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한국79

중국은 전랑외교로 한국을 다시 잃었다. 글: 황포강봉(黃浦江封) 국제사회가 블링컨의 방중을 주목하고 있을 때, 한중관계는 사상유례없이 긴장되며, 외교전이 양국간에 전개되고 있어서, 마치 1895년이전의 한반도의 국면의 재연되는 것같다. 중국은 한국을 잃는 외교적 실패에 직면했을 뿐아니라, 이 실패는 아마도 청일전쟁과 같은 시스템적인 실패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중국의 옛날 대조선외교의 실패는 1882년 조선의 임오군란때부터 시작한다. 이홍장(李鴻章)의 심복인 마건충(馬建忠)은 임오군란후에 조선에 사신으로 간다. 주요목적은 조선과 일본의 결맹을 막는 것이었다. 다만, 설사 그가 친일적인 대원군을 성공적으로 납치하고, 친중의 민비를 내세웠으며, 원세개(袁世凱)가 1885년 한성에 주둔하며, 이홍장이 영국, 러시아, 미국등의 세력을 빌어 일본을 막.. 2023. 6. 19.
한국은 중국시장을 떠나는가? 글: 송국성(宋國誠) 한국대통령 윤석열은 4월 24일 미국으로 가서 6일간의 방문을 진행했다. '바이든-윤석렬정상회담'이후 한미 양국은 을 발표했고, 쌍방은 "핵협의그룹(Nuclear Consultative Group)"을 건립하여, 한반도핵위협에 대응하는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윤석열에 따르면, 워싱턴선언은 미국이 이전에 없었던 약속이며, 핵무기를 통하여 방어를 강화하고 공격을 저지함으로써 미국의 동맹국을 보호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바이든은 북한이 미국 혹은 동맹국과 파트너에게 핵공격을 감행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고, 어느 정권이든 그런 행동을 취하면, 그 정권은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의 전략전환 한국대통령에 당선된 이래, 윤석열은 "이중친미(離中親美)"의 전략노선을.. 2023. 5. 2.
고구려(高句麗)민족의 족속소원(族屬溯源) 글: 민초사운(民初思韻) 고구려민족의 족원(族源)은 비교적 복잡하다. 몽골초원 동부에서 온 맥인(貊人), 부여인(夫餘人)도 있고, 동북의 오래된 거주민인 예인(濊人), 구려인(句麗人), 진번인(眞番人)도 있고, 또한 중원에서 온 한인(漢人)도 있었다. 고구려정권의 통치하에, 위에서 언급한 민족들이 장기간 민족융합을 진행하여 나중에 새로운 민족공동테가 되고 그 정권의 칭호를 따서 "고구려인"으로 불리게 된다. 1 고구려족중 부여국에서 이주해온 부분은 '부여족'을 주체로 하며, 고구려의 통치집단은 부여인에게서 나왔다. 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옛날 시조 추모왕(鄒牟王)이 기반을 세웠다. 북부여 천제(天帝)의 아들이다." 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추모성왕(鄒牟聖王)은 원래 북부여에서 나왔다." 모두 고구려.. 2023. 4. 14.
김약산(金若山)과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 정리: 원빈(袁斌) 사마로(司馬璐)는 18살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19살때 연안에서 항일군정대학 도서관장을 맡았으며, 20살에 연안판사처 주임이 된다. 그는 중국공산당을 떠난 후 오랫동안 당사(黨史)연구에 종사하여, 당사전문가로 불린다. 사마로는 연안의 신화사에서 일할 때, 그의 직접상사는 그의 '조직관계가 불분명하다'고 생각하여, 그를 신화사에서 내보낸다. 이어서 다시 '조직'은 그를 연안에서 내보닌다. 그에게 국통구(國統區)로 가서 '시험'을 받으라고 한 것이다. 이 직접상사의 이름은 서빙(徐氷)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몇년후, 사마로는 중경에서 서빙을 다시 만난다. 그리고 여기서 주은래(周恩來)와 사마로가 얽힌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1940년 8월, 사마로는 중경으로 간 후, 그가 연안.. 2022. 8. 27.
한국은 CHIP4(반도체4국동맹)에 가입할 것인가? 글: 왕혁(王赫) 7월 19일, 한국대통령 윤석열은 미국 재무장관 앨런을 접견하였으며, 한미간의 전면적인 전략동맹관계가 정치군사안전분야에서 공업기술안전, 경제금융안전분야로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확대'의 시금석은 바로 한국이 "CHIP4(반도체4국동맹)"에 가입할 것이냐이다. 미국은 8월말 CHIP4를 건립하기 위한 주비위원회를 개시하고자 하며, 타이완과 일본은 이미 적극적인 참여의향을 나타냈다. 한국만 아직 최종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금년 3월, 미국정부는 일본, 한국, 타이완에 CHIP4건립을 제안했다. 미국은 반도체설계기술분야의 선두주자이고, 일본은 핵심반도체재료, 부품 및 장비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타이완은 반도체파운드리분야에서 절대적인 우세를 지니고 있고, 한국은 DRam 및 파운드리.. 2022. 7. 21.
