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조림운(趙林雲)
원나라때 예찬이라는 이름을 가진 화가가 있었다.
그의 그림은 자연스럽고 간결했으며, 평생에 걸쳐 지순지정(至純至淨)을 추구한 예술가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결벽증이 있었다.
그의 그림에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물 위에도 배가 없고, 산간에도 집이 없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인간이 세계에서 가장 더러운 존재이다. 설사 그 자신이라 하더라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의 정원에는 오동나무가 서 있었는데, 그는 매일 원정(園丁, 정원관리인)에게 나뭇잎을 깨끗이 닦도록 시켰다. 조그만치의 먼지도 묻어있지 않도록.
원정들은 좋은 보수를 받다보니, 혼신의 재주를 사용하여 조심스럽게 잎 하나하나를 닦아서 이끼나 먼지가 묻지 않도록 했다.
어느 날, 예찬의 친구가 방문했고, 두 사람은 밤늦게까지 얘기를 나누다보니, 친구가 예찬의 집에서 유숙하게 되었다.
예찬은 친구가 그의 거소를 더럽힐까봐 밤에 잠에 들지 못했고, 수시로 침상에서 일어나 순시했으며, 혹시라고 불결한 물건이 있을까봐 걱정했다.
불행하게도 그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친구가 한밤중에 기침소리를 냈다. 예찬은 그가 가래를 뱉었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분명히 정원에 가래를 뱉었을 것이라고.
다음 날, 친구가 떠난 후, 예찬은 즉시 집안 일꾼들에게 명령하여 마당을 청소하고, 가래침을 찾으라고 시킨다.
일꾼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찾아다녔지만 가래침을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기지가 뛰어난 한 일꾼이 방법을 생각해낸다. 그는 나뭎잎에 가래를 뱉어서 그것을 예찬에게 보여준다.
그러자, 예찬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일꾼에게 가래흔적을 처리하라고 시킨다. 그리고 다시 나뭇잎을 깨끗하게 닦도록 했다.
예찬은 자신에게도 가혹했다.
그는 일상적인 음식기거는 역겨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배설은.
이 과정을 조금이라도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그는 독특한 화장실을 발명해낸다.
매번 화장실에 갈 때면, 그는 계단을 올라가고, 아래에 거위털을 두텁께 깐다.
배설물이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진 후, 거위털이 신속히 감싸고, 다시 흐르는 물에 떠내려간다.
이런 설계는 기발하고 지혜롭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번은 연회에서 고관대작들이 여자의 삼촌금련혜(三寸金蓮鞋)를 술잔삼아 술을 마시는 것을 보게 된다.
예찬은 그 광경을 보고 극도로 분노하여 벌떡 일어나 소매를 떨치고 떠나버린다. 역겹다고 하면서.
사생활에서도 예찬의 결벽증은 극도로 발휘된다.
그가 기녀와 잠을 잘 때도 여자에게 반드시 깨끗하게 씻도록 요구했다.
한번은 한 여자가 마음에 들었다. 방으로 들어오기 전에 미리 씻고 들어왔다.
그러나 예찬은 만족하지 않고 계속하여 냄새를 맡아보면서 여자의 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여 여자에게 다시 씻을 것을 요구한다.
이렇게 반복하다가 날이 밝았다. 여자는 피로에 지쳤고, 예찬도 흥미를 잃었다. 그저 괜한 돈을 쓴 것이다. 그러나 여자는 더욱 멘탈이 나간다. 밤새도록 씻느라고 피부까지 벗겨질 정도였던 것이다.
예찬의 조부는 현지의 대지주였다. 그래서 집안이 아주 부유했다. 이것이 아마도 그가 그런 생활방식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인일 것이다.
당시 장사성(張士誠)은 예찬에게 관직을 주고 부르려고 했다. 그의 명성과 인맥을 활용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찬은 극력 거부한다.
장사성은 다시 사람을 보내 그의 그림을 요청한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예찬은 그 사람에게 욕을 하며 쫓아낸다.
장사성은 이 일로 그에게 원한을 품는다.
한번은 예찬이 호수에서 배를 타고 있는데, 향기가 주위를 감쌌다.
장사성도 호수 위에 있었는데, 그는 이런 향기는 예찬이 아니고는 다른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여겨, 사람을 보내어 배를 타고 있던 예찬을 체포한다.
과연 그것은 예찬의 배였다. 예찬은 체포된 후 거의 반죽음이 되도록 두들겨 맞는다. 그러나 그는 한마디 비명도 지르지 않는다.
나중에 누군가 그에게 왜 비명을 지르지 않았는지 물어보자, 그는 아프다고 소리치는 것은 너무 속(俗)된 것이라고 대답한다.
예찬의 이야기는 그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극치의 추구와 독특한 개성이 충만하다.
그의 생활은 비록 고괴(古怪)했지만, 사람들은 이 예술가의 집착과 순수에 존경을 금치 못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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