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인문지광(人文之光)
원나라의 저명한 재상이라고 말하면 누가 생각나는가? 어떤 사람은 엘 테무르(El Temur, 燕帖木兒)를 얘기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토크토아(Toqtoa, 脫脫)를 얘기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 얘기할 사람은 엘 테무르도 아니고, 토크토아도 아니다. 원나라의 저명한 금융전문가인 아합마(阿合馬, Ahmad Fanakati)이다.
기실 필자는 역사에 관한 글을 쓰면서도, 금융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하여 필자는 아합마라는 인물을 아주 좋아한다.
- 아합마는 쿠빌라이에게 중용되다.
아합마의 신세내력에 관하여는 이야기가 좀 길다.
일찌감치 몽골의 징기스칸시대에, 몽골대군이 금(金)나라와 대치하고 있을 때, 몽골대군은 중앙아시아의 호라즘(花剌子模)을 토벌하고 있었다. 그후 징기스칸의 후계자는 계속하여 서유럽, 동유럽에서 전쟁을 벌였다. 예를 들어, 아랍제국은 몽골인에게 멸망당했다. 그리고 몽골인은 중앙아시아, 서아시아등지를 정복하는 것과 동시에, 현지의 민중을 동아시아지구로 이주시켰다. 이들 중앙아시아, 서아시아의 사람들은 몽골/원나라때, 색목인(色目人)이라고 불렸다.
고대의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지구의 사람들은 상업에 열중했다. 그리고 몽골인은 비교적 일찌감치 서아시아등지의 문명과 교류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몽골군왕은 유가문화를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서, 원나라황제가 나라를 통치할 때, 왕왕 상인을 즐겨 중용하게 된다. 유학자는 좋아하지 않았다. 어쨌든 유가의 공리공담과 비교하면, 상인은 황제에게 돈을 가져다 줄 수 있었고, 장인은 기구를 만들어줄 수 있었다.
당연히 이는 많은 유학자들이 원나라를 좋아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아합마라는 중앙아시아의 색목인은 바로 이런 배경하에서 원나라의 고위관료가 된다.
아합마는 개략 호라즘사람으로 보인다. 일찌감치 징기스칸시대에 호라즘은 징기스칸의 대군에 평정된다. 그리고 아합마의 조상은 몽골귀족의 가노(家奴)가 된다. 나중에 아합마의 주인집의 딸이 쿠빌라이에게 시집가게 되고, 아합마는 그 딸을 따라 오면서, 쿠빌라이의 눈에 들게 된다.
아합마는 사람됨이 기민하여, 쿠빌라이가 좋아하게 된다. 그리고 아합마의 조상은 호라즘에서 장사를 하던 사람이다. 그리하여 아합마는 어려서부터 장사, 돈벌이에 대해 깊은 이해를 지니고 있었다. 기실 필자는 재산관리를 아주 중시한다. 필자가 글을 써서 버는 돈도 거의 모두 투자하고 있다.
쿠빌라이가 황제로 있는 동안, 산동에서 한족군인우두머리가 반란을 일으킨다. 이는 쿠빌라이로 하여금 한인관료에 대한 신뢰를 잃게 만들었다. 다만, 원나라조정은 나라를 운영하는데 많은 기술관료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색목인들이 중용되게 된다. 아합마는 이로 인하여 고위직에 오른다. 첫째는 쿠빌라이가 그를 신임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아합마에게는 실제로 업무에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2. 아합마의 재세(財稅) 재능
쿠빌라이가 아합마를 중용할 때 중국은 아직 남북대치의 상태였다. 북방의 대부분 영토는 원나라가 장악하고 있었지만, 남방은 여전히 남송의 통치하에 있었다. 그리고 쿠빌라이는 남송에 전쟁을 개시하려면 재정이 크게 지원해주어야 했다. 그리하여 아합마같이 돈만드는데 능력이 있는 금융전문가가 활약할 공간이 생기게 된다.
아합마는 일련의 정책을 내놓는다. 거기에는 전매권, 관방채광등이 포함된다. 이들은 원나라의 세수에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 이와 동시에, 아합마는 또한 원나라 경내에서 화폐개혁을 추진하자고 건의한다. 이런 조치는 쿠빌라이로 하여금 대외전쟁에 필요한 충분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하는데 핵심역할을 한다.
어쨌든, 전쟁의 본질은 재정을 겨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쿠빌라이는 계속하여 아합마를 발탁하고, 아합마는 한때 재상의 지위에까지 오른다.
당연히, 재정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아합마는 개인적으로 돈을 챙기기도 했다. 이에 대하여 쿠빌라이는 아마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재능있는 인재는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쿠빌라이가 그것을 추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합마의 지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아합마도 득의양양하여 자제력을 잃게 된다. 아합마는 무의식중에 적지 않은 원나라의 권력귀족들에게 밉보이게 되고, 이들 원나라 권력귀족들은 아합마를 제거할 것을 생각하게 된다.
3. 아합마의 최후
그러나, 아합마는 원나라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권력귀족(그 중에는 몽골귀족도 포함된다)들은 아합마를 처치해버리고 싶었지만, 왕왕 행동이 실패하는 동시에, 자신이 아합마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거기에는 남송을 멸망시키는 일을 책임지고 있는 장군 바얀(伯顔)도 포함된다. 이를 보면 아합마의 권세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아합마를 더욱 기고만장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아합마는 한 가지 사실을 잊게 된다: 그것은 바로 도법(刀法)도 법(法)이고, 물리(物理)로 리(理)라는 것이다.
원나라 지정19년(1282년)때 왕저(王著)라는 사람이 몰래 동추(銅錘)를 만들고, 계획을 세워 아합마를 암살한다.
왕저는 암살성공후 체포되고, 원나라조정에 의해 처형당한다. 그는 피살되기 전에, 소리높여 자신은 천하를 위해 해를 제거했다고 말한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안하, 쿠빌라이는 아합마가 권력을 잡고 있을 때, 여러번 다른 고관, 중신을 모함했다는 것을 발견하고, 쿠빌라이는 자신이 아합마에게 속았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쿠빌라이는 아합마의 가족을 죽이도록 명하고, 그를 부관참시했다.
그런 결과를 아마도 아합마는 전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 > 역사인물 (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찬(倪瓚): 결벽증을 가진 원(元)나라때의 화가 (2) | 2024.12.23 |
---|---|
충선왕(忠宣王) 왕장(王璋): 티벳(西藏)으로 귀양간 고려왕 (0) | 2024.11.01 |
방국진(方國珍): "원나라를 망하게 한 자는 방국진이다(亡元者, 國珍也)" (2) | 2024.10.06 |
명나라의 영왕(寧王), 원나라의 아릭부케: 후손의 백년후 복수... (3) | 2024.08.24 |
유흑마(劉黑馬): 원나라때 가장 성공한 한인(漢人), 몽골인은 왜 그를 신임했을까? (0) | 2024.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