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한진(韓進)
===============
스스로를 더욱 비하하는 사람일수록, 세상사람들에게 자신의 존귀함을 더욱 드러내고자 한다. 중화민족이 세계에 대한 공헌이 적으면 적을수록, 우리는 더욱 좋은 물건을 꺼내서 세상에 자랑하고자 한다. 사대명저는 우리가 끌어안고 있는 보배이다.
그러나, 사대명저는 도대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중국사회에 어떤 작용을 했는가?
중국은 한대, 당대에 일찌기 세계를 선도했다. 나중에 걸음이 늦어졌다. 왜 발전이 더디어졌는가? 왜냐하면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이 걸어간 길은 직선길이었고, 중국이 걸어간 길은 원형의 곡선길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방아를 돌리는 당나귀처럼, 항상 그 자리를 뱅글뱅글 돌았다. 우리가 제자리를 도는 동안에, 사대명저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삼국연의: 여기서 주장하는 것은 천하가 분열된지 오래되면 반드시 통일되고, 통일된지 오래되면 반드시 분열한다는 것이다(分久必合, 合久必分). 분열-통일-분열, 통일-분열-통일. 하여튼 원이다. 결국 아무런 바뀌는 점도 없다.
수호전: 주장하는 것은 귀순-반란-귀순. 역시 하나의 원이다. 아무런 변화도 없다.
서유기: 주장하는 것은 천궁에서 반란 - 속죄하고 경전을 취하러 감 - 목적을 이룸. 사실은 수호전과 다를 바가 없다. 역시 하나의 원이다.
홍루몽: 허무 - 진실 - 허무, 일체는 모두 아무런 의미가 없고 모두 공이다.
내 생각에는, 사대명저안에는 향상(向上)의 정신이 없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품격이 없는 것이다. 이런 원형규율의 세계관은 중국인으로 하여금 스스로 자기 앞가림만 하게 하고, 단견적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원형길을 돌파할 필요가 있다. 선을 자른 것처럼 날라가야 한다. 우주선처럼 지구의 궤도를 벗어나야 한다.
4대명저는 확실이 가치가 있는 문학명저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저 그것에 만족하고 즐긴다면, 그 결함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아마도 민족의 낙후성을 개조하는데 매우 불리할 것이다.
'중국과 문학 > 문학일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오공(孫悟空)의 원형은 무엇인가? (0) | 2007.01.19 |
---|---|
금병매(金甁梅)의 진정한 저자는 누구인가? (0) | 2006.12.03 |
경극(京劇)은 죽음의 길로 들어설 것인가? (0) | 2006.07.23 |
나관중의 삼국연의와 실제의 역사 (0) | 2006.07.20 |
차를 마시는 3가지 경지 (0) | 2006.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