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명)126 모백온(毛伯溫): 명나라는 안남(安南)을 정복했는가? 글: 자귤(紫橘)가정제(嘉靖帝)는 각박과은(刻薄寡恩)한 것으로 유명했고, 시기심이 많은 군주였다. 그가 진심으로 대한 사람을 실로 많지 않다. 역사상 대명이 자자한 엄숭(嚴嵩), 서계(徐階)도 가정제로 하여금 안심하게 만들지 못했다. 가정제의 유모의 아들인 금의위지휘사(錦衣衛指揮使) 육병(陸炳)은 비록 그의 신임을 받았지만, 가정제가 직접 그의 전포(戰袍)를 벗겨주는 영광은 누리지 못했다. 그러나 모백온이라는 명나라의 개국공신 유백온(劉伯溫)과 성만 다른 인물은 가정제가 그를 위해 지어준 시에서 "태평대조귀래일(太平待詔歸來日), 짐여선생해전포(朕與先生解戰袍)"라는 시를 지어주었다. 그럼 도대체 이 모백온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었을까?명나라와 안남(安南)홍무제때, 안남국왕(安南國王) 진일규(陳日喹)는.. 2024. 9. 24. 장거정(張居正) vs 홍조선(洪朝選): 명나라의 궁정투쟁 글: 자귤(紫橘)장거정이 집권한 기간동안 발호하고, 권력을 독점하고, 부정부패했다는 것은 모두 증거가 있다. 다만 그가 번왕(藩王)의 재산에 욕심을 부렸다는 것은 지나친 점이 있다. 후인들이 장거정의 죄상으로 열거한 것중에는 는장거정이 황가를 능멸한 권간(權奸, 간사한 권신)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양양(襄陽)의 요왕(遼王) 재산에 침을 흘렸고, 요왕사건을 조사하던 홍조선(洪朝選)에게 요왕을 모함하도록 지시했으나, 홍조선이 따르지 않았고, 장거정은 다시 수하를 시켜 홍조선을 죽여 입을 막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장거정의 제2의 조조이다. 장거정이 정말 그 정도로 악독했을까?장거정과 홍조선의 관계홍조선은 가정(嘉靖)시기의 진사이고 관직은 도찰원우첨도어사(都察院右僉都御史)에 이른다. 그가 장거정과 .. 2024. 8. 24. 남명(南明) 홍광제(弘光帝)와 가짜황제사건, 가짜황후사건, 가짜태자사건.... 글: 자귤(紫橘)명나라때의 수수께끼사건을 얘기하자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태창제(泰昌帝)시기의 정격안(梃擊案), 홍환안(紅丸案), 이궁안(移宮案)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세 사건은 명나라정국에 미친 영향이 비교적 적었고, 외적의 위협이 비교적 적은 상황하에서의 내부투쟁이었다. 그러나 명나라때 더욱 유명한 것은 홍광제(弘光帝)때의 남도삼안(南渡三案) 혹은 홍광삼안(弘光三案)이다. 이 세 개의 사건은 명나라의 말세때 발생한 당쟁이고, 북쪽의 영토가 이미 청나라에 점령된 상황하에서 명나라의 관료들은 여전히 내부투쟁에 골몰했다는 것을 말해준다.태창삼대안(泰昌三大案)과 동림(東林)명나라때는 수수께끼사건이 아주 많았다. 가장 유명한 것은 태창삼대안이다. 엄격히 말해서, 삼대사건은 태창제의 등극을 전후하여 .. 2024. 8. 13. 주순수(朱舜水): 일본의 근대화에 영향을 끼친 "명나라유민(明的遗民)" 글: 자귤(紫橘)주순수가 일본에서 학문을 가르친 곳노신은 그의 藤野先生)>에서 일본의 중국인 주순수(朱舜水)를 언급하면서, 그를 "명나라의 유민(明的遗民)"이라고 불렀다. 오늘날의 일본 이바라기현(茨城县, 역사상의 미토번(水户藩))에는 주순수의 동상이 있다. 일본에 망명한 중국인이 어떻게 하여 이렇게 큰 영향력을 지니고, 지금까지도 일본에서 기념하고 있을까? 그것은 주순수가 일본의 메이지유신(明治维新)의 씨를 뿌렸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주순수의 원래 이름은 주지유(朱之瑜)로, 절강여요(浙江余姚)사람이고 명나라말기 5대학자중 한명이다. 일본으로 건너간 후 스스로의 호를 '순수(舜水)'라 하였는데, 이는 고향의 강을 잊지 않고 있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숭정11년(1638년), 주순수는 문무가 모두 뛰어.. 2024. 5. 30. 만력제(萬曆帝): 누구를 후계자로 세울 것인가? 글: 역사기실유취(歷史其實有趣) 만력14년, 서력1586년. 만력제 명신종(明神宗) 주익균(朱翊鈞)의 후계자분제가 정식으로 의사일정에 올라왔다. 황제의 나이가 적지 않고, 황제에게 아들도 있으니, 국본(國本)을 안정시키고 국조(國祚)를 이어가기 위하여는 반드시 하루빨리 후계자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당사자인 만력제는 후계자인 황태자의 후보와 관련하여, 일찌감치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자랑스러운 아들은 황삼자(皇三子) 주상순(朱常洵)이었다. 당연히 그가 이 아들을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애옥급오(愛屋及烏)의 느낌이 있다. 왜냐하면 주상순의 모친은 바로 만력제가 가장 좋아한 비인 정귀비(鄭貴妃)였기 때문이다. 먼저, 만력제는 일찌기 정귀비에 대하여 "유가옥질(柔嘉玉質), 완닉란의(婉嬺蘭.. 2023. 11. 7. 유백온(劉伯溫): 장량, 제갈량에 비견되는 그는 왜 비참한 최후를 맞았을까? 글: 흑색군(黑色君) 민간전통이야기에서 유백온은 장량(張良), 제갈량(諸葛亮)과 나란히 이름을 떨치는 지자(智者)이다. 주원장(朱元璋)이 명나라를 창립하는 과정에 큰 역할을 한다. 그후 공성신퇴(功成身退)하여 귀은전원(歸隱田園)한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시기를 받아 주원장 혹은 호유용(胡惟庸)에게 독살당한다. 역사상 유백온은 정말 그렇게 신기하였을까? 왜 귀은한 후에 선종하기 힘들었을까? 유백온은 주원장의 눈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유백온은 언제 관직에 나왔을까? 주원장의 부모가 아직 건재하고, 주원장 본인이 아직 지주를 위해 소를 키우고 있을 때, 유백온은 이미 지방관리를 지낸지 오래되었다. 그 자리에서 4,5년간 있은 후, 현(縣)에서는 더 이상 승진할 기회가 없다고 보고, 또한 동료들과의 관계도.. 2023. 7. 8. 이전 1 2 3 4 5 ··· 2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