중국과 북한의 국경선획정 비화: 백두산과 압록강 작자: 일명(佚名) 백두산(장백산)은 지금까지 만주족이 기원한 '용맥(龍脈)'으로 여겨져 왔다. 장백산에 들어가서 산삼을 캐거나, 사냥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청나라조정은 이런 활동이 용맥을 끊을 수 있다는 우려를 해서, 동북지방에 대하여 200여년에 걸친 봉금정책(封禁政策)을 실시하여, 장백산(백두산)지구, 압록강, 토문강등 중국-조선변경지역을 '봉금'의 핵심지구로 삼아 진입을 엄금했다. 나중에 오랫동안의 봉금정책으로 동북변방지역은 사는 사람이 드물어져서 국경방어가 느슨해진다. 그리하여 심각한 국방위기를 초래하게 된다. 특히 청나라 도광이후 제정러시아등 열강의 침략확장으로 이 위기는 갈수록 심각해진다. 그리하여 조선의 변방주민들이 불법월경하는 사례가 늘어나게 된다. 나중에 1860년부터 1870년까지.. 2022. 2. 16.
발해국(渤海國): 사라진 동북의 문명고국 (이 글은 중국인의 발해에 대한 입장을 알아볼 수 있는 글이서 소개합니다) 글: 사문(思文) 역사상의 발해국이 해동성국(海東盛國)이다. 중국고대역사상 말갈족을 주체로 한 정권이다. 그 범위는 지금의 중국 동북지구, 한반도 동북 및 러시아 극동지구의 일부에 상당한다. 698년, 속말말갈의 우두머리인 대조영(大祚榮)이 동모산(東牟山, 지금의 길림성 돈화 서남성자산 산성, 일설에는 지금의 길림성 연길 동남성자산 산성 혹은 용서고성이라고 한다)이 '진국왕(震國王, 振)"이라 칭하며 정권을 건립한다. 713년, 당현종은 대조영을 "발해군왕(渤海郡王)"에 봉하고, 홀한주도독(忽汗州都督)의 직위를 수여한다. 762년, 당나라는 발해를 '국(國)'으로 승격시킨다. 발해의 도성은 동모산 일대이다. 742년에는 중경현덕부.. 2021. 6. 4.
고구려(高勾麗)가 멸망한 후, 고구려유민들은 어디로 갔을까? 글: 대사자(大獅子) 고구려는 고대 동북아에서 확실히 영향력이 있었던 대국이다. 만주와 한반도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부여인과 예맥인으로 구성된 국가였다. 기원전37년에 건국하여, 668년에 멸망한다. 전후로 700여년간 존속했다. 4-6세기에 전성기를 이루었고, 한반도남부의 백제, 신라와 함께 '삼국'으로 불리웠다. 수나라때, 수양제는 일찌기 3차례에 걸쳐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정벌한 바 있으나, "사자상침(死者相枕), 취예영로(臭穢盈路), 천하소동(天下騷動)"(죽은 자가 서로 겹쳐 있고, 시체썩은 악취가 길에 가득하며, 천하에 소란이 일어난다). 백성들은 전쟁으로 고통이 컸고, 대규모의 농민반란이 일어난다. 결국 고구려는 존속하나, 수왕조는 붕괴된다. 당나라에 이르러, 고구려는 남방의 신라를 공격하고.. 2020. 11. 28.
시진핑의 대북정책은 원점으로 회귀했는가? 글: 왕혁(王赫) 미중신냉전의 형세하에서, 5일동안 시진핑은 2번이나 요란하게 '항미원조'를 기념했다. 이는 여러가지 신호를 내보낸 것이다. 그중 하나는 아마도 대북정책을 현재 조정하는 중이라는 것일 것이다. 현대의 북중관계는 '괴태(怪胎)'라 할 수 있다. 70년동안, 중공은 수십만의 장병을 희생하고, 장백산, 천지 및 압록강입구의 모든 섬(1962년체결한 북중변경조약은 지금까지도 비밀로 유지되고 공개되지 않았다)을 넘겨주고,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는 경제원조도 해주고, 심지어 비밀리에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하도록 지원했는데, 왜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이는 중국인민을 해쳤을 뿐아니라, 북한인민도 해친 것이다. 그저 말을 잘 듣지 않은 김씨세습정권을 유지시켜주었을 뿐이다. 비록 중국은 김씨정권.. 2020. 10. 28.
한국전쟁: 미,러,중,남,북의 5개국 교과서는 어떻게 서로 다르게 쓰고 있는가? 글: 현혁당(炫赫堂)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다. 중국, 미국, 북한, 남한, 여기에 소련의 일부 군대가 한반도에서 3년간 격렬한 전투를 벌인다. 백만의 생령이 도탄에 빠지며 결국 다시 북위38도선으로 되돌아와 지금까지 대치하고 있다. 각 나라 국민의 기억 속에서 60여년전의 그 전쟁은 각국이 서로 다른 명칭인 "항미원조" "625전쟁" "한국전쟁"과 "조선조국해방전생"으로 불리고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한반도가 평화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오늘, 그 세계를 뒤흔든 전쟁에 대하여 각자의 역사기술은 전쟁사 및 이데올로기에 대한 대결이 깊이 관련되어 있다. 여러 쪽의 얘기를 듣게 되면 사실을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중국, 미국, 러시아, 북한, 남한은 각각의.. 2020.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