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경제/중국의 영화

중국 연예계의 본처와 애인의 전쟁 (1)

by 중은우시 2006. 7. 13.

1. 남편 : 장예모(張藝模), 본처 : 초화(肖華), 애인 : 공리(鞏)

 

장예모의 본처는 보통 여인이었다. 장예모가 명성을 얻은 후에 남편과 보조를 맞추기가 어려웠고, 남편에게 버림받았다. 공리의 출현은 이런 부부간의 거리를 더욱 벌이는데 일조했다. 그러나, 공리는 본처를 쫓아내는데는 성공했지만, 스스로 부인으로 자리를 잡았는가? 문제는 장예모에게 있었다. 그는 이미 한번 불행한 결혼생활을 경험했고, 다시 그러한 불행을 맛보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 그는 여자보다는 사업에 전력을 투구했고, 재혼을 서두르지 않았다. 그러나, 공리는 가정관념이 강한 여자였고, 여자가 일정한 나이가 되면 반드시 결혼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한번은 공리가 상해의 성황묘에서 점을 친 바 있다. 점쟁이는 그녀에게 올해내로 반드시 결혼해야한다고 말했고, 그렇지 않으면 결혼할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릴 거라고 했다. 그래서, 공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장예모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그러나, 장예모는 결혼하고자 하지 않았다.

 

결혼할거냐말거냐의 문제는 결국 두 사람을 헤어지게 만들었다. 공리는 나중에 장예모의 친구인 황화상(黃和祥)에게 시집갔다. 공리는 자신이 바라던 결혼과 가족을 가진 것이다. 공리는 가정파괴의 이미지를 오래 가지고 가지는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장예모와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과 : 무승부. 둘 다 좋은 결과를 얻지는 못함.

 

2. 남편 : 두유(竇唯), 본처 : 왕비(王菲), 애인 : 고원(高原)

 

두유 : 1969년생. 중국의 락음악가. 1988년 흑표악대의 리드보컬. 91년 10월 흑표악대를 떠나 '주몽악대' 결성. 99년 '역'악대 결성.

왕비 : 1969년 북경생. 영문이름 Faye Wong, 중국최고인기의 여가수

 

이 혼인은 왕페이에 있어서는 하나의 상처이다. 영원히 아물지 않을 상처이다. 그녀는 사랑할줄 알고 미워할 줄 아는 여자이다. 왕페이와 두유가 막 연애를 시작했을 때, 그들의 사랑에는 또 하나의 여인이 끼어 있었다. 바로 두유의 전 여자친구였다. 왕페이는 두유를 얻기 위하여, 북경에 남아서 그와 시간을 함께 했다. 나중에 결혼하고 딸을 낳았지만, 왕페이는 항상 수세적인 위치였다. 결혼후에 왕페이는 두유와 합작하였으나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미디어는 금방 그들 사이의 감정에 금이 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왕페이의 공연에서 피아노를 치는 두유는 계속 왕페이와 박자를 맞추지 못했고, 각자 따로 놀았다. 나중에 두유가 왕페이와 싸우면서 그녀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후 그들은 이혼했다. 당시 미디어는 모두 북경의 법원 문앞을 지켰고, 그들이 이혼절차를 마치기를 기다렸다. 그래서 두유와 고원간의 외도는 수면위로 떠올랐던 것이다. 고원은 왕페이와 비교되었고, 그녀는 두유와 함께 기자인터뷰를 열기도 하였다. 이 때까지는 승리자의 모습이었다.

 

왕페이는 결혼기간동안 그다지 평탄하지 못했다. 그녀는 한번은 두 사람과 부딛친 적도 있었다. 홍콩에서 예정보다 빨리 북경으로 돌아온 왕페이는 보지 않아야 할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즉시 이혼하게 된 것이다. 미디어에 보도되기 전에, 왕페이는 친구들 몇명과 카라오케에 갔었는데, 그녀는 계속 노래를 불렀고, 목이 다 쉴 정도로 불렀다. 왕페이는 이후 재혼하여 최근 다시 딸을 낳았다. 두유는 고원에게도 버림받았고, 신문사의 차량을 불태워 현재 감옥에 들어가 있다.

 

결과 : 본처 패배. 애인은 승리후 남자를 버림.

 

3. 남편 : 풍소강(馮小剛), 본처 : 장모, 애인 : 서범(徐帆)

 

풍소강 : 1958년생. 중국의 유명 영화감독.

서범 : 1967년생. 중국의 유명 여배우.

 

서범은 남의 결혼생활에 끼어든 제3자로서 꾹 참고 기다리는 모범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녀가 풍소강의 혼인에 끼어든 후로 풍소강이 본처와 이혼하고 그녀와 결혼하기까지 여러해를 기다렸던 것이다. 풍소강의 처인 장모는 원래 간호사였다. 본처는 매우 강경했다. 그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남편이 애인과 사귀는 것도 말리지 않았다. 다만 이혼은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결국 풍소강이 자신과 이혼만 하지 않으면 네 맘대로 해도 좋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서범은 어쩔 수 없이 애인으로 여러 해를 지내게 되고, 계속 정식 결혼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신에게 명분이 없었으므로 화가나도 어쩔 수 없이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곤란한 삼각관계는 몇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종결된다. 풍소강의 본처는 그들 두 사람을 괴롭힐만큼 괴롭혔다고 생각했고, 남편이 다시 자기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결과 : 애인승리. 고진감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