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경제/중국의 영화

영화 "곽원갑(霍元甲)"

중은우시 2006. 2. 7. 16:36

호십삼(胡十三)이라는 블로거가 자신의 블로거에 남긴 이연걸의 <<곽원갑>>에 대한 감상입니다.

=============================================

 

큰 기대를 안고, 영화 <<곽원갑>>을 보았다. 그날 저녁에 누가 나에게 어땠느냐고 묻길래 "무술은 괜찮은 편이더군"이라고 대답했다.

 

이 평가는 해석이 필요할 것이다. 즉, 전체 영화에서 스토리, 대화, 주제등의 요소들과 비교해서 무술 이 건 볼만한 정도였다는 것이다.

 

말이 다시 돌아오는데, 하나의 무술영화가 만일 무술마저 볼 것이 없다는 그건 완전히 쓰레기영화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무술영화의 대표적 인물인 이연걸의 마지막 작품에 대하여, 일찌기 황비홍, 영호충, 진진, 장삼봉등 일련의 멋진 영화를 찍은 바 있던 이연걸에 대하여, 나는 진짜 그의 마지막 작품이 쓰레기였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었다. 이런 나를 용서해 달라.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내 느낌으로는 '산만하다'는 데 있다. 산만한 것에 대하여 얘기하기 전에 우선 이연걸의 몇개의 유명작품을 살펴보자.

 

<<소림사>>는 말할 것도 없다. 이건 거의 현대 중국무협영화의 시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 중국사람들은 모두 흰 상의를 입고, 푸른색 바지를 입고, 붉은색 수건을 목에 걸쳤다. <<소림사>>는 중국인에게 격동과 희망을 주었다. 황토, 청산, 백색장포, 십삼곤승, 목양녀...

 

<<황비홍>> 시리즈 :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사람들이 다시 이연걸을 떠올리고, 다시 무술영화를 떠올릴 때 모두 3부작 <<황비홍>>을 얘기할 거라고. 큰 변화의 소용돌이속에서, 상호융합하고 서로 분리되는 과정에서 황비홍과 그의 동포들이 추구하고 싸우고 숨쉬고 비추었던 무영각은 공중에 고독하게 응결된 만가였다.

 

<<태극장삼봉>> : 이 영화는 태극중의 원전무형, 의재경선이 잘 발휘된 것으로 한편으로 무술이면서 한편으로 철학이었다.

 

<<정무영웅>> : 순수무술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민족개념은 여기에서 배제해도 좋을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멋진 말은 일본 흑룡회의 후나바시 교관에게서 나온다. 그는 "한 사람을 쓰러뜨리려면 가장 좋은 방법은 권총이다" 영화에서는 여러가지 기법이 나온다 중국의 일본의 그리고 서양의...

 

<<동방불패>> : 이 영화는 사실 무학의 범주를 벗어났고, 사회 생존법칙을 다룬다. 사람이 있는 곳에는 강호가 있다. 네가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는가. 영화에서의 독고구검의 표현은 멋있었다.

 

그러나 <<곽원갑>>에 이르러서는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는가? 하나의 천진지방의 무술인이, 시작할 때는 싸움을 잘 해서 중국사람과 싸우다가 나중에는 외국사람과 싸운다. 비록 영화는 곽원갑에게 민족주의의 겉옷을 입혔지만, 그러나 그 겉옷은 어떻게 보더라도 훔쳐온 것이거나 빌려온 것이지, 절대 자기 것은 아니다.

 

곽원갑의 성장과정중 변방 산채에서의 생활은 하나의 전환점이다. 심지어는 그가 민족영웅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가 된다. 많은 영화들이 개인의 성장과정에서 극단에서 다시 중용으로 돌아오는 바뀌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냥 극단이다. 다만 다른 방향의 극단으로 갈 뿐이다.

 

곽원갑은 한번의 사기로 기운을 잃을 정도이니 심리는 매우 박약했었다. 이후 산채에 가서 어떤 변고도 없이 단지 편안하게 농사나 짓고 살고 있다. 통상적인 논리로 본다면, 그는 이전의 투쟁적인 생활을 철저하게 접고 여기서 세상과 더 이상 다투지 않고, 보통국민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영하에서도 아마 이렇게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한편의 신문보도로 인하여 곽원갑은 다시 투쟁의 길로 들어선다. 비록 이번 투쟁의 의의는 약간 변하여 숭고하게 되기는 하였지만. 그렇다면 변방생활은 도대체 영화에서 무슨 의미를 가진다는 말인가?

 

곽원갑은 어려서는 일도 제대로 못하고 무술도 약하다가 나중에는 천하에서 무공을 다투는 대가로 성장하기까지 이 중간에 아무런 논리도 없고, 과도기도 없고, 기초도 없다. 영화의 플롯 발전이나 스토리를 보면 전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진행된다고 느낄 정도이다. 즉, 앞부분의 그러한 원인은 절대 뒷부분의 그러한 결과를 야기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무술쪽에서는 전설에서의 곽원갑의 미종권은 나타나지도 않는다. 오히려 칼, 창, 검, 삼절곤 권각등 각종 쿵후가 나타날 뿐이다. 관중들이 보기는 싫컷 보지만, 그럴 필요가 있나는 생각은 든다. 예를 들어, 스페인의 장총을 쓰는 사람이 있다. 내 기억으로는 서양사람들의 총을 쓰는 방식은 중국인이 총을 쓰는 방식과 좀 다르다. <<신용문객잔>>에서처럼 늙은 환관이 구막언을 평가할 때 한 말처럼 "이 사람은 절대 주준안이 아니다. 주준안은 이런 강호 쿵푸를 익히지 않았다."

 

이런 병기사용의 출현은 그저 단순하게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연걸은 아마 이렇게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이런 것도 나는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신소림오조>>처럼 아예 총쓰는 법을 잘 만들어서 사람들이 더 좋아하도록 만드는게 낫지 않았을까.

 

이것이 전체 영화의 제작이념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 무술운동원 출신의 이연걸이 여러해동안 영화의 길을 걸은데 대한 경험을 마무리하기 위한 것이다.

 

만일 마무리하기 위한 것이라면, 여러 방면의 것들을 한번씩 언급하면 되는 것이다. 소고기 양고기도 있고, 마늘 파, 생강도 있고, 장, 기름, 식초도 있고...영화에서 약간의 성장의 고뇌도 있고, 약간의 다툼도 있고, 약간의 강호은원도 있고, 약간의 남녀간의 사랑도 있고, 약간의 민족복수도 있고...하나하나 모두 약간씩 건드리기만 하고,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철저하지 못하며, 그저 안개속에 있는 것처럼 물 가운데 노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