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문화/아방궁의 역사진상9 아방궁의 역사진상(3): 궁전건축과 왕조교체 글: 진경원(陳景元) 먼저 강조할 것은 진나라가 육국을 통일하기 전에 사천은 일찌감치 진나라의 영토로 편입되었다는 것이다. <화양국지.파지>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주현왕(周顯王)때, 초나라가 쇠약해지고, 진혜문왕이 파촉(巴蜀)과 사이가 좋아졌다. 주신왕(周愼王) 5년, 촉왕(.. 2018. 2. 23. 아방궁의 역사진상(2): 이년만에 아방궁을 짓는 것은 불가능하다. 글: 진경원(陳景元) 이방궁의 문제에서, "파"이든 "립'이든, 모두 신중한 문제이다. 모두 각종의 논증을 거쳐야하는 문제이고, 논증중에는 반드시 사실을 가지고 말해야 하고, 증거를 가지고 말해야 한다. 과거에 모택동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불파불립(不破不立), 선파후립(先破候立), .. 2018. 2. 23. 아방궁의 역사진상 (1): 아방궁 "삼백리"는 가능한가. 글: 진경원(陳景元) 만일 중국 대부분의 경전적인 사료를 뒤져보면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다. '아방궁(阿房宮)'이라는 세 글자를. 항상 진시황의 이름과 같이 나오며 둘은 굳게 연결되어 있다. 소위 "진황위무도(秦皇爲無道), 작아방지궁(作阿房之宮)"; "진축아방(秦築阿房), 영성이전(赢.. 2018. 2. 23.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