려서부터 자금성에서 부의와 함께 자란다. 그래서 그녀는 부의와 가장 관계까 가까웠다.

나중에 부의가 풍옥상에 의해 자금성에서 쫓겨날 때도 온화는 여전히 그의 곁을 지켰고, 부의가 만주국의 괴뢰황제가 되었을 때도 그녀는 부의를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부의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나중에, 부의와 일본인의 안배로 온화는 만주국총리 정효서(鄭孝胥)의 손자인 정광원(鄭廣元)에게 시집간다. 그후에 그녀는 정광원을 따라 영국으로 유학간다. 부부간에는 화목했고, 1남3녀를 둔다.

신중국이 성립된 후, 정광원은 엔지니어가 되고, 온화는 유아원 관리원이 된다.

2001년 91세의 온화는 세상을 떠난다.


3. 셋째 여동생 온영(韞潁)


1913년 융유태후가 자금성에서 병사한다. 그러나 죽는 사람이 있으면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 이 해에 온영은 자금성에서 태어난다.

온영과 부의는 모두 적푸진(嫡福晋) 과르자씨(瓜爾佳氏) 소생이다. 그래서 그녀는 어려서부터 부의의 사랑을 받는다.

1924년, 부의가 천진의 장원(張園)을 거처로 삼자, 온영도 천진으로 간다. 부의의 요구로 온영은 일본어를 배운다. 그리고 평소에는 테니스로 시간을 보냈다.

온영이 19살때, 부의가 주재하여 완용의 둘째오빠인 윤기(潤麒)에게 시집을 간다.

그후 부의는 만주국에서 황제에 올랐고, 친히 온영과 윤기가 장춘에서 혼례를 올리게 해준다.

일본이 패전한 후, 윤기는 도망치다가 행방불명이 된다. 온영은 할 수 없이 2남1녀를 데리고, 북경으로 돌아가서 시어머니와 함께 지낸다. 살기는 빠듯했다.

신중국이 성립된 후, 온영은 집을 나와, 거민위원회에서 일하며 전후로 거민조장과 치보주임을 맡는다.

나중에 장사쇠(章士釗)의 추천을 받아, 붝경 동성구 정협위원이 된다.

1992년, 온영은 편안한 말년을 보낸 후 사망한다. 향년 89세이다.


4. 넷째 여동생 온한(韞嫻)


온한은 1914년에 태어난다. 그녀의 생모는 재풍의 시녀였다. 비천한 신분이라 그녀는 다른 형제자매들에 비하여 부모의 사랑을 적게 받는다. 오빠인 부의도 그녀가 비천한 생모에게서 태어난 것때문에 좋아하지 않았다.

괴뢰황제가 된 부의는 일본인의 조종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온한을 만주국에서 흥안령분성의 성장으로 있던 능승(凌升)의 아들 색포정태(色布精太)에게 시집보내기로 약속하고 준비를 한다.

능승은 몽골귀족으로 세력이 컸다. 부의와 인척관계를 맺게 되자 부의에 충성을 다한다. 그리하여 일본인들이 그를 경계하게 된다.

나중에 일본인들은 부의가 말을 듣지 않고, 동시에 능승이 정변을 일으킬까 걱정도 되어, 아예 능승을 총살해 버린다. 이를 통해 부의를 겁주려는 것이다.

부의는 과연 겁을 먹었다. 그리하여 온한과 능승의 혼약은 흐지부지된다.

나중에 부의는 다시 온한을 동학(同學)인 조기번(趙琪璠)에게 시집보낸다.

조기번은 계속하여 일본인을 위해서 일했고, 일본이 투항한 후, 그는 소식이 끊어진다.

신중국이 성립된 후, 빈곤에 빠진 온한은 정부의 조치로 주택도 얻고 도서관의 일자리도 얻는다. 그리고 2003년 세상을 떠난다. 향년 89세이다.


5. 다섯째 여동생 온형(韞馨)


온형은 순친왕부에서 태어난다. 1917년에 태어났고, 당시 부의는 11살이다.

