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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성씨

중국 고대의 성이 계집녀(女) 방(旁)인 이유는...

by 중은우시 2006. 7. 1.

고고학 자료에 따르면, 서주(西周) 청동기의 명문에 보이는 성(姓)으로 확인가능한 것들이 30개에 미치지 못한다. 이러한 서주시대의 최초의 성은 거의 모두 계집 녀(女)자 방이다. 예를 들어, 희(姬), 강(姜), 사(姒), 영(嬴), 요(姚), 호(好), 비(妃), 임(妊), 길(姞), 괴(媿), 규(嬀)등이 그것이다.

 

왜 고대의 성에는 대부분 계집녀방일까? 이러한 고대의 성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좌전. 은공8년>>에 이러한 말이 있다 "인생이사성(因生以賜姓)". 어떻게 출생했느냐에 따라 어떤 성을 갖는지가 결정된다는 말이다. 고대의 성의 내력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여성시조가 회임한 원인에 따라 성을 암은 것이다. 예를 들어 계(契)의 모친인 간적은 제비의 알을 삼킨 후에 계를 낳았다. 그래서 상나라 왕족의 성은 자(子, 알이라는 뜻)이다. 후직의 모친인 강원은 곰발자국을 밟고는 회임하여 후직을 낳았다. 그래서 주나라 왕족의 성은 희(姬)이다. 이것은 실제로 토템이 성으로 화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여성시조가 아이를 낳았을 때의 장소에 따라 성을 얻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설문해자>>에는 "요(姚), 우순(虞舜)이 요에 거하였다. 그래서 성으로 하였다", "강(姜), 신농은 강수에 살았다. 그래서 성으로 하였다." <<제왕세기>>에는 "염제의 모친은 화양에 놀러갔다. 양기에 감응을 ㅂ다아 염제를 강수에서 낳았다" 우순의 모친은 요허에서 그를 낳았으므로 요라는 성을 얻었다. 신농시(염제)는 그 모친이 그를 강수에서 낳아서, 강이라는 성을 얻었다.

 

성이 오래되었다는 것은 그 나라의 역사, 문화가 유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대의 성에 계집녀방이 많다는 것은 중국의 고대에는 여성이 중심인 모계사회였다는 것을 나타낸다. 씨족사회에서는 일처다부제였다. 그래서 <<여씨춘추>>에는 "옛날의 사람들은 모친은 알지만 부친은 알지 못했다"고 적고 있다. 전설에서 요(堯)의 모친이 적룡과 관계하여 요를 낳았다는 것이나, 계의 모친이 제비알을 삼키고 계를 낳았다는 것이나, 우의 모친이 풀을 먹고 우를 낳았다는 것이나, 강원이 곰발자국을 밟고 후직을 낳았다는 것이나 모두 그 연원은 모계사회에서 모친은 알지만 부친을 알 수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태고에 사람들은 모친만 알고 부친은 몰랐다는 것은 중국의 화하민족의 성의 시조는 여성이지 남성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한다. <<설문해자>>에는 "성(姓), 인소생야(人所生也, 사람이 태어난 바이다)"라고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