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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당)

독고신(獨孤信) : 딸 셋을 세개 황조의 황후로...

by 중은우시 2006. 6. 30.

 

독고신이 남긴 다면체 煤精石印(1981년 섬서성 순양현에서 출토)

(다면체인장은 24개의 도장면, 16개 정사각형, 8개의 삼각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독고신(502-557)

 

선비족(鮮卑族). 본명은 여원(如願)이며, 북주(北周)때 운중(지금의 대동) 사람이다. 역사상 "아름다운 얼굴과 모습이었고, 말타고 활쏘기를 잘했다"고 기재되어 있다. 소년시대부터, 꾸미기를 좋아했고, 몸에 장신구를 달고 다니는 것에 신경썼다. 그래서 군중에서 "독고랑"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는 처음에 갈영의 아래에서 장수를 지냈다. 나중에 북위에 의탁했다. 일찌기 필마단기로 어양왕 원사주를 생포한 적이 있다. 전투에서 공을 많이 세워, 별장, 원외산기시랑, 신야군수, 형주방성대도독, 무위장군, 부양군장, 위대장군, 도독삼형군사겸상사우복야, 형주자사, 차기대장군, 하내군공, 농우십주대도독, 태주자사, 태자태보, 대사마, 주국대장군에 오른다. 수문제가 즉위한 후에는 태사, 상주국, 십주제군사, 기주자사를 추증되고, 조국공에 오르며 1만호를 식읍으로 받는다.

 

독고신은 여섯 아들과 일곱 딸을 두었다. 여섯 아들은 모두 관직을 지냈으며, 그 딸들은 모두 부친으로부터 고귀한 혈통과 아름다운 용모를 물려받는다.

 

장녀는 우문태(宇文泰)의 며느리이자, 북주 문제가 되는 우문육(宇文毓)의 황후인 주명경후(周明敬后)이고,

사녀는 당고조 이연의 어머니이며, 당태종 이세민의 할머니인 원정황후(元貞皇后)이고,

칠녀는 수문제(隋文帝)의 문헌황후(文獻皇后), 보통 독고황후로 불리우는 여인이다.

 

독고신은 장녀를 어려서부터 친구였던 우문태의 장자에게 시집보낸다. 얼마되지 않아, 우문태는 서위로부터 천하를 빼앗고, 장자가 등극하여 문제가 된다. 독고신은 처음으로 국장(國丈:황제의 장인)이 되었다. 그러나 독고신은 좋은 시절이 오래가지 못하고 55세때 우문호의 핍박을 받아, 집안에서 목을 매어 자결한다. 우문호를 죽여서 독고신의 복수를 해주는 것이 북주의 무제인데, 북주의 무제와 독고신의 관계는 복잡하다. 즉, 그는 독고신의 외손자인 이연의 처인 두씨의 외삼촌이며, 독고신의 사위인 북주 문제의 동생이고, 그의 외손녀의 할아버지(사위인 수문제 양견의 딸이 주무제의 아들에게 시집간다)가 된다..

 

독고신은 장녀를 잘못 시집보냈다. 사위는 너무 유약하였고, 그래서 장상명주인 일곱째 딸을 시집보낼 나이가 되었을 때는, 독고신은 딸을 의지가 굳강한 사람에게 시집보내려고 하였다. 고르고 고르다가, 자신과 같은 신하이면서 관직이 자기보다 바로 아래인 양충(楊忠)의 아들 양견(楊堅)이었다. 양견은 독고씨와 결혼한 후 서로 금슬이 너무 좋았다. 독고황후는 매우 총명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남편을 도와 위난을 넘기고 결국 황위에 오르며 수황조를 열게 된다. 그녀와 양견과의 사이에 태어난 딸이 양려화(楊麗華)인데, 바로 북주 무제의 아들이자 북주의 마지막 황제에게 시집간다. 그런데, 양려화가 황제에게 잘못을 저질러 황제가 죽이려고 할 때, 그녀가 나서서 머리에서 피가날 때까지 절을 하여 겨우 목숨을 건진다.  이 때 이미 사망한 독고신은 다시 수나라의 국장이 된다. 독고황후는 부친의 복수를 위하여 우문씨 집안을 모조리 죽여버린다. 즉, 자기의 언니의 남편집안을 도살하였다. 이것은 독고씨 집안의 첫번째 내부알력이었다.

 

이후 몇년동안 이병(李昞)에게 시집갔던 독고신의 넷째 딸의 아들인 이연이 커서 성인이 되었다. 이연은 독고황후의 친외조카가 된다. 한번은 길가에서 두씨(竇氏)집안에서 사위를 구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두씨 집안은 사위를 구하면서 무공이 뛰어난 자를 구하고 있었다. 병풍에 두 마리의 공작새를 그려놓고, 화살 2개가 한마리의 공작새의 두 눈알을 맞히면 바로 사위로 삼겠다는 것이었다. 먼저 수십명이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고, 이연의 순서가 되었을 때 화살 둘을 모두 눈알을 맞추었다. 두의(竇毅)는 너무 기뻐하며 딸을 이연에게 시집보냈다. 결혼후 두씨 아가씨는 이연에게 왜 무공으로 사위를 구했는지를 얘기한다. 즉, 두씨는 북주의 무제의 외조카딸이었다(엄격하게 말하면 이연에게는 4촌누이가 된다), 수문제인 양견이 북주를 멸하고 수나라를 세웠는데, 두씨는 이에 대하여 원한을 품고 있었다. 그녀는 "나는 내가 남자가 아닌 것이 한스럽다. 외삼촌을 위하여 원수를 갚을 수가 없으니.." 옆에서 듣고 있던 그녀의 부친은 깜짝 놀라 두씨의 입을 막는다. "말 함부로 하지 마라. 그건 멸문지화를 당할 수도 있다." 여러 해 이후에 과연 이연은 수황조를 전복시키고, 강성한 당황조를 건설한다. 즉, 자기의 친이모가 힘들여 닦아놓은 기반이 그의 손에 무너진 것이다.

 

5대10국에서 수황조를 거쳐 당황조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가족이 수백년의 중국역사를 좌지우지했다. 강산이 한 가족의 구성원의 손에서 다른 구성원의 손으로 차례로 넘어갔다. 독고신은 놀랍게도 중국에서는 유례가 없는 3개 황조의 국장(황제의 장인)이 된다. 그의 가족은 자매간의 다툼에서 조카와 이모의 다툼에 이르기까지, 2개의 중국역사상 강성했던 국가를 건설한다.