온형이 처음 자금성으로 가서 황제인 오빠를 만났을 떄는 어렸었다. 그러나 궁안의 법도가 너무 많고, 부의가 생소했으므로 부의를 본 후에 그녀는 매우 무서워한다.

나중에 만주국에 가서도 온형은 여전히 부의를 오빠로 보기 보다는 높은 데 있는 황제로 여긴다. 그래서 그녀는 그때 비록 십여세이지만, 매번 부의를 볼 때마다 여전히 절을 했다. 단지 무릎을 꿇고 하는 대례가 아니라, 허리를 숙이는 국궁으로 바꾸기는 했지만.

온형의 혼사도 정략결혼이다. 부의는 청나라의 중신의 아들인 만가희(萬嘉熙)에게 시집보낸다. 이를 통해 만가희를 만주국의 심복으로 삼으려 한다.

결혼후, 부의는 만가희를 일본에 파견하여 군사를 익히게 한다.

일본이 패전한 후, 만가희는 소련홍군에 체포되어 시베리아의 농장에서 노동개조를 당한다. 경제력이 없던 온형은 3남1녀를 데리고, 곤궁하게 지낸다.

신중국이 성립된 후, 온형은 봉인공(縫纫工)이 된다. 나중에는 한 호텔에서 출납을 맡는다.

나중에 만가희가 소련에서 석방되어 북경으로 돌아온다. 그는 일본어에 정통하여, 통역이 된다.

1998년 온형이 사망하니, 향년 81세이다.


6. 여섯째 동생 온오(韞娛)


온오는 1919년에 태어났고,어려서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송,원의 명화를 모사하는 것을 즐겼다.

1943년, 부의의 안배로 온오는 금세종(金世宗)의 후손인 왕애란(王愛蘭)에게 시집간다.

왕애란도 화가여서, 두 사람은 취미가 맞았다. 자주 그림을 같이 그렸다. 결혼후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북해공원 등지에서 그림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신중국이 성립된 후, 온오는 중국미술가협회에 가입하여 회원이 된다.

1982년, 온오가 병사하니 향년 63세이다.


7. 일곱째 동생 온환(韞歡)


온환이 출생했을 때, 재풍은 이미 40살에 가까웠다. 그리하여 재풍은 온환을 특별히 좋아했다. 글을 읽고 글씨를 쓰는 것도 모두 친히 가르친다. 많은 경우 그녀에게 궁안의 법도를 가르쳤다. 그녀가 황가의 거거로서 풍모를 지니길 바랬다.

1928년, 온환은 재풍을 따라 천진으로 이사간다. 영국인이 만든 학교에서 교육을 받는다.

비록 당시에 부의도 천진에 있었지만, 재풍은 부의가 일본인과 어울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서, 왕래가 많지 않았다. 온환은 그리하여 부의를 한번도 만나지 못한다.

부의가 만주국의 괴뢰황제에 오른 후, 여러번 재풍에게 동생들을 데리고 만주국으로 와서 같이 살자고 청하지만, 재풍은 계속 거절한다.

온영(韞潁), 부걸(溥傑)등이 여러번 재풍에게 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리하여 전후로 그를 떠나, 만주국으로 간다. 재풍은 온오, 온환과 부임(溥任)의 가장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계속 천진에 거주한다. 재풍은 그들에게 말했다. 반드시 글을 열심히 읽고, 사람으로서 해야할 일을 잘 하라고.

일본이 패전한 후, 온환은 교육사업에 투신한다.

온환은 부의와 왕래가 없었기 때문에 혼인에서도 간섭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자유로웠다. 그녀는 한족교사와 연애를 해서 결혼한다.

1960년, 정부의 조치로 39세의 온환은 처음 부의를 만난다.

1979년 평생 학생을 가르친 온환은 퇴직하고, 조용히 노년생활을 보낸다.

2004년, 온환이 북경에서 병사하니, 향년 83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