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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원)32

충선왕(忠宣王) 왕장(王璋): 티벳(西藏)으로 귀양간 고려왕 글: 자귤(紫橘)​고대 중국과 조선의 관계는 오호난화이후 적지 않은 변화가 발생한다. 그후 중원왕조는 거의 조선반도의 일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았다. 다만 원(元)나라는 예외이다. 조선반도는 명목상으로는 독립정권이었지만, 원나라의 번속국으로 쌍방은 생구(甥舅, 조카와 외삼촌)관계를 건립한다. 다만, 원나라는 언제든지 조선반도의 일에 간섭할 수 있었다. 그 전형적인 사례는 바로 원영종(元英宗)이 고려(高麗)의 충선왕(忠宣王) 왕장(王璋)을 티벳(西藏)으로 유배보냈던 일이다. 원영종이 왜 일국의 왕을 유배보냈을까?​최초의 몽골-고려혼혈왕​고려의 충선왕 왕장의 부친은 충렬왕(忠烈王) 왕거(王昛)이다. 모친은 원세조 쿠빌라이의 딸 원성공주(元成公主) 쿠틀룩켈미쉬(忽都魯揭里迷失)이다. 왕장은 1274년에 태어났으.. 2024. 11. 1.
방국진(方國珍): "원나라를 망하게 한 자는 방국진이다(亡元者, 國珍也)" 글: 서북낭(西北狼)​청나라때의 명사연구자인 부몽린(傅夢麟)은 원나라말기 농민반란을 연구하면서 내린 결론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원나라를 망하게 한 자는 바로 방국진이다(亡元者, 國珍也)"​그렇다. 부몽린이 보기에, 원나라에 가장 크게 해를 끼친 자는 진우량(陳友諒)도 아니고, 장사성(張士誠)도 아니며, 더더구나 주원장(朱元璋)은 아니었다. 오히려 원나라말기 난세에 존재감이 별로 없는 소군벌 방국진이었던 것이다.​더욱 이해되지 않는 점이라면, 반원의 기치를 가장 먼저 들었던 방국진은 원말의 난세를 무사히 넘기고, "명태조 주원장의 통치하에 말년을 편안하게 보내면서, 자손을 보호하고, 부귀복록을 누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강남백만병을 모조리 죽여버렸다는 주원장이 왜 유독 자신과 천하.. 2024. 10. 6.
명나라의 영왕(寧王), 원나라의 아릭부케: 후손의 백년후 복수... 글: 자귤(紫橘)​명나라때 영락제(永樂帝) 주체(朱棣)는 영왕(寧王) 주권(朱權)에게 나중에 천하를 나누어갖자고 유혹하여 반란에 끌어들였다. 그러나 주체는 반란에 성공한 후, 영왕계를 탄압한다. 그리하여 영왕계통은 모두 복수를 꿈꾸었다. 다만 진정 반란을 일으킨 것은 명무종(明武宗)때의 주신호(朱宸濠)인데, 그는 왕양명(王陽明)에 의해 손쉽게 진압당했다. 그런 일이 이때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원나라때도 실의한 왕족 아릭부케(阿里不哥)가 있었다. 당시 아릭부케는 쿠빌라이(忽必烈)와 황위를 다투었고, 실패한 후 그 가족은 탄압을 받고 서북으로 흘러들어간다. 나중에 원나라가 망하고 북으로 도망쳤을 때, 아릭부케의 자손은 마침내 기회를 잡았고, 포어아해(捕魚兒海)의 전투이후 아릭부캐의 자손인 이수데르(也速迭兒.. 2024. 8. 24.
유흑마(劉黑馬): 원나라때 가장 성공한 한인(漢人), 몽골인은 왜 그를 신임했을까? 글: 자귤(紫橘)​TV드라마 에 나오는 유로(劉路)가 매국노인지 아닌지에 대하여 대부분의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일본국적을 취득한 일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어쨌든 대화민족(大和民族)이 아니다보니, 일본인들은 그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원(元)나라때의 한족 세후(世侯)집단도 독특한 존재였다. 그들은 혈통적으로 한족이지만, 그들은 내심이나 정신적으로 몽골인이었다. 정치적인 대우에서, 몽골인들은 그들에게 한 지방의 군정대권을 쥘 수 있도록 해주고, 대대로 세습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들 세후(世侯)중 우두머리는 유흑마이다. 그의 가족은 가장 먼저 몽골에 귀순한 한족이고, 계속하여 몽골의 신임을 받았다. 그러나, 이단(李璮)의 난은 양자간의 친밀한 관계를 가.. 2024. 8. 4.
동문병(董文炳): 쿠빌라이가 형님으로 부른 한족... 글: 자귤(紫橘)​고등학교 교과서에 따르면 원나라는 4등인제도(四等人制度)를 실행했다. 그러나 실제상 이 4등인이 각족의 고위층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았고, 이는 일반인에 대한 제한이었다. 그리고 이 사등인제가 정식의 제도였는지 아닌지에 대하여도 의문이 있다. 1등인인 몽골인의 하층은 모두 착취를 당했고, 그들도 원나라에 원한을 가졌다. 그래서 명나라초기의 삼천영(三千营), 대내()의 등양사위(腾骧四卫)는 모두 몽골인이었고, 매번 초원을 토벌할 때 그들이 가장 앞장섰다. 마찬가지로 3등인 한인의 고위층도 호화사치스럽게 살았고, 원나라황제의 신임과 존경을 받았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쿠빌라이가 '동대가(董大哥, 대가는 큰형님이라는 의미임)'로 부른 동문병이다.​농민에서 관료로​동문병의 동씨집안.. 2024. 6. 20.
징기스칸은 중국인인가? 글: 자미도인(紫薇道人) 이건 원래 아주 간단한 문제이다. 그러나 공산당은 천고의 난제로 만들어 버렸다. 징기스칸이 중국인인가 아닌가? 답은 원래 간단하다. 중국의 국가구조는 영국과 유사하다. 몽골인과 중국의 관계는 스코틀랜드인과 영국의 관계와 비슿하다. 스코틀랜드인은 영국인이기도 하면서 영국인이 아니기도 하다. 그건 어느 영국을 가리키는지를 봐야 한다. England인지 United Kingdon인지? 징기스칸이 중국인인가 아닌가? 중국인일 수도 있고, 중국인이 아닐 수도 있다. 원래 중국은 해석권과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 영토를 확장하고 싶을 때는 징기스칸을 중국인이라고 할 수 있고, 전략수축때는 징기스칸을 중국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유리한 조건을 공산당은 스스로 깨트려버린다. 공산당.. 2023. 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